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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사소하게] '통일에 대박'이라니…정말 대박∼

[이주형의 사소하게] '통일에 대박'이라니…정말 대박∼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적어도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박'이란 말을 일상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IMF사태 이후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2001년 겨울 "여러분 부자되세요"란 카드사(-이렇게 말해놓고 결국 자기들 배만 불리고 고객 정보는 마구 방치한 바로 그 카드사들-) 광고 카피가 크게 유행했고, 그 즈음하여 '대박'이란 말도 슬슬 퍼지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충북대 국문과의 조항범 교수가 쓴 '그런, 우리말은 없다'(2005,태학사)란 책에 따르면 '대박이다'(또는 대박이 나다/터지다)라는 표현은 '흥행에 성공하다', '큰돈을 벌다', '횡재하다'를 대신 하는 "최신 유행어다."

하지만, 큰 배가 항구에 들어온다는 뜻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大舶설', 노름에서 여러 번 패를 잡고 물주 노릇을 하는 일, 또는 그렇게 하여 얻은 몫을 가르키는 '박'에서 연유한 '대박설'에도 불구하고 '대박'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는 게 조 교수의 결론이다.

"부자되세요"란 말이 한 유명배우의 입에서 나와 지상파TV 광고로 데뷔했을 때도 그러하거니와, '대박'이란 표현 역시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입에 올리기는 처음에는 살짝 낯부끄러워지는 일이었다. 너와 나의,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가 모두 경제적인 것으로 치환되는 쑥쓰럽고 겸연쩍은 언어적 경험이었던 것이다. 부자가 되고, 대박을 치는게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그런 말들에는 '과정의 공정'에 따른 '결과의 수용'보다는 요즘 세상에서 그런 식으로는 돈 벌기 쉽지 않으니 어쩌다 재수좋게 돈벼락에 얻어걸리라는 '요행'의 함의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이 점차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두루두루 쓰이게 되고, 서로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사행심을 내면화하면서도 설마 이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그것도 첫 신년 기자회견서부터-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이 '대박'의 대상이 한 나라의, 한 민족의 절체절명의 일대 사태가 아닐 수 없는 통일이라니, 이건 정말 '창조**'적 사고 방식이 아니고선 생각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년 기자회견의 "대박"이 이래저래 곱씹을 거리를 안겨주고 귓가에서 맴돌다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대통령이 세계 각국 '파워 엘리트'들의 모임이라는 다보스 포럼에 가서 또 "통일은 동북아 주변국 모두에게 대박"이라고 말했다.

우리만 대박이 아니고 남북이 통일되면 중국,러시아,일본 너희도 대박쳐서 한탕 챙길 수 있으니 잘 해보자는 건가. 그런데 어디 중국과 러시아에 좋은 일이 우리에게도 좋기만 하겠나. 역사를 보건대. 그 역(逆)도 마찬가지고.

나라 밖까지 가서 '대박'이라는 일종의 '코리안 슬랭'을 통역해야했던 다보스 포럼 현장 통역사는 대박을 'breakthrough'(돌파구)로 재치있게(-혹은 '지도 지침'에 따라-) 번역했다. 그러나 대부분 외신은 '대박'을 도박 또는 복권계의 '전문 용어'인 '잿팍(jackpot)'으로 번역한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우리가 현재 쓰고있는 '대박'이란 말은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더 정확한 번역이다.

대통령의 대박 발언 한 달 전 쯤 미국 부통령 바이든이 방한한 적이 있다. 그는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 "미국에 반해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라며 (-“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베팅 운운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만나 중요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저런 속된 말을 쓰다니 외교적이지 않을 뿐더러 무례하기까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우야 좀 다르지만, 대통령의 "대박" 발언을 들으면서도 아,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순진무구하구나, 또는 언어의 'TPO'(시간,장소,상황 / time,place,occasion) 분별이 잘 안되어 있구나,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지 않는가. 만일 그렇다면. 좋은 데 뭘? 알아듣기 쉽고. 그런 생각만 든다면... 정말 대박~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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