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7일) 워싱턴 특파원들의 이목은 온통 미 국무부 청사로 쏠렸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워싱턴을 찾은 윤병세 외교장관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만나 과연 무슨 말을 주고 받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관심은 아베 일본 총리의 전격적인 야스쿠니 신사 방문으로 조성된 한미간의 미묘한 긴장감이 과연 어떤 표현으로 정리되고 발표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윤병세 장관의 워싱턴 도착 일성 역시 일본 지도부의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에 대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를 방문했을 당시 이미 “실망한다”는 매우 강도 높은 반응을 내 놓은바 있습니다. 때문에 케리 장관의 입에서 이번에는 어떤 표현이 나올까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입니다.
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습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일본의 거침없는 우경화 행보가 동북아 정세 전반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케리 장관도 공감대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회담이 끝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은 “과거사 이슈가 동북아 지역의 화해와 협력에 방해가 되고 있으며 진정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직접적으로 일본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로서는 할 말 다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케리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았습니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과의 회담 이후 일본을 비판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습니다. 일본 역시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고 안보 측면에서 신세지고 있는 것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팽창에 맞서 아시아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고 하는 아베 정권이 곱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케리 장관의 침묵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일본의 우경화 행보를 방치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용인하는 셈이 되고 장기적으로 미국이 구상하는 아시아 중시 정책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최근 들어 한일관계 개선에 공을 들여 왔습니다. 한일 관계 개선 없이 튼튼한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이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습니다. 미국 조야에서는 아베 총리가 미국의 뒤통수를 쳤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 실망스럽다는 공식 반응을 내놓은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케리 장관이 일본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미국 정부의 곤혹스러움이 얼마나 큰 지를 단적으로 보야주는 대목입니다.
우리 정부로서는 윤병세 장관의 이번 방문을 통해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의미있는 전환점을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예상되는 일본의 우경화 행보를 절대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윤병세 장관은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이런 점들을 충분히 설명했고 기대했던 것 만큼의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와 의회, 씽크 탱크의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나 그들이 ‘실망 이상의 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케리 장관으로부터 의례적인 화답도 받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고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동북아 지역의 화해와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월드리포트] 존 케리 장관의 '아쉬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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