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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갇히고 입막힌 기자들…추락하는 이집트의 언론 자유

군부의 재등장…공포와 침묵의 일상화

[월드리포트] 갇히고 입막힌 기자들…추락하는 이집트의 언론 자유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언론환경이 열악한 나라로 이라크와 시리아, 이집트가 꼽혔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2003년 전쟁 이후 내전과 다름없는 분쟁이 이어지고 이라크와 반정부 시위가 종파간 내전으로 번진 시리아의 경우, 전선을 따로 구분할 수 없는 형국이라 취재에 따른 위험이 극대화돼 있다는 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집트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정보의 보고…외교과 언론의 집결지 카이로

이집트 카이로는 지난 수십년 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교관과 기자들이 활동하는 일종의 세계 언론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습니다. 미-소 양극화 시대에 비동맹 노선을 추구했던 나세르 이후 제 3세계 국가들이 잇따라 공관을 개설하고 아랍연맹 결성으로 본부가 자리하면서 서방의 이해와 직결된 중동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정보가 흘러 다니는 곳이 돼 왔던 것입니다.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양극화 체제가 해소되면서 미국의 워싱턴이 카이로를 추월해 가장 많은 외교관이 활동하는 곳이 됐지만, 여전히 카이로는 전 세계에서 이라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미국 외교관들이 활동하는 곳이며, 중동의 여러 현안과 관련한 핵심 포스트 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08년 SBS가 두바이 등 다른 유력지를 제치고 이 곳 카이로에 지국을 개설한 것이기도 하고요.

노골화되는 언론 탄압…최악의 언론환경

이집트 충돌_500
하지만 이런 카이로를 품은 이집트는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최악의 언론 탄압국이 돼 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 장악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지금도 문제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문제가 훨씬 심각합니다.

시민혁명으로 무바라크 정권이 축출된 이후 잠시나마 이집트 언론계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무바라크 정권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을 기자들이 내부에서 축출하기도 하고 새로운 인터넷 언론사 등이 생겨나며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 선거로 집권했던 무르시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무르시 정권 인사들로 국영, 공영 언론사들을 장악하면서 언론 자유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시켰습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기자들의 논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였다면 지난 해 여름 이후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쿠데타로 무르시 대통령을 몰아낸 이집트 군부는 쿠데타 한 달여 만에 무르시 지지자 천 여명을 카이로 한복판에서 학살하며 정국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기자들의 카메라와 마이크는 매복병의 타켓이 되기 일쑤였고 여러 명의 기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임시정부가 출범한 뒤 부터는 군부 쿠데타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거나 불리한 내용을 기사화한 기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이 가해집니다. 지난 여름 이후 ‘부정확한 기사로 폭력을 선동했다는 혐의’ 또는 ‘테러단체와 연관됐다는 혐의’로 구금된 언론인이 10여명에 달합니다. 아예 혐의도 모른 채 이유없이 구금된 언론인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실상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부, 위성방송 알 자지라를 겨냥하다

특히 중동의 CNN이라 불리는 위성방송 채널 알 자지라와 이집트 군부와의 관계는 최악입니다.
지난 해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논조로 군부를 비판했던 알 자지라인데다, 축출된 무르시 정권과 가까웠던 카타르 왕가가 알 자지라의 소유주라는 점 때문에 이집트 군부는 이들에 대해 노골적인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엔 알 자지라 영어뉴스 채널의 카이로 특파원인 호주 출신의 피터 그레스테 특파원과 동료 2명이 테러단체 연계 등의 혐의로 감옥에 끌려간 뒤 20여일 째 풀려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을 전복한 이집트 군부가 반대 세력을 짓누를 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말이 ‘테러리스트’인데, 그 혐의를 알 자지라를 대표하는 특파원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죠. 하지만 피터 그레스테는 연행 당시 BBC 출신으로 알 자지라로 옮겨 와 중남부 아프리카 지역 등에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부임한 지 한 달여 밖에 안되던 카이로에선 초보 특파원이었습니다.

이집트 취재파일_5


이런 사람이 테러 단체와 연계됐다(?)…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죠. 알 자지라는 연일 이들의 얼굴과 구금 일수를 방송하며 이집트 군부에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고 있고, 크리스천 아만포 등 저명한 언론인들도 연대해 이집트 군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이집트 군부는 꿈쩍도 않고 있습니다.

재갈 물린 언론…전염되는 공포와 침묵

문제는 이런 내외신을 가리지 않은 언론 탄압이 이어지면서 지난 해 여름 학살의 공포와 군부의 무자비함을 경험한 이집트 시민들 사이엔 무거운 침묵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군부가 시위 자체를 금지한 이후 새로운 반군부 시위의 거점이 된 대학 구내에 경찰과 군 병력이 상주하고 있고, 거리 곳곳에 배치된 탱크와 군인, 사복 경찰들의 감시의 눈초리 속에 사람들은 입을 닫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거리에서 누구에게 인터뷰를 요청해도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군부를 찬양하거나… 이런 일상화된 공포와 강요된 침묵은 지난 주 치러진 이 곳의 개헌안 국민투표 결과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군부의 특권을 대폭 보장하는 내용의 문제적 내용이 담겼지만, 찬성률은 무려 98%를 넘어섰습니다. 무슨 북한의 선거결과 같지 않습니까?

최악의 언론 환경과 신변의 위협 속에 카이로에 주재하고 있는 외신기자들은 무바라크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혁명 이후 3년 여 만에 군부의 재등장은 유일무이한 정치적 가능성이 돼 버렸습니다. 이집트의 군부와 기득권 세력들은 지난 여름의 쿠데타를 또 하나의 혁명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감시견인 언론의 입을 틀어막은 사람들이 부패와 독재의 길로 빠져드는 건 수많은 역사적 경험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패와 독재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도 불과 3년 전 시민혁명이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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