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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요했던 '솔섬' 시끄러워진 이유…'솔섬' 사진 저작권 분쟁

[취재파일] 고요했던 '솔섬' 시끄러워진 이유…'솔섬' 사진 저작권 분쟁
알록달록한 색깔의 스카프를 두른 장신의 외국인이 서울중앙지법에 나타났다. 그것도 민사합의부에......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이 사람은 영국 출신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이다. 정사각형의 흑백 풍경 사진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케나가 법원에 나타난 이유는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서이다. 케나의 작품을 둘러싸고 법정 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솔섬 마이클케냐

                   ▲ (마이클 케나 '솔섬(Pine Trees Study 1, 2007)')
 

사건의 중심에는 케나의 2007년작 ‘솔섬(Pine Trees Study 1)’이 있다. 강원도 삼척의 작은 무인도, ‘속섬’을 찍은 흑백 사진이다. 바다 위에 고요히 떠있는 듯한 소나무 섬의 모습은 작품 뿐 아니라, 작가도, 또 조용했던 무인도까지도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게 했다. ‘속섬’이라는 이름을 놔두고 ‘솔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사진 애호가들은 ‘케나처럼’ 사진을 찍어보겠다며 ‘촬영 포인트 찾기’에 나서기도 했다. 사실 당시 ‘속섬’은 LNG 생산기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는데, 여론에 힘입어 보존이 결정되기도 했다. ‘케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김성필 아침을 기다
                                 ▲ (김성필 '아침을 기다리며'(2011))


그런데 케나 측이 이 사진의 ‘저작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2011년 대한항공의 TV광고에서 케나 사진과 ‘상당히’ 유사한 사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2011년 대한항공은 여행사진상에서 입선한 아마추어 작가 김성필 씨의 사진을 TV광고에 사용했다. 강원도 삼척의 ‘속섬’의 해 뜰 녘 풍경을 찍은 ‘아침을 기다리며’란 제목의 사진이었다. 같은 장소의 풍경을 찍은 것이긴 한데, 구도가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일부러 따라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구도라는 것이다. 케나 사진의 국내 저작권을 관리하는 공근혜갤러리는 대한항공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다. 항의로 시작했는데, 상대측의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에 소송까지 제기하게 됐다.

솔섬 마이클케냐
공근혜갤러리 측은 전문가들에게 두 사진의 비교를 의뢰했다고 한다. 케나 사진이 흑백이고, 김성필 작가의 사진이 컬러이기는 하지만, 비율과 컬러를 맞추어 비교해봤다. 소나무가 좀 자란 것 빼고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히 겹쳐졌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케나의 사진을 ‘모방’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대한항공을 소유한 한진그룹은 산하에 문화재단 일우재단을 두고 전시공간인 일우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일우재단은 특히 지난 5년 동안 주목받는 사진작가를 지원하는 일우사진상을 수여하고 있다. 나름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대기업이 ‘유명 사진’을 몰랐을 리 없다고 케나 측은 주장하고 있다. 또 그런 기업이 ‘사진 저작권’을 무시하고 ‘상업적인 용도’로 ‘모작’을 사용한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케나의 사진이 광고에 사용되었을 때 받는 저작권료를 손해금액으로 산정해 소송을 냈다. 아직까지 TV 광고에 사용한 적은 없지만, 케나가 보통 광고 사진 사용료로 받는 돈은 4억 원 정도라고 한다. 그에 근거해 3억 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김성필 작가의 사진은 하늘의 모습과 컬러의 측면에서 케나의 사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케나 이전에도 ‘솔섬’을 찍은 작가는 있었다며, 케나를 ‘원작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실질적인 당사자인 김성필 작가에게 물었다. 혹여 케나의 작품을 따라할 의도가 있었냐고. 김 작가는 펄쩍 뛰었다. 케나의 작품은 알고 있었지만, 똑같이 찍을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해가 뜰 때쯤의 모습을 찍고 싶었고, 노출을 길게 줘서 구름의 흐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여러 점의 사진을 찍었고, 그렇게 얻은 사진 가운데 한 장이 ‘아침을 기다리며’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광고
                        (삼성전자가 진행했던 갤럭시 광고 시안1 - 마이클 케나 사진 사용)
삼성전자 광고
                     (삼성전자가 진행했던 갤럭시 광고 시안 2 - 이미지 사이트 사진 사용)

사실 이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건, 대한항공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4월 삼성전자와 진행했던 광고가 ‘불씨’가 되었다. 삼성전자 광고를 제작하던 제일기획 측이 케나의 사진으로 갤럭시 광고를 진행하겠다고 해서 공근혜갤러리 측과 저작권 협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흑백인 케나의 사진을 컬러로 쓰고 싶다며, 어디선가 케나의 사진과 ‘똑 닮아 있지만 같지는 않은’ 컬러 사진을 가져왔다. 인터넷 사진 콘텐츠 판매업체에서 몇 십만 원을 주고 구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공근혜갤러리 측은 ‘케나 닮은 꼴’ 사진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에 ‘마이클 케나’, ‘솔섬’이라고 검색하니 비슷한 사진들이 쏟아졌다. 일부 아마추어 작가들의 사진은 돈을 받고 팔기도 했고, 일부 사진 블로거는 ‘케나의 솔섬 촬영 포인트’를 찾아 자세히 올려놓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한 예술복합공간의 아트숍에서는 케나 이미지가 인쇄된 캘린더에서 사진만 잘라 액자에 넣어 ‘아트상품’으로 판매하고 있기도 했다.

이른바 ‘솔섬 사건’이 터지면서 그렇다면 과연 ‘사진 저작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사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사진 저작권’에 대한 법적인 해석이 내려진 적이 없었다. 있어봤자 ‘제품 사진’에 대한 저작권 판례만 있었을 뿐이다. 햄 제품을 찍은 사진을 애초 용도와 달리 한참 뒤에 사용했을 때 저작권이 침해되느냐 하는 사건이었는데, 당시 우리 법원은 단순한 ‘제품 사진’이기 때문에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만약 햄 제품 말고 그 주변에 작가의 창작성이 반영된 다른 요소가 있었다면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냥 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풍경 사진에 대해서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을만한 사례가 없었다. 여러 차례 분쟁이 있기는 했지만 그 때마다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봤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사진 저작권이 인정받으려면 ‘구도, 촬영 위치, 촬영 시간대, 렌즈의 포괄 각도, 셔터 스피드, 조리개, 색상 등’이 모두 일치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특히나 풍경 사진의 경우, 우연히 똑같이 찍은 것만으로는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똑같이 찍으려는 의도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풍경 사진에 있어서는 저작권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케나 사진’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저작권’보다는 ‘부정경쟁방지법’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사건은 특히, 저작권도 문제지만, 창작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저작권’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마다 겁을 낼 필요는 없다. 저작권자에게는 저작권 보호의 측면이 있다면, 일반인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풍경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소재이다. 명작을 따라 찍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케나도 사진을 공부할 때는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모방해 찍었다고 한다. 그래도 지켜야 할 범위는 있다. 상업적인 이용은 피해야만 한다. 취미로만 찍어서 지인들끼리 즐길 목적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번 사건은 유명 예술가와 대기업의 한 판 싸움이어서 더 큰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저작권에 있어서 ‘교과서’가 될지도 모르는 법원의 판결, 어떻게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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