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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팔만대장경, 30년 만에 5cm 커졌다?

팔만대장경 수난사 1

[취재파일] 팔만대장경, 30년 만에 5cm 커졌다?
팔만대장경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더라도, 팔만대장경이 몇 개의 판으로 이뤄졌는지는 이름만 듣고도 짐작을 할 수 있다. 8만 판.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8만 판이 아니다. 8만 여 판, 정확히는 8만 1,366판이다. 이것도 1999년 팔만대장경판의 디지털영상화 작업을 하면서 나온 숫자다. 그러면 8만 1,366판이 전부 국보인가? 그것도 아니다. 1926년 문화재청이 국보로 지정할 당시, 일본이 조사해 놓은 숫자대로 했는데 8만 1,258판이었다. 그러면 왜 108판이 차이가 나는 걸까?

팔만대장경은 인경(먹을 묻혀 종이에 인쇄)을 했기 때문에 많이 오래 사용하면 닳고 손상될 수밖에 없다. 불경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팔만대장경을 이용해야만 했으니, 손상된 판은 다시 만들어야만 했다. 같은 내용의 판을 한 장 더 만들어내는 것이다. 바로 중복판이다. 결국 8만 1,366판에는 원천 경판 108장, 후대 보충 경판 108장까지 해서 총 216장의 중복판이 존재하는 셈이다.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문화재청과 해인사는 중복판에 대한 전면 조사를 실시했다. 이 분야 최고라고 하는 서지학자 동아대 최영호 교수와 목재 전문가 한국전통문화대학 이관섭 교수가 참여했다. 보고서가 최근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외부에 공개는 되지 않았다. 조사 착수 때까지만 해도, 과학적인 분석을 내놓겠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었는데, 보고서가 나왔는데도 주저하는 건 최근 팔만대장경의 훼손과 보존 논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복판 가운데에는 국보로 지정이 되어야 하는데 되지 않은 것과, 국보 가치가 없는데도 국보로 지정된 것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 지정과 말소 여부가 결정될 텐데, 이 과정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보인다. 왜 처음부터 제대로 하지 못했냐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사 과정에서 더 경악할만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부 경판의 크기가 비상식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경판이니, 나무가 습기를 받아 수축과 팽창을 하면서 크기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맞다. 문제는 그 변화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팔만대장경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서수생 박사는 이미 1977년 중복판에 대한 조사를 한 뒤 보고서를 냈었다. 당시 서 박사는 92판을 중복판으로 보고 1967년과 1972년, 1976년 3차례에 걸쳐 92판을 모두 크기와 치수를 재었다. 보고서에는 도면도 일일이 그려져 있다. 이 보고서가 팔만대장경 중복판 연구에 있어서는 거의 유일한 기초자료로 인용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이관섭 교수팀이 서 박사가 조사했던 중복판 가운데 1937년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각판 17장을 똑같이 조사했다. 서 박사의 보고서 도면에 나타난 대로, 각판의 총 가로 길이, 글씨가 새겨진 각판의 길이, 여백의 길이, 경판의 세로 너비, 두께 등을 쟀는데, 모든 부분에서 차이가 보였다. 특히 두드러진 부분은 각판의 가로 길이와 총 길이였다.

권란 취파
(대장경엄론 (검정색 : 서수생 박사 보고서/ 붉은색 : 이관섭 교수 실측 자료))
가장 대표적으로 1937년 일제 강점기 때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대장엄론경’의 경우, 경판세로 길이와 두께 등은 똑같거나 2mm 안팎의 미세한 차이가 났지만, 유독 글자를 새겨넣은 부분인 각판의 가로 길이가 무려 5.4cm의 오차가 발생했다.
 
권란 취파
 
(대반야바라밀다경 (검정색 : 서수생 박사 보고서/ 붉은색 : 이관섭 교수 실측 자료)
‘대반야바라밀다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각판의 가로 길이의 차이는 4.4cm에 달했다.
 
0.5cm 이상 차이를 보인 각판이 무려 12장에 이른다. 오차범위를 0.3cm로 줄이면, 사이즈가 다른 경판은 무려 17장 전부가 포함된다. 같은 시기, 같은 솜씨의 같은 각수가 깎은 경판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글자크기가 서로 다른 것도 아닌데, 0.5cm 이상 차이가 난다면 77년 당시의 경판과 뭔가가 달라져도 분명히 달라졌다는 게 확실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오차가 너무 크다는 게 이상하다. 나무는 옆으로 결이 나 있으니 습도에 따라 폭이나 두께가 몇 mm 차이는 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길이 면에서 4~5cm 차이가 날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실측 연구를 진행한 이관섭 교수는 “같은 경판이라면 오차가 이렇게 많이 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1937년 만들어진 경판이라도 여백 부분의 나무 색깔이 지나치게 깨끗한 점도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목판을 만든 뒤 시험 인쇄를 한 것 외에는 다른 인쇄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사용 흔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목판은 세월이 지나면 색깔이 짙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목판들은 90년 정도 세월이 흘렀는데도 깨끗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좀 더 심도 깊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과격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장경판이 아예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경판이 바뀌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좀 ‘센’ 주장이긴 하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지금 해인사가 대장경을 관리하고 있는 방식처럼 꽁꽁 싸매지만 말고 전문가와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함께 연구를 진행한 동아대 최영호 교수 측은 즉답은 피했다. 다만 ‘측정 기준’에 따라 치수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그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나중에 보고서를 공개할 때 밝히겠다’고 하며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해인사 측도 ‘바꿔치기 의혹’은 일축했다. 해인사 대장경보존국에도 전문 인력은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연구에 대해서는 뭐라고 언급할 수 없다고 한다. 해인사 측은 경판의 보존과 관리만 담당하고 있다며, 판각 자체를 일반에 전혀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바꿔치기를 할 기회가 원천 봉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설사 바꿔치기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내부자 소행이라는 건데, 수행자들이 아무 이득도 없는 이런 일을 왜 벌이겠냐는 것이다.
 
‘바꿔치기’가 사실이라면 정말 문화재 역사 사상 초유의 일이 될 것이다. 한창 전쟁 중일 때  제작되어 800년 넘는 세월을 이겨온 대장경판이 불과 30~40년 만에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을 겪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혹이 제기된 만큼 철저하고 투명하게 규명해야만 할 것이다. 국보 제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우리나라의 국보일 뿐 아니라 세계의 유산인 우리 문화재의 명예와 위신만큼은 우리가 지켜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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