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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우리에겐 '만델라'가 왜 나오지 못할까?

만델라의 죽음…그리고 한국 대통령들의 죽음

[월드리포트] 우리에겐 '만델라'가 왜 나오지 못할까?
경이롭고 부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악명높은 흑백분리 정책에 온 몸으로 저항하고 평생을 바쳐 결국 이뤄낸 흑인 해방,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용서와 화해…그저 우리가 이런 몇 마디 말들로 그의 인생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만델라 캡쳐_500


만델라의 일생은 축복…죽음도 기쁘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국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에 남아공 도심 곳곳이 검은 색의 만장과 침울함으로 뒤덮여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물론 남아공은 물론 다른 나라 대사관 등 지구촌 전역이 조기를 내걸고 거인의 죽음을 애도하긴 했지만 남아공 시민들은 우리처럼 하늘이 무너진 듯 그의 죽음에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만델라가 숨을 거둔 요하네스버그의 자택 앞에는 자녀들을 편안한 차림으로 자녀들을 무등태운 시민들이 촛불 하나씩 밝히고 꽃 한송이씩 바치며 그의 삶을 되새겼고, 만델라의 인생을 축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담아 춤과 노래, 함성으로 남은 만델라의 가족들은 위로했습니다.

공식 추도식장 앞에서 만난 청년들은 만델라를 위해 4시간 거리를 뛰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달려왔다고 했고, 시신이 공개된 프리토리아 유니온 빌딩 앞에서 만난 한 나이지리아인은 종교갈등과 부패에 찌들어 신음하는 고국으로 돌아가 만델라의 정신을 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눈물보다는 축복, 좌절과 상실감보다는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낙관이 지배하는 국장이었습니다.

남아공의 현재와 미래가 된 ‘만델라의 꿈’

언론에 도배되고 있는 만델라의 메시지는 ‘화해’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그의 삶 전체를 지배했던 단어로는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27년의 옥살이를 견뎌낸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저항과 꺾이지 않았던 투쟁이 있었기에 ‘화해의 조건이 만들어진 게 좀 더 정확한 얘기일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건이 마련되자 만델라와 흑인들을 억압했던 지배세력들은 아무런 조건없이 과거를 참회하며 진정한 용서를 구했습니다. 만델라는 그들에게 처벌과 투옥 대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이를 계기로 흑과 백으로 나뉜 아파르트헤이트의 나라 남아공은 흑과 백이 섞여 무궁무진한 색깔을 만들어가는 무지개 국가로 거듭납니다. 만델라의 저항과 투쟁, 화해는 지금의 남아공을 만들어 낸 요체이자, 미래를 밝히는 등댓불 같은 존재입니다. 만델라가 곧 남아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핫포토] 만델라
우리에게도 만델라가 올 수 있을까?

이런 광경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제 머릿 속엔 현대사의 비극으로 점철된 한국 대통령들의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부하의 총탄에 비운의 운명을 맞은 박정희 대통령, 쿠데타로 권력을 잃고 조용히 생을 마감한 최규하 대통령,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면서도 생을 마감한 뒤까지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들로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대통령들의 죽음이 만델라와는 정반대로 더 극심한 분열과 보복, 분노의 씨앗을 뿌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만델라가 이야기했던 무지개 국가의 핵심은 바로 공존이고, 공존의 출발을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분단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오랜 전체주의적 정치질서를 가까스로 극복하고 진전된 민주주의 하에서도 ‘다름’은 ‘반역’으로 간주되기 일쑤였고, ‘공존’ 대신 ‘배척’과 ‘축출’에 익숙한 사회가 돼 버렸습니다. 시도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어느 대통령도 상대방을 끌어안고 화해를 이루는 데는 실패했고, 지금도 한국사회를 극심하게 양분해 놓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문화에서라면 아마 만델라가 한국에 태어났더라도 나머지 반쪽의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앞서도 말한 것 처럼 만델라가 내민 화해의 손길과 국가 통합 노력은 진정한 사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사과'가 미래의 첫 발자욱

만델라의 남아공과 극심한 분열에 봉착한 대한민국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진정한 사과’입니다.

‘통석의 념’이니 뭐니 하는 입에 발린 사과마저 편리하게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우경화의 길을 치닫는 일본은 물론이고 자기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혹독한 억압으로 국민들을 짓눌렀던 군사 독재자는 시민의 분노에 밀려 형식적 사과문을 내놓고 백담사로 향했지만, 국민을 졸로 보고 추징금 떼먹으려다 망신살을 뻗쳤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표 깎일까 부담되는 과거사에 넙죽넙죽 고개를 숙이던 정치인들의 당선 이후 행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정한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는 국민들은 당연히 포용과 화해의 길이 아닌 분노와 보복의 길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만델라의 시신이 안치된 프리토리아에서 요하네스버그로 돌아오는 길에 한바탕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빗줄기가 그치고는 정말 어디서도 보기 힘든 선명한 무지개가 뜨더군요.

온갖 색깔이 어우러져야 나오는 무지개처럼 만델라는 죽음의 그 순간에서도 자유와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아이콘이었던 것입니다. 런던에 우리 대통령이 갔다고 구름이 걷혔다는 기사가 하도 많이 욕을 먹어서 이런 표현을 쓰기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만델라는 정말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이 나라에, 그리고 이 지구촌에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무지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외국인이 저 혼자였을 지는 몰라도 일상의 퇴근길에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남아공 시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란 추측은 그저 추측일 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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