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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새 도로명 '주소 따로, 도로 표지판 따로'

"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일관성이 중요하고 제대로된 설명이 필요합니다"

[취재파일] 새 도로명 '주소 따로, 도로 표지판 따로'
도로에는 운전자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도로 표지판이 있습니다. 직진하면 어느 방향인지, 좌회전 하면 어느 방향인지, 우회전 하면 어느 방향인지 알려주는 표지판입니다. 표지판에 담긴 정보는 다양합니다. 도로 표지판은 인근 지역의 가장 주요한 정보를 통해 운전자에게 정보를 제공합니다. 시청 근처라면 시청 방향을, 역 근처면 역의 방향을, 그리고 주소지 기준으로 ㅇㅇ동 방향을 제시합니다.

올해부터 새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공공기관에서는 ㅇㅇ동 이라는 옛 주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정부에서는 ㅇㅇ동이라는 주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다시 말해 정부에서는 새 도로명 주소 시행에 따라 새 도로명 주소만 사용하겠으니 국민 여러분들도 얼른 새 도로명 주소에 익숙해져서 새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정책의 찬반 여부를 떠나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행정기관으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대대적인 주소 개편 사업을 선언하고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정부가 관리하고 설치해 놓은 도로 표지판에는 아직도 옛 주소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로는 국가 기반시설입니다. 따라서 도로에 있는 표지판도 국가의 계획과 책임 아래에 운영됩니다. 그럼 정부의 정책에 따라 ㅇㅇ동으로 표기된 도로 표지판은 새 도로명 주소로 바꿔야 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도로 표지판에는 ㅇㅇ동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어 교체하지 않았다?>

여기서 몇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어 논란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아직 국민들이 새 도로명 주소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어서 교체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이 논리의 요점은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입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정부는 새로운 정책 도입으로 인한 혼란을 최대한 줄이는 게 책무입니다. 충분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도입하기로 하고 2년이나 혼란을 줄인다는 이유로 정책 시행을 미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어 교체하지 않았다는 주장한다면, 반대로 그동안 해당 부처는 뭘 했냐는 질문을 다시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요즘 누가 도로 표지판을 보고 운전 하냐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보급으로 도로 표지판의 활용도가 많이 떨어진 현실에서 도로 표지판에 있는 옛 주소가 큰 영향은 없기 때문에 천천히 교체해도 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될 수 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요즘 운전자들 거의 도로 표지판 보고 운전하지 않을 겁니다. 저 또한 도로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아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 표지판의 활용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안일함을 지적하는 겁니다. 이 주장처럼 도로 표지판의 활용도가 낮다면 교체가 아니라 수를 줄이거나 개선 방향을 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계획이 있는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도로 표지판으로만으로 새 도로명 주소 찾아가보기>

정부는 새 도로명 주소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 도로명 주소 정착은 '새 도로명 주소는 매우 체계적이고 찾기 쉽게 잘 만들어진 주소 체계이기 때문에 주소만으로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어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주소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새 도로명 주소를 도로 표지판만 보고 찾아가봤습니다. 무작위로 선정했습니다. 출발지는 서울시청으로 정하고 최대한 직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교회를 선택했습니다. 지도를 보니 서울시청에서 서울역방면으로 쭉 직진, 그리고 한강대교에서 좌회전해서 쭉 직진하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택시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로 표지판만 보고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취재팀을 태운 택시기사는 서울에서만 20년째 운전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택시기사는 ‘이촌로’라는 도로명으로 ‘이촌동’이라는 것을 유추해 순조롭게 이촌동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한강대교 근처에 도착해서부터 문제였습니다. 도로 표지판에는 이촌 1동, 이촌 2동이라는 표시만 있었습니다. 새 도로명 주소로 가려면 일단 좌회전을 해야 하는지 우회전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택시기사는 일단 좌회전을 하자며 차선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도로 표지판 뒤에 아주 작게 이촌로의 방향을 알려주는 새 도로명 주소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그 표지판을 보려면 신호 50~60m 앞까지 접근해야 보였습니다. 옛 주소로 표시된 커다란 도로 표지판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저런 표지판은 운전자에게 사고를 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택시기사는 이 말을 툭 던지며 이촌로로 진입했지만 결국 최종 목적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이 한 사례만으로 도로 표지판으로 새 도로명 주소지를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도로 표지판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 주소 표시가 새 도로명 주소와 충돌하면서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확인시켜 줬습니다.
도로 표지판 캡처

