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언론’이 아닌 ‘학술지’를 통해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를 통해서 말입니다. 황우석 박사 얘깁니다. 세계적 학술지인 영국의 ‘네이처지(Nature)’는 지난 14일,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배아줄기세포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황 박사가 재기를 노리고 있으며, 연구부정 행위로 추락한 오명을 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울러 황 박사가 알츠하이머나 당뇨, 이식용 장기, 멸종동물복원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사엔 ‘복제의 귀환'이란 이례적인 제목까지 달아줬습니다.
‘네이처지’의 보도가 나간 다음 날, 또 다른 세계적 학술지인 미국의 ‘사이언스지(Science)’도 황 박사의 재기를 타진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사이언스지는 ‘연구부정 이후, 한국 복제과학자가 구원을 찾고 있다.’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썼습니다. 지난 2006년, 황 박사의 인간 배아줄기세포 논문 2편을 게재했다 철회한 ‘사이언스지’가 8년 만에 황 박사의 연구를 재조명한 것입니다.
물론, 두 학술지는 황 박사 복귀에 대한 찬반 입장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황 박사는 동물복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자며, 학계에서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양후안밍 중국 ‘BGI-센젠 연구소’ 소장의 전망과 “황 박사가 동물복제를 진행하고 있지만 학계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인수 미국 클리블랜드대 생명윤리학과 교수의 말을 함께 실었습니다. 또, 아직도 과학계에서는 황 박사에게 재기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과 데이터를 조작했던 과학자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전 기자로서 또 수의사이자 기초의학을 전공한 연구자로서 이번 보도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황 박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세계적인 학술지가 뚜렷한 연구 성과를 내지 않은 과학자를 이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학계 반응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한 생명공학 교수는 “네이처지와 사이언스지가 왜 이런 기사를 실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황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은 전 세계 과학계에 나쁜 영향을 미쳤고. 이후로도 논문조작 사건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다시 황 박사를 보도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국내 한 수의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난 황우석 박사의 연구력을 높게 평가한다. 또, 그의 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지금 현재 뚜렷한 연구 성과를 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특집 기사를 왜 실었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네이처지와 사이언스지는 무엇을 노렸나?
그럼, 이 세계적인 학술지는 왜 황우석 박사를 집중적으로 보도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풀기 위해 먼저 과거에 있었던 연구 사례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997년, 영국 월머트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소식은 대서양 건너 미국 오리건 국립영장류연구센터에도 전해졌습니다. 당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원숭이 복제연구를 진행하던 연구팀은 이 소식을 듣고 초조해졌습니다. 원숭이 복제는 양보다 훨씬 어렵고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연구가 계속 제자리걸음에 머물자, 연구진은 연구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어려운 ‘성체 세포를 이용한 복제’가 아닌 상대적으로 쉬운 ‘배아 분할법’을 이용해 복제 원숭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평가는 냉혹했습니다. 이 배아 분할은 오래전에 개발돼, 하등동물과 가축 복제 등에 사용된 구식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체세포를 이용한 핵이식’만 복제 연구 범위에 포함하고 있을 만큼 ‘배아 분할 연구’는 복제 연구 대상에서 제외된 상탭니다.) 새로운 복제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쌍둥이처럼 닮은 두 마리가 태어난 것도 아닌 연구를 높이 평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 배아 분할에 의해 최초로 탄생시킨 복제 원숭이에게 ‘테트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실험에 쓰인 4개 배아 중 3개는 살아남지 못하고 네 번째 배아가 1백57일 만에 원숭이로 태어나, 4분의 1이란 의미의 ‘테트라’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연구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립니다. 이 연구를 진두지휘했던 책임연구자는 바로 한때 황우석 박사와 공동연구를 진행했던 미국 피츠버그대 섀튼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논문을 실어준 학술지는 바로 사이언스지였습니다.
과학도 대중의 관심이 필요
그럼, 왜 '사이언스지'는 평범한 논문을 받아줬을까요? 결론은 간단합니다. 과학도 대중적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과학연구는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주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 잡지라고 평가받는 '사이언스지와'네이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원숭이 복제는 과학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대중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주제였던 것입니다.
언론도 재빨리 이 연구 성과를 보도했습니다. 대중들은 이제 복제인간의 출현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믿게 됐습니다. 이런 점을 노렸는지, 섀튼은 논문에서 영장류 ‘복제(CLONE)’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섀튼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주제로 연구 방향을 바꾸면서 그가 그렇게 바라던 '스타 과학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심이 컸던 섀튼은 영장류 연구센터 팀장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이후 “우리는 오리건을 사랑하지만, 과학을 더 중요하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피츠버그대 발생연구센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섀튼의 사이언스지 논문과 황우석 박사의 이번 기사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학술지들이 과학 위에 군림한다.”
이 시점에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 미국 UC 버클리교수의 지적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셰크만 교수는 지난달 영국 유력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앞으로 네이처나 셀, 사이언스지 같은 저명 학술지에 자신의 연구 성과를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셰크만 교수는 그 이유를 저명 학술지에 만연한 ‘학술적 폭압(tyranny)’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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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크먼 교수는 유명 학술지에 등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원칙을 무시하고, 최신 유행하는 과학 분야만을 좇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들 학술지의 편집인이 현재 활동 중인 과학자들이 아니라 단순 전문가들로서, 큰 관심을 끌법한 연구를 선호하는 점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논문이 학술지에 얼마나 자주 인용됐는지를 계량화해 논문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 이용되는 ‘논문인용지수’(impact factor)에 대해서도, “논문이 자주 인용되는 것은 그만큼 내용이 좋기 때문일 수 있지만, 단지 시선을 끄려는 자극적이거나 잘못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에 대해 네이처 편집장 필립 캠벨은 “우리는 과학적 중요성에 기반을 둬 게재될 논문을 선정한다.”라며 “논문이 인용되고 언론에 소개되면 결과적으로 영향력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편집인들이 그런 것들을 기준 삼아 논문을 선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과학과 정치는 ‘공생관계’
흔히 우리는 과학과 정치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지저분하고, 진실이 없는 문제투성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과학은 그와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깨끗하고 고귀하며 진실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학은 지저분한 정치와는 분리돼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과 정치는 매우 가까운 ‘공생관계’라고 보는 게 적합할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연구 업적을 내기 위해선 연구비가 필요하고, 그 연구비는 결국 ‘정치적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현실에 반영할 수 있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과학에 정치적이고 계산적으로 접근합니다. 또, 그런 정치의 도움을 받은 과학은 사람들의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을 대중적 호소력 있는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일그러진 경쟁 욕구, 성과만 내면 된다는 ‘결과만능주의’, 희박한 윤리 의식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거기에 이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학계와 언론의 무능력이 더해지며 안타까운 사고들이 터지게 됩니다.
전 이번 보도를 보며 세계적인 학술지로 평가받는 네이처, 사이언스지도 이런 점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의 주목과 관심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학술지의 기능은 과학적 성과에 대한 검증과 비판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연구자를 찾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건 학술지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아울러, 이런 학술지를 비판 없이 수용해 황우석 박사의 재기를 전망하는 연론 역시,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계와 언론계의 뼈저린 반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취재파일] 네이처지와 사이언스지는 왜 황우석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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