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고려대 안암병원.
성탄절을 열흘 앞두고 최예원·예인 쌍둥이 자매가 '칠삭둥이'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다른 아기들보다 일찍 세상을 찾은 미숙아 자매는 부모의 품에 제대로 안겨보지도 못한 채 곧장 중환자실로 옮겨져 생사를 오가야 했다.
인공호흡기와 주사제에 의존해 겨우 생명의 끈을 이어갔다.
당시 예원양의 몸무게는 1.16㎏, 예인양은 1.19㎏에 불과했다. 둘을 합해도 보통의 신생아 한 명의 무게에도 못 미칠 정도로 너무나 가냘팠다.
설상가상으로 예원양은 미숙아 망막증과 뇌수종 합병증으로 고통이 더했다.
예인양은 그나마 상태가 나았지만, 이따금 호흡이 멈추거나 하지 경직으로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갓 태어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는 억장이 무너졌다.
아기들에게 닥친 지금의 고통뿐 아니라 혹여나 세상을 등질까 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까 봐 매시간이 걱정과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부부는 주변에 희망을 품을만한 사례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같은 중환자실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기들이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보면 두려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입원 기간 매일 자매를 면회하며 희망의 주문을 걸었다. 커피를 싸들고 가 간호사들을 응원했다.
그렇게 고통의 나날을 보낸 지 103일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자매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주변의 정성어린 보살핌 덕분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고 몸무게도 부쩍 늘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9년이 흐른 작년 말.
고대 안암병원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건강하게 자란 쌍둥이 자매와 그 부모인 최용호(40)씨 부부였다.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자매가 9년 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그곳에서 근무했던 김승남(여) 간호사. 9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서로 단번에 알아보고 하염없이 재회의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제 딸과 자매가 동갑이었고 육아휴직 후 막 복직했을 때라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 아기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커 줘 대견하고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최씨 부부의 손에는 배냇저고리 다섯 벌이 들려 있었다.
태어날 땐 사경을 헤맸지만 모든 걸 극복하고 건강하게 자란 자매를 보면서 다른 이들도 희망을 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병원에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자매는 이제 10살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
꿈이 많고 놀기도 좋아하는 여느 어린이들과 같다.
신생아 때 병마의 후유증으로 예원양은 시력이 많이 저하됐고 예인양은 다리에 힘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지만, 그래도 최씨 부부는 감사하기만 하다.
최씨는 5일 "아이들이 아플 때 한순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우리가 희망의 증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우리가 희망의 증거"…쌍둥이 자매의 화려한 외출
생사 갈림길 '칠삭둥이', 9년만에 고대병원 찾아 배냇저고리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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