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그 자체는 선악이 없는 것 같습니다. CCTV만 해도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침입을 사람 대신 자동으로 감시해주지만, 불필요한 감시로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이른바 ‘시선통신’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술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화면에 뜬 대상과 바로 연결할 수 있다는 뜻에서 시선통신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시선통신이라는 조어는 이렇게 꼭 해석을 해줘야 아 그렇구나 하기 때문에, 호기심 자극용으로는 괜찮지만, 기술의 본질을 꿰뚫는 이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은 와이파이를 켜면 사방의 신호가 모두 잡히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시선통신 기술은 다릅니다. 특정 방향으로부터 오는 와이파이 신호만 쏙 걸러내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단말기를 꼭짓점으로 8도 가량의 부챗살 모양을 펼쳤을 때, 그 안에서 신호를 내는 와이파이를 잡아냅니다. 다른 신호는 무시합니다. 그래서 단말기 화면을 컴퓨터 프린터 쪽으로 향하면 인쇄하고 싶은 파일을 보낼 수 있고, 길거리 가게로 향하면 매장에서 파는 상품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됩니다. 시선통신 기술이 구현하는 편리한 세상의 청사진입니다.
기술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음성 통화입니다. 현재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서비스처럼 3G나 LTE 망을 이용하지 않고도 와이파이로 연결해 음성 통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전화번호는? 물론 없어도 됩니다. 화면에 뜬 사람을 클릭해 ‘call'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통화가 연결됩니다. 현재 시연은 안 되지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넓은 공간에서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을 콕 찍어 쪽지를 날리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물론 와이파이 기반이어서 70미터 안에서만 할 수 있고, 벽이나 기둥이 둘 사이를 갈라놓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릅니다.
기술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포스트잇을 붙인 캔 음료를 건네는 기술, 시선통신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해변에서 "몇 명이 오셨어요?" 물어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길 건너 친구를 클릭해 “어디 가냐?” 물어볼 수 있는 세상. 지금은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런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죠?” 심드렁하게 물어보지만, “지금 어디 계신 분인데 저한테 전화하시는 거죠?” 라고 물어봐야 하는 상황. 시선통신이 ‘개인 정보=휴대전화 번호’의 의미를 희석하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닌지, 홍보 전화와 스팸 문자의 홍수가 더욱 거세지는 불편한 세상이 오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뉴스에서는 이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기술이 짠 나왔습니다! 소개하는 것보다는, 엔지니어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얘깃거리를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연구진은 말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기술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는 게 싫은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땡땡 식품, 땡땡 생명에서 마구 걸어오는 전화에 시달리는 세상인데 말이죠. 싫으면 어쩌죠? 와이파이를 끄고 다니면 된다고 연구진은 답했습니다. 낯선 전화 안 받는다고 외출할 때마다 와이파이 끄는 것도 참으로 귀찮은 노릇입니다. 좀 더 편리한 수신 거부 기술이 나오겠죠. 지금의 묵직한 장비는 4년 정도 뒤면 휴대전화로 쏙 들어갈 것 같습니다. ‘낯선 이와의 통화’라는 흥미로운 기술이 어떻게 가다듬어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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