<국토부 VS 지자체, 서로 책임 떠 넘기기?>

도로 표지판의 주무부처는 국토교통부입니다. 그리고 각 지자체는 국토부의 큰 틀에서 관할 지역에 있는 도로 표지판에 대해 구체적인 교체 계획을 세워서 지자체 예산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이 두 행정기관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 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토부는 지난 2009년에 새 도로명 주소 시행에 따라 교통 표지판을 어떤 방식으로 교체할 수 있는지 지침을 마련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지명 선정 위원회 등을 열어 구체적인 교체 계획을 수립해 교체를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서울시는 국토부가 도로 표지판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들어 한다는 포괄적인 지침을 만들어 놓고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을 뿐 정확히 언제부터 어떻게 교체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온 것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부처간 업무를 하면서 다소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서로 처한 입장이 다르니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조율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번 문제는 단순히 이렇게 치부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조율을 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 도로명 주소의 주관부처는 안전행정부입니다. 안행부는 새 도로명 주소를 도입하면서 지난 1997년부터 도로명 주소 안내 표지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전국에 도로명 주소 안내 표지판을 설치했습니다. 도로명 표지판도, 도로명 주소 안내 표지판도 새 도로명 주소 사용에 따라 길을 안내해 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행부는 이미 1997년에 표지판 사업을 시작해 추진했는데, 국토부와 지자체는 아직도 논의 중이라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단지 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도로 표지판을 새 도로명 주소 시행에 맞춰 교체를 하지 않았으면 왜 하지 않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교체를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조차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인 겁니다.

<막대한 예산은 누가 부담해야 하나?>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예산입니다. 새 도로명 주소 사업을 도입하면서 사용한 예산은 4천억 원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예산의 87.4%가 새 도로명 주소 안내 표지판을 만드는 데 들어갔습니다. 액수로는 3천 415억 원입니다. 기존에 있는 도로 표지판은 현재 전국에 16만 개 정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국토부는 3만 5천개 정도 교체해야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도로 표지판 교체비용은 개당 5백만 원에서 8백만 원까지입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국토부가 추산하고 있는 도로 표지판만 교체해도 최고 2천 8백억 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든 예산의 거의 절반 가까운 돈이 또 들어야 하는 겁니다.

지금은 이 예산을 모두 지자체에서 부담해야 할 실정입니다. 서울시와 같이 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가 들지는 추정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서울시내에 9천 387개의 도로 표지판이 있으니 최소한 수백억 원은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행부는 새 도로명 주소 안내 표지판을 만들면서 매년 지자체에 30~50%의 국비를 지원해 줬습니다. 새 도로명 주소라는 국가 정책을 시행하면서 예산을 책정해 지원을 하면서 사업을 이끌어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주목했습니다. 조명래 단국대학교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 주도의 일종의 사업이었고요. 그리고 이거는 국가가 어떤 표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현재 여러가지 관할 자체가 지방정부에 있다 하더라도 이건 중앙 정부 업무로서 추진해왔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예산을 세워서 지방정부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예산문제는 해결돼야 된다고 봅니다.”

<"정책은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국토부는 지금도 지자체를 상대로 교육을 하기도 하고, 전문가 집단을 통해 어떻게 예산을 줄이며 도로 표지판을 교체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분명 도로 표지판도 새 도로명 주소에 맞게 교체를 해야하는 사업입니다. 전문가들은 서울 강남권이나 신도시처럼 도로 구분이 확실한 지역부터 교체를 서둘러야 새 도로명 주소 정착이 빨라진다고 진단했습니다. 새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라고 하면서 표지판을 통일시키지 못한 건 정부의 과실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새 도로변 주소를 사용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은 이런 저런 말은 많겠지만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도 나오고, 준비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발견돼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정책에는 장점과 단점이 상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소체계를 바꾸는 이런 거대한 정책은 더욱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정부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일관성 있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추진이 그 무엇보다 강조되는 덕목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옛 주소로 남아 있는 도로명 표지판은 진한 아쉬움을 남깁니다.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비난의 소지를 제공했고, 이에 대한 설명과 향후 대책마저도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 했듯이 도로명 표지판을 새 도로명 주소로 교체하면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면 긴 준비기간 동안 그 혼란을 막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미디어를 통해 “새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세요. 훨씬 편하고 좋습니다”라고 홍보를 해도 도로 표지판에 그대로 있는 ㅇㅇ동을 보고 국민들이 길을 계속 찾는다면 새 도로명 주소의 정착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 추진과정에서 ‘일관성’이 훼손되고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사소한 현상이 가져오는 결과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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