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염 추기경 "화해와 통합 위해선 내가 모범 보여야죠"

"하느님서 멀어지면 괴물로" "'사제 정치개입 금지' 발언은 편가르기 안된다는 것"<br>"임신 때부터 아들 신부되기 바란 어머니, 40년 뒤에야 털어놔"

염 추기경 "화해와 통합 위해선 내가 모범 보여야죠"
"나부터 죽어야지. 남들한테 어떻게 살라고 하면 '너나 잘해'란 말을 들어요. 말을 많이 하면 말의 논리에 빠지기도 쉽구요. 내가 잘살아서 모범을 보여야죠."

추기경 서임 후 첫 메시지로 갈등과 분열 치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염수정 추기경에게 화해와 통합을 위해 무엇을 할지 묻자 돌아온 답이다.

염 추기경은 16일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고 각자가 살아야 한다"면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선의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을 부정하면 더 인간다워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괴물로 변한다"고 말했다.

하느님에게서 독립해 살려면 자신이 신이 돼야 하기 때문에 인간다워지기는커녕 점점 괴물이 돼 간다는 것이다.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했을 때에 이어 이번에 다시 '흩어진 양들을 모으겠다'고 거듭 밝힌 이유를 묻자 "그게 내 사명이니까..."라고 답했다.

"하느님과 멀어지면 가정 안에서도 아내와 아이들한테 폭력적으로 변하고 괴물이 됩니다. 하느님을 닮은 존재인 메시아 예수의 사명이 흩어진 양을 모으는 거예요. 하느님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모든 이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기만 웰빙의 삶을 살고 자기만족을 누리고 혼자서 재물을 누리는 건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라며 "남들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 논란이 됐던 '사제의 정치개입 금지' 발언의 취지는 이렇게 설명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두고 한 얘기가 아니었어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이 있는데 아픔을 같이해야지 편 가르기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언론이 콘트라스트(대조)를 하는 거지, 난 그런 거 안 합니다."

사제들이 현실 발언을 하고 사회참여를 하는 게 직접 정치개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그건 언론이 해석할 문제입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얘기한 거니까..."라며 말을 아꼈다.

정진석 추기경과의 역할 분담에 대해서는 "역할이랄 게 뭐 있나"라고 답한 뒤 "하느님의 일, 믿음의 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살면 서로 분열하지 않고 일치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 안에서 추기경 서임 발표 전에 사회참여에 관심이 많은 추기경을 임명해 달라는 청원운동이 벌어진 것과 관련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서임된 날이 주님의 세례축일이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네편 내편 없이 다 한 형제다. 그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거다. 육체적 DNA를 초월해 생명까지 내놓은 예수의 형제성은 우리에게 삶의 길을 가르쳐 준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에 관한 질문에는 "착한 목자 예수님을 따라 하는 게 내 할 일이다. 돌쩌귀, 경첩이란 뜻을 가진 추기경은 지역과 세계 교회, 사회를 잘 연결할 책임이 있다. 한국처럼 되고 싶은 나라도 많지만 우리의 나쁜 점은 전파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쇄신해야 한다"고 답했다.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염 추기경은 "아침 미사를 드리고 학교에 갈 정도로 성당에 사는 게 좋았다"면서 신부가 된 계기와 그에 얽힌 가족사도 소개했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를 어디 갈지 몰랐는데 우연히 본 잡지에 지금은 없어진 성신고 입학안내를 봤어요. 어떤 학교냐고 물어보니 신부가 되는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때 다니던 동성중학교 바로 밑에 있어서 한 번 가볼까 하고 지원했어요."

당시 염 추기경은 어머니와 형제들과 따뜻한 아랫목에 모여앉아 진학 문제를 상의했다고 한다.

성신고 얘기를 했더니 본당신부한테서 신부 되라는 말을 들었던 작은 형이 부담을 덜었다는 듯 "그거 좋네. 가라"고 적극 추천했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잠자코 있었다.

그랬던 어머니는 1981년 염 추기경의 막내 동생이 사제품을 받고 가족끼리 저녁을 먹던 날 가슴 속 깊이 묻어뒀던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느님이 내 소원을 다 들어주셨다'고 하셨어요. 무슨 말씀인지 여쭤봤더니 나를 가졌을 때부터 사제가 되길 바라셨대요. 밑에 두 동생도 똑같았구요. 난 내가 잘 나서 신부가 된 줄 알았어요. 그때 나이가 30대 말이었으니 어머니는 40년 가까이 그 얘기를 속에 품고 계셨던 거죠. 여자들 참 대단해요."

염 추기경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역할이 적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그는 "1960년대 초반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로 미국과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갔을 때 교황 요한 23세가 중재에 큰 기여를 했어요. 성경 필레몬서를 보면 바오로가 그리스도 신자가 된 노예를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노예제도를 바꾸는 큰 힘이 됐죠. 그리스도인들은 약하지 않아요."

염 추기경은 오는 19일 노숙자 등이 새 삶을 준비하는 은평마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교회 밖의 첫 일정을 시작한다. 원래 작년 성탄절 일정이었는데 한 신부 어머니의 장례 때문에 가지 못해서 이번에 약속을 지키러 간다.

염 추기경은 "산다는 건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도 아니다. 사회생활에서도 많이 느낀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데 결국 옆에서 도와주고 하느님이 도와서 되는 일도 많다. 신뢰와 믿음으로 사는 게 충실한 삶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