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용정의 광명 중학교 동창인 두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정 전 의장은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해방 뒤 국군 창군 주역이 됐습니다. 이어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지내고 지리산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반공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군복을 벗은 뒤에도 박정희 대통령 옆에서 탄탄대로를 거쳤습니다. 6년 7개월간의 국무총리, 6년 간의 국회의장, 두 차례의 외무장관을 거치며 "대통령만 빼고는 모든 자리를 거쳤다"고 할 정도의 관운을 누렸습니다.
정 전 의장이 양지만 걸었다면 문익환 목사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문익환은 평양고보와 광명고보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학도병 징집에 반발해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습니다. 그 후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1975년 절친했던 장준하 사상계 대표의 변사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과의 싸움에 본격 뛰어들었습니다. 재야운동의 최전선에 나서, 8년여의 옥고를 비롯해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말년까지 통일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뒷줄 왼쪽부터 장준하 사상계 대표, 문익환, 시인 윤동주, 앞줄 앉은 이가 정일권
(사진 출처: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사업회)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 전 의장은 1994년 1월17일 하와이에서, 문 목사가 1월18일 서울 자택에서 각각 영면했습니다. 장례식도 1994년 1월22일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장례식 내용은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정 전 의장은 사회장으로 국회에서 영결식이 엄수된 반면, 문 목사의 경우 한신대 교정에서 겨레장으로 치러진 뒤 노제를 거쳐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습니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립니다. 어찌보면 두 사람은 양단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인물들이 아닌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습니다. 1930년대 후반 같은 교복을 입고 한 카메라 앞에 섰던 두 청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던 70여년 전 그날, 그들은 이렇게 달라질 자신들의 인생을 예감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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