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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美 NSA 정보수집 새 국면…"위헌 가능성 크다"며 중단 명령

- 명령 확정되면 NSA 정보수집 대대적 수술 불가피 -

[데스크칼럼] 美 NSA 정보수집 새 국면…"위헌 가능성 크다"며 중단 명령
미국 국가안보국 NSA의 무차별적인 정보수집이 위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정이 미국 연방법원에서 나왔습니다. 그것도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2년에 임명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판사에게서 말이죠. 미국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리처드 리언(Richard Leon) 판사가 주인공입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로 나선 사람은 래리 클레이먼(Larry Klayman)이라는 활동가입니다. 프리덤워치(Freedom Watch)라는 인권단체를 설립한 사람이고, 역시 보수성향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광범위한 휴대전화 통화기록 정보 수집이 폭로되자마자 오바마 대통령 등 정부를  상대로 이런 정보수집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겁니다.

원고가 요청한 것은 ‘금지 명령’(Injunction)입니다. 본안(merit)으로서 NSA의 정보수집이 위헌인지를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판사는 원고의 요청을 일종의 가처분으로 이해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내린 결정은 (1) 정부가 NSA의 광범위한 통화기록 정보수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통신회사인 버라이즌(Verizon)을 통해 원고들의 통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금지하고 (2)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가 이미 확보한 정보는 파기하라는 것입니다.

리언 판사는 다만 이 명령을 바로 집행하지 않고 상급심에서 결정이 확정된 뒤로 집행을 미뤘습니다. 국가 안보라는 사안의 중대성과 헌법적 이슈라는 측면을 모두 고려했다는 겁니다. 또 정부에 충분한 사전 고지의 의미도 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갑자기 이런 명령이 나가면 정부가 정말 필요한 정보 수집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항고를 해서 상급심 심사를 받는 동안 적절한 준비를 하라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통화 정보를 통째로 뒤지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적정한 사법적 심사를 받아가면서 입수하는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죠. 하지만 리언 판사는 자신의 결정이 상급심을 통해 확정되면 곧바로 이행할 것이며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중하면서도 매우 단호한 태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리언 판사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를 살펴보죠. 미국에는 통화기록 자체는 프라이버시, 즉 사생활의 비밀이 아니라는 연방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1979년에 나온 이른바 Smith v. Maryland 사건입니다. 통화 기록 자체는 통신업체가 보관하는 일종의 ‘영업 기록’(business record)에 불과하며 경찰이 영장 없이 장비를 동원해 통화 내역을 기록하는 것은 ‘수색’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상급심 판결에서의 법 해석은 하급심에는 그 자체로 ‘법’(law)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의무적으로 상급심의 법 해석을 따라야 하는 거죠. 그럼 특정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하급심으로서는 다른 해석을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상급심 판결을 해체해서 상급심 판결과 지금 자신이 다루는 사건의 다른 점을 찾아냄으로써 그 상급심 판결이 지금의 이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겁니다. 이걸 구별하기 혹은 구분하기(differentiation)라고 부릅니다.

이번 결정에서 리언 판사는 기존의 대법원의 Smith 판결이 왜 지금 이 사건에는 적용될 수 없는지를 논증합니다. 핵심적인 논거는 유선전화 시대인 1979년과 스마트폰 시대인 2013년의 우리 생활의 차이입니다. 유선전화 시대의 전화통화 기록에는 사생활 등 개인정보의 흔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인 지금의 통신 생활은 34년 전의 대법원이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우리의 삶 자체가 됐다는 겁니다. 거기에 정부의 엄청난 정보수집 능력의 발전(34년 전에는 모든 통신 데이터를 수집하고 필터링하는 식의 정보 수집 자체가 불가능했죠), 그리고 NSA와 통신회사들 사이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의 통화 기록을 통째로 수집해서 분석하는,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 식의 정보 기술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당시 대법원이 알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죠. 리언 판사는 2012년에 휴대전화 가입자가 컴퓨터와 태블릿와 모뎀을 합쳐서 3억2천6백만에 이르렀음을 지적합니다. 대법원의 Smith 판결이 나온 34년 전의 길거리에는 공중전화가 놓여있었죠. 요즘처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으면 당시에는 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여야 했다는 겁니다.

리언 판사는 미국 대법원이 2012년 판결에서 용의자의 차량에 GPS를 부착해서 한 달 가까이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판단한 예를 들었습니다. 대법원은 1983년에는 차량에 무선발신기(tracking beeper)를 부착해서 추적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량으로 주요 도로로 여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선지와 관련해서 사생활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할 수 없다”며 사생활 침해를 부인했었습니다. 대법원은 짧은 수신 거리에 단기간 추적을 하는 것과 장기간의 행선지 파악은 다르다고 본 겁니다. 리언 판사는 NSA의 도청 사건과 Smith 사건에서 경찰의 통화기록장치(pen register)를 이용한 집전화 통화내역 조사도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 겁니다.

리언 판사는 여기서 NSA의 통화기록 정보 수집의 광범위함, 무차별성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Smith 사건에서는 한 차례, 대상을 특정해놓고 벌인 통화내역 조사였지만 NSA의 통화기록 수집은 실질적으로 모든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이보다 더 무차별적이고 임의적으로 이뤄지는 사생활 침해를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헌법의 기초자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이 정부의 이러한 사생활 침해를 본다면 경악할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매디슨은 바로 권력에 의해 자유가 조금씩 은밀하게 잠식당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주의를 줬다는 점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리언 판사의 이번 결정에 대해 정부는 비상이 걸린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항고를 할 것이고 그럼 사건은 워싱턴 DC의 연방항소법원으로 넘어갈 겁니다. 판사들이 대체로 보수 성향이라고들 하는데 역시 보수 성향인 리언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걸 보면 정부가 안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방지방법원은 판사 1명이 단독으로 심리를 합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판사 3명으로 구성된 재판부(panel)에 의한 심리입니다. 우리처럼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그냥 동등한 판사 3명이 합의해서 결정을 내립니다. 어떤 결정이 나올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스노든 캡쳐_500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번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번 리언 판사의 결정은 자신의 NSA의 정보수집에 대한 폭로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이라고요. 자신은 NSA의 감시 시스템이 헌법적 심판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고, 비밀 법원의 승인 하에 움직이는 비밀 프로그램이 햇볕 아래에 드러나면 미국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드러날 것이고 이번 판결은 앞으로 나올 많은 법적 판단 가운데 첫 번째일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리언 판사도 이번 결정은 NSA의 정보수집에 대한 법적 판단의 첫 번째 장(chapter)일 뿐이라며 앞으로 다른 판사들이 위헌 여부 등 본질적 부분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짧은 방송 뉴스로는 도저히 이번 결정에 얽힌 자세한 얘기를 정리할 수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좀 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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