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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강추위에 쌩쌩한 배터리…언제쯤 개발될까?

[취재파일] 강추위에 쌩쌩한 배터리…언제쯤 개발될까?
배터리의 악몽이 기억납니다. 악몽은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국방부 기자실에서 벌어졌습니다. 뉴스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중계차로 사건 속보를 라이브로 중계하던 당시, 제 노트북 배터리는 숨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리튬이온 배터리는 5년째 혹사당한 상태.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시키고 노트북 어댑터를 제거하면, “사용 시간 15분” 메시지가 뜨는 식이었습니다. 배터리는 노트북에 산소 호흡기처럼 매달려 있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조마조마할 때, 생방송 직전에, 노트북 어댑터 줄이 누군가의 발에 걸려 본체에서 빠져버린 겁니다. 컴퓨터는 꺼졌습니다.

옆에 있던 선배의 노트북을 가져와 사고는 면했습니다. 그날 다짐했습니다. 새로 만나게 될 배터리는 애지중지하겠다고요. 이듬해 노트북을 교체했습니다. 너 잘 만났다, 배터리를 분리해서 가방에 따로 고이 모셔뒀습니다. 콘센트가 없는 곳에서, 정말 필요할 때만 배터리를 호출해 전원 공급을 부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제가 일할 때, 배터리는 가방 속에서 혼자 놀고 있습니다. 쉬는 날이 많고, 가끔 근무가 생기면 녀석은 최선을 다해줍니다. 덕분에 노트북 3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배터리는 2시간 넘게 버텨줍니다.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건 귀찮지만, 차안에서 여유 있게 기사를 쓰고 나면 뿌듯합니다. "배터리는 소모품입니다"라는 제조사의 얘기는, 여전히 "새것 사서 쓰세요"라고 들릴 뿐입니다.

이런 버릇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과도하게 충전하지 않으면, 더 오래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생긴 것입니다. 혼자서 3년째 시험한 결과, 나름 효과는 있는 것 같습니다. 입사 후 처음 만나 대조군 역할을 하게 된 악몽의 배터리보다는 훨씬 기특합니다. 특히 충전량을 10~90%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도록 노력한 효과도 큰 것 같습니다. 배터리가 떨어져 노트북 전원이 퍽 꺼지도록 방치한 적은 없었고, 100% 충전됐는데도 배터리를 빼지 않은 적도 없습니다. 사실 배터리가 계속 충전되도록 놓아두는 것은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국전기연구원 전지연구센터 도칠훈 박사는 설명합니다. 수명엔 방전이 쥐약이죠. 하지만 제 경험상, 계속 충전되도록 1년, 2년 너무 오래 방치하면 독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배터리를 분리해 혼자 놀도록 유난을 떨 수도 없는 것이 휴대전화 배터리입니다. 스마트폰에 늘 끼우고 다닐 수밖에 없으니까요. 성능 저하를 막을 비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제 스마트폰 배터리는 2012년 11월생이어서, 이제 겨우 만 1살을 넘겼는데 벌써 골골댑니다. 완전히 충전하고 나온 배터리가 오전에 50% 이하로 뚝 떨어지곤 합니다. 직업상 전화를 많이 써서 그렇겠지 위안을 하다가도, 하루에 배터리 2개를 쓰고 나면 뚝 떨어진 그의 체력이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예비 배터리를 충전해놓지 않으면 불안하고, 출장길에 충전기라도 빼놓으면 차 안에서 USB를 꽂아 야금야금 충전하느라 고생길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는 배터리의 노화가 심해집니다. 전기연구원이 온도에 따른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을 시험해봤습니다. 아래 그래프와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하 20도에서의 배터리 사용 시간(4시간20분)은 영상 25도(4시간50분)일 때보다 30분 짧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하 30도에서는 3시간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영하 30도에서의 사용 시간도 측정하는 이유는 군에서의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영하 10도에서는 새것의 70% 정도로 성능이 떨어진다고, 전기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이 시험은 새 배터리를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현실과 다소 떨어져 있습니다. 배터리가 오래될수록 온도에 따른 성능 저하는 심해집니다. 1~2년만 써도 요즘엔 새것의 절반밖에 못 간다고 느끼는 이유입니다. 여름엔 쌩쌩 건강했던 배터리가, 겨울엔 무척 아파보이죠. 이건 결국 계절에 따른 질병인 셈입니다.

배터리 성능 시험


사용 시간과 함께 떨어지는 것이 바로 전압입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영하 20도에서 배터리는 사용 4시간을 넘어서면서 전압이 3볼트 이하로 떨어집니다. 영하 30도에서는 사용하자마자 3볼트 아래로 떨어지죠. 시험에 쓴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압이 2.7볼트 이하로 떨어지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전기 공급을 자동으로 차단하게 돼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습니다. 즉 심한 추위에 오랫동안 노출된 전자제품은 배터리가 좀 남았더라도 갑자기 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 바로 전원 버튼을 누르면 켜지지는 않고 전압이 뚝뚝 떨어지면서 방전될 수 있기 때문에, 제품을 실내로 가져와서 배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배터리 온도만 올려주면 원래 성능을 그대로 회복하게 됩니다. 전해질이 다른 차량용 배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하게 시동을 걸기보다는 보험사를 부르거나, 디젤 차량의 경우 시동을 걸기 전에 충분히 예열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추울 때 감기 걸리는 듯한,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에는 아직 기술적 장벽이 높아 보입니다. 지금 리튬이온 배터리에 넣는 전해질은 액체인데, 이 액체 속에 녹아 있는 리튬 이온이 추운 날씨에는 이동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성능 저하로 이어지죠. 배터리에 들어가는 전해질은 1~2mL 정도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몇몇 회사가 전해질을 생산하고 있는데, 전해질을 어떤 물질로 만들 것이냐, 또 추운 날씨에도 경직되지 않도록 어떤 첨가제를 넣을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전해질 생산 기술은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고 합니다만, 아직 혹한에서도 쌩쌩한 배터리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도 영하 30도에서 아무 문제가 없도록, 새것의 70~80% 에너지를 내는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전해질 자체를 액체가 아니라 고체로 바꿀 수 있다면, 온도에 따른 성능 저하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차세대 배터리입니다. 전기연구원은 고분자나 세라믹으로 전해질을 만드는 기술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체 전지는, 특히 세라믹 전해질을 사용한 고체 전지는 강추위로부터 강하겠지만, 무엇보다 열로부터도 강할 것입니다. 지금 쓰는 액체 전해질은 언제든 불이 붙어 폭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폭발 사고도 고체 전지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고체 전해질 배터리가 나오면, “정품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발열, 화재, 폭발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고 문구가 사라질 날도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진은 지금 열심히 개발 중이라고 했는데, 내년이면 끝나나요? 질문에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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