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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20분이라니…" 맥도날드와 어르신들의 우울한 갈등

뉴욕 플러싱 맥도날드 자리싸움과 한인사회

[월드리포트] "20분이라니…" 맥도날드와 어르신들의 우울한 갈등
  뉴욕 맨해튼에서 퀸즈 쪽으로 강을 건너면 나타나는 플러싱은 대표적인 한인타운이다. 최근엔 중국 이민자들이 유입되고 있지만, 수십년 이민생활을 해 온 이민 1세대 한인 동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이곳의 맥도날드 매장은 크지는 않지만 목이 좋다.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위해 찾는 상점들이 많은 곳이라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가까운 곳에는 버거킹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어서 갈등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또 맥도날드는 다른 가게보다 커피값이 싼 편이다. 중간크기 커피가 1.09 달러, 감자튀김은 1.39달러로 노인들 용돈에 큰 부담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보낼 만한 곳이 필요한 한인 노인들은 바깥 바람을 피하고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면 오래 머무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경찰 불러 '나가달라' 야박한 대응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해부터였다. 수년 동안 한인 노인들이 이곳에서 담소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숫자도 차츰 많아졌고 매장에 머무는 시간도 너무 길어졌다. 이른바 '자리 회전율'이 낮아졌고 운영에 위기감을 느낀 주인은 마침내 경찰을 부르고 말았다. 영업권이 침해받고 있는만큼 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객은 한인이지만 주인은 미국 사람이니 미국식대로 판단한 것이다. 미국인에게 한인 어르신들에 대한 공경심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경찰들은 난감해했지만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매니저의 요구대로 노인들을 나가게 했다. 또 매장은 '주문한 식음료를 20분 안에 끝내달라'는 안내문을 걸었다. 야박한 노릇이지만 어떤 노인들은 매장점원이 나가달라고 하면 골목길을 한번 돌고 다시 들어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먼 나라 뉴욕에서 벌어진 한국 어르신들의 수난이었다.

 한국 노인들이 당한 일에 대해 뉴욕에선 다른 인종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미주 한국일보가 이 문제를 보도한 열흘 뒤 뉴욕타임스가 다시 기사를 썼다. 한인단체들은 인종차별, 노인차별 행위를 강도높게 비난하고 매장의 즉각사과를 요구하며 한달 동안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뉴욕의 정치는 인종.민족간의 갈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계 정치인은 맥도날드와 한국인들 사이에 중재에 나섰다. 중재 내용이 주목할만하다. 맥도날드 매장이 20분으로 정한 테이블 제한시간을 1시간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또 맥도날드 매장 주인은 너무 긴 시간 머무는 노인이 있을 경우, 경찰을 부르지말고 지역 정치인 사무실의 중재를 받으라는 내용이다. 손해를 본 업주의 입장도 고려한 계량적 해법을 내놓은 셈이다. 어쩔 수 없었겠지만 문제는 마음 속에 입은 상처였다.

박진호취재파일


    먼 이국에서 쉼터가 없는 한인 노인들

화가 나는 일이지만 한국인과 미국인 정서의 간극은 그렇게 크고 좁혀질 가능성은 없다. 몸에 밴 문화의 차이이고 매장 주인입장에선 사업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계 이민 1세대는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이다. 연말의 동포 행사와 식사자리에서 뉴욕 이민 무용담을 듣고 있다보면 책으로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과 손에, 그리고 마음에도 거친 뉴욕 땅에서 장벽과 차별을 이겨내고 뿌리를 내린 그들 만의 흔적이 남아있다.

미국 생활에서 느낀 것은 상대적으로 넉넉한 분들일지라도 뉴욕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가와 생활비용이 너무 높다보니 대부분 중년부부, 젊은부부들은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하신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낼 여유는 많지 않을 것이다. 홀로 된 노인들도 많다. 한인교회의 한 목사는 "한인 노인들이 시니어센터에서 무료제공되는 식사를 드시고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잔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5년 넘게 계속된 미국 불황의 그늘은 동포사회에도 드리워져있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빈곤층, 특히 고령층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고국도 아닌 곳에서, 언어장벽이 있는 노인들에게는 경기침체가 큰 부담이다. 작은 집에 살아도 우리 돈으로 수십 만원이 나오곤 하는 난방비같은 생활비용은 맥도날드 자리싸움의 숨겨진 배경이다.

"아무리 오래 앉아있다고 해도 커피 한잔이라도 매일 사주시는 분들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뉴욕 한인들의 분노는 크다. 하지만 매장을 운영해 이익을 남겨야하는 주인은 아마도 이 정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거대 패스트푸드업체의 본사 차원에선 사과와 대책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맥도날드는 "고객친화적인 매장이 되겠다"는 해명아닌 해명에 그쳤다. 매장 크기를 늘려 한인 노인들에게 공간을 주고 주인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식의 통큰 해법은 나오지 않을 듯 하다. 양측의 생각은 사실 뿌리부터 다른 것이다. 뉴욕 정부가 나선다고 해도 해법은 '20분을 1시간으로, 경찰신고는 몇시간 이상일 경우'식이 될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뉴욕의 한인들과 한인단체들의 몫이다. 뉴욕에는 성공한 한인 동포 인사들이 굉장히 많다. 이 분들의 부와 능력에는 한인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 마련이 그렇게 부담스런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왜 한인 노인들을 괄시하느냐고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우리 어르신들이 너무 안스럽지 않은가? 맥도날드를 대신 이 분들이 편하게 머물수 있는 공간을 한국인들이 만들어 '우린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통쾌한 일침일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일 이후 한인노인 전용 카페가 많이 생겨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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