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새해 첫 새벽, 국회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무슨 말을?

[취재파일] 새해 첫 새벽, 국회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무슨 말을?
꼭두새벽 법사위에 깜짝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2014년 1월 1일 0시 50분, 올해 가장 먼저 상임위를 연 곳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였습니다. 국정원 개혁법안과 여야의 막판 최대 쟁점이었던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등 주요 법안을 처리하는 마지막 상임위였기 때문입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법사위에는 국무위원만 5명, 경찰청장까지 합치면 주요 정부부처 고위 인사들이 6명이나 답변석에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관심을 받았던 인물은 단연 남재준 국정원장이었습니다.
남재준
 남 원장의 답변 장면을 국회에서 보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비공개 회의이기 때문에 남 원장이 발언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지켜볼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모두 발언 정도를 볼 수 있고, 비공개에서 한 중요 발언은 여야 정보위 간사들이 사후 브리핑을 해주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게 전부입니다. 게다가 국정원장이 법사위에 출석한 것은 지난 14대 국회 이후로 처음이라고 합니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몰린 것은 물론이고, 기자들의 관심도 집중됐습니다.

"저는 의원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원들의 현안 질의에 상당수 국무위원은 낮은 자세를 유지하곤 합니다. 괜히 목소리를 높여봐야 질문의 수위가 더 올라가거나 고성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 원장의 답변 태도를 보면서 처음 받은 인상은 자기 소신이 강하다는 거였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원에 대해 추궁하면 말꼬리를 흐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의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의원의 질문에 "저는 의원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고 말하는 식이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사람들의 남 원장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이유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2015년까지 통일이 가능하다"는 발언의 진실은?

지난해 12월 24일 조선일보는 흥미로운 기사를 1면에 게재했습니다. 남 원장이 국정원 간부들과 송년회를 하면서 2015년이면 남북이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통일돼 있을 거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남재준
게다가 남 원장의 애창곡인 독립군 군가 '양양가'를 합창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에서 북진하던 국군이 군가로 불렀다는 양양가는 가사가 비장합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는 내용 때문입니다.

▶ ' 양양가'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이 말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북한의 정세 변화에 대비해 '2015년 통일 플랜'을 갖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더 극단적으로 나가면 강제력을 사용하더라도 그 시한까지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이 문제를 집요하게 캐묻자, 남 원장이 직접 해명에 나섰습니다. 법사위 문답 내용을 직접 옮겨봅니다.
남재준

@ 박지원 의원(민)
"국정원장이 송년회에서 2015년까지 통일된다. 몸을 바쳐서 일을 하자, 하는 의미는 설사 우리나라는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고, 2015년까지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또 내부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까?"

@ 남재준 국정원장
"저는 양양가를 부른 적도 없습니다"

@ 박지원 의원(민)
"제가 노래불렀다는 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 남재준 국정원장
"해명을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에서 북한 체제가 공고화되는 상황부터 북한 체제가 붕괴되는 상황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눈을 부릅뜨고 생명을 바칠 각오로 들여다봐라. 이렇게 얘기를 한 것입니다."

남 원장의 말대로라면 북한 정세의 다양한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자고 독려했다는 취지로 들립니다. 국정원 간부들을 모아놓고 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말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남 원장은 비장한 내용의 양양가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만 확실히 말했을 뿐, '2015년'이라는 연도가 왜 나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상황을 지켜보는 데 있어서 2015년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아니면 2015년을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것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조선일보 기사 내용대로 조국 통일 달성을 결의하는 자리로 구체적인 플랜이 오갔는지도 남 원장 답변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기사가 나게 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감찰 조사를 지시해놓은 상태라고 답변했습니다.

기사 자체가 민감했다는 것만 확인해준 셈이었습니다.

통합진보당보다 억울한 국가정보원

남 원장 발언에서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대목은 국가정보원 개혁법안에 대한 불만입니다. 감기에 걸렸는지 목이 잔뜩 쉬어 있었던 남 원장은 통합진보당을 직접 거론하면서 국정원의 억울한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 이춘석 의원(민)
"재판결과가 안나온 상황에서 국정원의 권한을 일부 축소시키는 것에 대해서 국정원장으로 억울하십니까?"

@ 남재준 국정원장
"죄형 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는데, 통진당 같은 사항은 재판결과가 안나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목이 쉬어서..국정원은 이미 선거 개입을 조직적으로 한 걸로 단언을 하고 그 다음번에 정치 개입에 대한 입법을 해서 양자가 동일한 잣대로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개혁법안은 법에는 큰 틀의 금지 규정을 넣어놓고 구체적인 내용은 내부규정에 일임해놓은 게 많이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의 국가기관과 언론사 등 민간을 대상으로 한 상시출입 금지 법 조항도 국정원 내부규정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셀프 규정'에 상당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남 원장은 내부 규정을 오는 1월 30일까지 만들어달라는 국정원 특위의 요청에 난색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서 내규를 만들고 싶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앞으로 국정원 개혁특위를 중심으로 내규에 대한 논란이 또 한차례일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정치개입 여지를 확실하게 없앤 것인지, 국회 보고 과정에서 여야의 격돌이 예상됩니다. 남 원장은 법사위 발언 내내 자신의 국정원 개혁 의지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은 충분히 보장하면서 정치개입 소지를 없앨 수 있는 규정을 남 원장은 어떻게 만들지 궁금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