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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말, 사람들은 왜 독주를 찾을까

우울한 연말 심리, 우리 사회의 자화상

[취재파일] 연말, 사람들은 왜 독주를 찾을까
연말, 본격적인 송년회 시즌입니다. 술 약속 많이 잡으셨는지요. 술 좋아하는 분들이야 호기를 만났겠지만, 겁부터 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술 없이도 한 해 마무리 잘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걸까요.

그런데 연말에는 유독 독주 판매량이 늘어납니다. 주류산업협회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소주는 한 달 평균 2억 6694만 병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런데, 12월 한 달에만 3억 4764만 병이 판매됐습니다. 위스키는 어떨까요. 같은 기간, 한 달 평균 310만 병이 소비됐는데, 12월에는 415만 병이 팔려나갔습니다. 주류 업체 입장에선 이만한 성수기가 없는 셈이죠.

술자리가 많아지니까,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맥주는 좀 다릅니다. 지난해 맥주의 출고수량은 188만 7485킬로리터입니다. 한 달 평균 15만 7290킬로리터가 출고된 셈이죠. 그런데 12월에는 13만 6663리터로 평균보다 오히려 낮았습니다. 술이 많이 팔리는 연말, 소주와 위스키 판매는 느는데 맥주는 줄어들었습니다. 연말에 독주를 더 많이 찾는다는 분석이 맞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맥주의 계절은 여름이니까 연말 판매량이 줄고, 소주나 위스키는 독주다보니 날씨가 추운 연말에 많이 팔리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가장 추운 1월과 2월은 12월만 못합니다. 연말에 독주를 더 선호하는 경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연말 심리’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의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 914명을 대상으로 ‘연말이 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복수응답이 가능했습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허무감이 65%로 영예(?)의 1위를 차지했고, ‘내년은 어떤 멋진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는 기대감은 29%로 2위였습니다. 그 뒤로 ‘올 해도 적자’가 24.6%로 3위, ‘올 한해도 무사히 넘겼다.’가 21.1%로 4위였습니다. 2위를 제외하곤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사실 연말 심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결과는 드뭅니다만, 적어도 어떤 건지는 알 것 같습니다. 바쁘면 바쁜 만큼 허탈하고, 약속이 없으면 난 뭐하는 사람인가 외로움이 몰려오고, 한 해 일만 한 것 같고, 하지만 뭐 한 건 없는 것 같고, 나이는 한 살 더 먹었는데 난 그 자리고, 우울감이 몰려올 때가 많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우리의 연말 송년회는 후회와 허무감을 달래는 데 주력합니다. 이런 식의 우울감을 벗어나고 싶을 땐 독주가 약이 될 수 있겠죠.

다만, 이런 우울감을 개인 심리 문제로만 보고 싶진 않습니다. 하염없이 뛰어야 중간은 갈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치열함, 한 치의 여유조차 나태함으로 치부해버리는 긴장감, 나이 한 살 더 먹을수록 퇴물로 취급해버리는 조직의 조바심 속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의 우울은 더 증폭되는 건 아닐는지요. 우리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밤거리 취재를 하면서 한 브라질 유학생을 만났습니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브라질의 연말은 다양한 축제가 열립니다. 하지만 한국은 술만 마시더군요. 처음엔 이해가 안됐는데 한국에서 생활해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습니다. 한국인은 쉬지도 않고 일하거든요. 너무 힘들어 보여요. 한 해 묵은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12월 한 달 동안 다 몰아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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