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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마트폰 제조사가 ADHD 예방 위해 나서야

[취재파일] 스마트폰 제조사가 ADHD 예방 위해 나서야
■ ‘말을 비틀어 나를 채운다?’

한 6년 전 이맘 때 생애 처음으로 말을 타봤습니다. 이름은 ‘일백이’였습니다. ‘일백이’ 등은 겨우 2미터밖에 안 됐는데 막상 올라타니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군 복무 시절 수 미터 높이에서 레펠 훈련을 받을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당시 조련사는 “말을 타면 자연스럽게 뱃살이 빠지고 몸에 근육이 붙는다.”라며 말 타기의 효능을 설파했습니다. 그의 말은 다음 날에 증명됐습니다. 불과 20분 정도 탔을 뿐인데 배는 윗몸 일으키기를 백만 개 한 것처럼 당겼고, 허벅지며 팔은 농구를 서너 게임 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백이’ 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제가 누린 운동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일백이’ 등에서 내려와 찬찬히 그를 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칠게 내뿜는 콧김, 촉촉이 젖은 목줄기, 파르르 떨리는 근육들…. ‘아, 나 운동하자고 얘를 힘들게 했구나. 일백이를 비틀어서 나를 채웠구나.’ 그 뒤로는 말 탈 기회가 있어도 별로 타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군요.

■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승마 치료’ 인기

그렇게 말에 대한 연민이 잊혀져 갈 즈음에 다시 말과 마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불리는 ADHD를 치료하는 데 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취재하게 된 거죠. 기사거리라는 생각보다 개인적 호기심이 먼저 달려 나갔습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의 불안정한 심리를 동물인 말이 치료해준다는 거지?

ADHD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주의가 산만하고 충동 조절과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면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생활이 힘들어지고 점점 반사회적인 존재로 내몰리게 됩니다. 문제는 이를 조기 치유하지 않으면 어른이 될 때까지 그 상태가 지속된다는 점이죠.

지난해 12월 27일 인천에 있는 승마힐링캠프를 찾았을 때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승마 치료 첫 단계로 ‘그루밍(Grooming)’을 합니다. 말의 몸과 갈기를 손과 빗으로 쓰다듬어 주면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이지요. 이렇게 말과 어느 정도 교감을 주고받은 뒤에 비로소 말에 올라타 함께 움직입니다. 가다 보면 말이 갑자기 멈출 때도 있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겠죠. 이럴 때 말을 설득하고 말이 왜 그럴까, 생각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사회성이 길러지게 된다는 것이 승마 치료의 핵심입니다.

서울삼섬병원 연구팀이 최근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ADHD 증상이 있는 2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약 3개월 동안 승마 치료를 했더니 무려 18명이나 증상이 개선됐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 ADHD 예방에 삼성과 애플이 나서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ADHD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많은데 승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한정돼 있습니다. 예산 부족 탓이지요. 현재 국가 차원에서 운영되는 승마 치료 시설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 등이 일부 지원하는 수준에서 운영되는 곳이 인천과 대구 등을 포함해 4곳에 불과합니다.

ADHD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장애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ADHD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급증한 건 사실이지요. 현대 의학에서는 그 원인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 찾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좌우 뇌의 균형이 깨지면서 전두엽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바로 ADHD가 우뇌의 기능이 떨어져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우리 청소년 5명 중 1명꼴로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선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절차와 책임 소재를 먼저 따지는 국가가 당장 나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해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세계 무대에 우뚝 선 삼성과 애플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생긴 그늘을 살펴야 합니다.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가 안 나온 상태에서 어불성설이다.”라고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에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라는 감성적 구호를 들이밀며 자선을 촉구해본들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폐암이 담배 때문에 일어난다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며 버텨온 미국 최대의 담배 회사가 폐암 환자에게 수천만 달러를 배상한 사건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그러나 해악도 끼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지금부터라도 ‘가능성의 예방’을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기업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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