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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과수 폭포 기운 받아 새로운 신화를….

홍명보 감독 브라질 동행 취재기

[취재파일] 이과수 폭포 기운 받아 새로운 신화를….
"심장이 두근거려서 아주 혼났습니다."

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식이 끝난 뒤 경기장과 베이스캠프 답사에 나섰던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현지 동행 취재한 지상파 방송 3사 공동취재단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조 추첨 당시의 생생한 느낌과 자신의 지도 철학 등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홍 감독은 3그룹의 구슬 추첨 차례에서 A조부터 F조까지 6개 국가의 구슬이 배정될 때까지도 우리나라의 구슬이 뽑히지 않자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고 했습니다. 3그룹에서 남은 구슬은 미국과 우리나라 밖에 없었고 남은 조는 독일-가나가 속한 G조와 벨기에-알제리가 속한 H조 뿐이었죠. 죽음의 G조냐,행운의 H조냐 갈림길에서 우리나라가 극적으로 G조를 피해 H조에 배정되자 홍 감독은 옆 자리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홍 감독은 이어 마지막 4그룹 추첨에서도 잉글랜드-네덜란드 같은 전통의 강호들이 다른 조로 배정되고 러시아가 우리와 같은 H조에 합류하는 순간, 죽음의 조를 피했다는 기쁨은 잠깐…오히려 부담과 걱정이 앞섰다고 하더군요.

"언론에서 너무 '행운의 조'다, '16강 청신호'  이렇게 분위기를 띄워 놓으면 선수들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거든요. 선수들이 방심하게 되면 그 순간 우리 팀은 끝이예요. 언론이 그런 점에서는 좀 도와주셔야 합니다."

홍 감독은 실제로 조 추첨식 직후 한국 언론과 공식 인터뷰에서 "최악의 조는 피했지만 벨기에와 러시아,알제리 3팀 모두 피파 랭킹이 우리보다 높은 강팀들이고 쉬운 팀은 하나도 없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자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 장악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개인'이 아닌 '팀웍'을,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며 무엇보다 정신 자세를 중요시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다해도 인성이 안된 선수는 저희 팀에 필요 없습니다.그런 선수는 팀웍을 해치거든요. 실력은 좀 부족해도 희생 정신과 승부 근성을 갖춘 선수들이 모이면 그 팀은 실력 이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스위스와 평가전 때 일이었어요. 경기를 앞두고 왠지 선수들의 몸이 무겁고 분위기가 흐트러져 보였어요. 볼을 터치할 때 느낌과 선수들 눈빛만 봐도 그 날의 정신 상태를 읽을 수 있거든요. 이케다 코치도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임시 처방이 필요하죠. 선수들을 다 모아 놓고 딱 두 선수를 콕 집어서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홍정호,김영권! 볼 차기 싫으면 집에 가라. 태극마크가 뭔지, 머릿 속에 개념이 없는 선수는 국가대표 될 자격이 없다.' 금세 선수들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어요. 바로 그 경기에서 스위스에 선제골을 내주고 후반에 홍정호가 동점골을 터뜨렸죠. 그리고 이청용이 역전 결승골까지 넣은 거예요"

이 대목에서 홍 감독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습니다.

"김영권 선수,참 넉살 좋아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혼 나고도 경기 후 제게 문자를 보냈더라구요. '감독님,승리 축하드립니다^^' 정말 귀여워요. 야단을 맞고 주눅 들거나 비뚤어질 아이 같았으면 처음부터 제가 야단을 치지도 않았겠죠."

홍명보 감독은 한 마디로 선수를 다룰 줄 아는 지도자입니다. 선수들 개개인의 장단점과 성격을 파악해 장점은 살려주고 부족한 점은 스스로 깨우쳐 더욱 정진하게 만듭니다. 또 해외파와 국내파의 경쟁을 유도하고 공정하고 엄격한 잣대로 주전을 선발해 조직력을 끌어 올리는 남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의 쾌거를 이뤘을 때 도 홍 감독의 맏형 리더십, 믿음의 리더십이 주목받았습니다. 병역 기피 논란이 일었던 박주영을 감싸안으며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팀에 합류시켰고, 박주영은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보란듯이 환상적인 결승골을 터뜨려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 때 알제리와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르게 될 포르투 알레그리의 베이라 히우 경기장은 공정률 85%로, 홍 감독이 답사할 때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었는데요, 경기장을 둘러 본 홍 감독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공사중인 이 경기장을 보면서 우리 팀의 처지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미완성이지만 월드컵 때는 멋진 모습으로 완공돼 선수들과 관중을 맞게 되겠죠. 우리 팀도 그럴 겁니다.지금은 부족해도 월드컵 때까지 조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완성된 팀으로 거듭나겠습니다"

경기장 답사를 마친 홍 감독은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 대표팀의 베이스캠프가 마련될 포즈 두 이과수시를 방문해 가장 먼저 이과수 폭포를 찾았습니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꼽히는 이과수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홍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웅장하고 광활한 대자연의 기운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우리 선수들에게도 경기에 앞서 이과수 폭포를 꼭 보고 오게 하겠습니다. 분명히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홍 감독은 이과수 시 관계자로부터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인 스콜라리 감독이 지난 여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 앞서 이과수 폭포를 보고 갔는데, 브라질이 바로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팀의 베이스캠프는 정말 명당중의 명당이다."라는 설명을 듣고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브라질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홍명보 감독은 인천 공항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지금 우리팀의 실력은 냉정하게 봐서 H조에서 3위나 4위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더 강한 팀들은 피했기 때문에 우리 축구 팬들은 거기서 2위로 갈 수 있는 희망을 보았고, 저와 우리선수들은 그 희망이 매일 매일 현실로 다가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해 3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홍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 새삼 기억납니다. 당시 홍 감독은 "국민들에게 좋은 선물을 안겨드리고 싶다"고 말했고,정확히 5개월 뒤 동메달로 약속을 지켰습니다.

브라질월드컵을 6개월 남겨둔 지금 홍 감독은 다시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태극전사들이 정말 국민들의 희망을 현실로 바꿔주길 기대합니다. 한국축구가 이과수 폭포의 기운을 받아 브라질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주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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