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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자를 미끼 삼은 스미싱…'조정 기자'가 '조저 기자' 된 사연

[취재파일] 기자를 미끼 삼은 스미싱…'조정 기자'가 '조저 기자' 된 사연
 '디리리링...'  한창 8뉴스 준비에 바쁜 오후 6시 반, 경제부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당겨 받으니 마침 나한테 걸려 온 전화다. "거기 조정 기자님 계시죠? 통화 좀 하고 싶은데요..."  50대에서 70대 사이로 추정되는 시니어 남성의 목소리였다. 어눌한 말투가 시골 이웃집 아저씨 느낌이었다.

"제가 조정기자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그 남성은 조금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용건을 이야기했다.  "방금 제 휴대전화로 문자가 하나 들어 왔어요. 금감원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확인하라는 내용인 것 같은데, 조정 기자 이름이 써 있네요. 어떻게 해야 돼요?"  스미싱 임을 직감했다.

  "아저씨, 그 밑에 인터넷 주소 같은게 있죠? 그거 절대로 누르시면 안돼요. 스미싱이예요. 스미싱 아시죠?"  "스미싱이 뭐 예요? 요즘 뉴스에 카드 정보 도둑맞았다는 소식이 나오던데 저도 당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  중년의 남성은 스미싱이 무언지 조차 모르는, 진짜 조정 기자한테 신고하면 정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걸로 믿는 선량한, 아니 조금은 무식한 아저씨였다.

"그 밑의 인터넷 주소 누르셨어요, 안 누르셨어요?"  "아직 안 눌렀어요. 조정 기자한테 물어보고 누르려고요..."  천만 다행이었다. 그래도 주위에서 들은 건 조금 있는지 악성 코드를 심는 인터넷 주소를 누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 그럼 괜찮습니다. 앞으로 돈을 빌려 준다거나, 상품을 준다거나, 어디에 당첨됐다는 문자가 오면 무조건 무시하세요. 안 그러면 아저씨 핸드폰 완전히 고장 나고, 통장에서 돈이 빠져 나갈 수 있습니다..."  간단히 스미싱이 무엇인지, 어떤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설명해 주고 전화를 끊었다.

비슷한 시각, 정치부의 후배 기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소프트웨어 컨설팅 업체인 잉카인터넷에서 제보가 왔다는 소식이었다. 인터넷 사기를 감시하는 관제실에서 SBS 보도를 사칭한 스미싱 링크가 발견됐으니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전해 왔단다. 바로 그 아저씨가 본 스미싱 문자가 넓게 퍼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다행히 문제의 c.vbs999.com 링크는 끊어졌는데, URL을 클릭하면 스마트 뱅킹 앱을 쓰는 사람들의 은행 앱을 바꿔치기 하는 악성코드였다고 한다. 참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기자라고 하면 사회의 악과 부조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어쩌면 범죄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피싱과 스미싱 등 각종 사기 수법으로 선량한 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범죄가 급기야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권 당첨됐다는 사탕발림 정도에는 속아 넘어갈 만한 사람들이 없으니 그 수법이 갈수록 지능적이고 과감해 진 것이다. 스미싱을 하는 자들은 CF 제작자가 멋진 광고 카피 만들어 내듯이 '유혹의 문자'를 개발하고 있다. 복권, 상품권, 할인권, 행운권도 모자라 경찰과 검찰, 은행을 사칭하고, 이제는 언론의 영역까지 창작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3년 쯤 전인가? 옆 부서의 후배 기자들이 채팅방을 해킹해 엿보고 있던 해커에게 속아 1천만원이 넘는 돈을 눈 깜빡할 사이에 잃어버리는 모습을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치밀한 해커는 며칠 동안 선후배 사이의 채팅방을 지켜보다가 슬쩍 대화에 끼어든다. "후배야, 내가 급해서 그런데 일주일 뒤에 갚을테니 3백만원만 빌려 줄 수 있겠니? 00은행 계좌로 보내주면 고맙겠다..."  친한 선배가 후배에게 직접 말하기 미안해 채팅으로 돈을 빌려 달라는 줄 알고 돈을 부쳤던 후배는 세번째 부탁을 받고서야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채팅방에서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은 선배가 아니고 해커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는 전화 한통이면 충분했다. 물론 돈을 부쳤던 계좌는 입금 직후 전액 인출된 뒤 사라졌다. 보안이 허술했던 시절의 이런 해킹부터 시작해 '개콘'의 한 코너를 지키고 있는 전화 사기, 피싱과 파밍, 문자로 덫을 놓는 스미싱까지 범죄의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조정기자스미싱_1

악성코드의 미끼로 전락한 지 하루만에 나는 이름 두 글자를 모욕당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직면했다. 어젯밤 부서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자마자 야근 중인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네이버에 기사가 떴는데 선배 이름이 고스란히 노출된 스미싱 문자가 사진으로 함께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일보가 올린 기사였는데 내 이름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의 실수로 보였다.

 네이버에 연락해 이름을 지워달라고 조치하려는 순간, 그쪽에서 잘못을 인지했는지 사진 속의 내 이름 위에 다시 뿌연 보호막이 생겼다. 그런데 옆에 앉아 스마트 폰질을 하고 있던 아내가 폭소를 터뜨린다.

'조저 기자님, 이것 좀 보시라고.'  몇 시간 동안인지, 몇 분 동안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이름이 노출됐던 기사 밑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조정 기자가 아니라 조저 기자네. 내 인생 조저 기자...>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취재하면서 아직도 그 점이 의심스럽다. 고객들의 소중한 정보도 지키지 못한 금융기관, 그걸 지켜보고만 있던 금융당국, 정말 2차 피해는 없는 걸까?  조저 기자는 그들을 마구 조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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