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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음악 계속 배우고 싶어요"

[취재파일] "음악 계속 배우고 싶어요"
 1975년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한 지하 주차장에서 학생 11명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생존의 방법 대신 악기를 가르치는 것은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아이들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남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법을 스스로 깨닫게 됐습니다. 화음을 맞추며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했습니다. 호세 아브레우 박사가 시작한 이 음악 교육은 베네수엘라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엘 시스테마의 성공을 본따 전세계 29개 나라에 유소년 오케스트라가 생겨났습니다. 우리나라도 3,4년부터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게 지난 2010년부터 시작한 문화관광체육부가 진행하는 '꿈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서울시향의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등입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선발해 악기를 무료로 가르쳐 주고, 지역 연주회나 정기 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출발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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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서울시향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가 만 4년을 맞아 정기 공연을 열었습니다. 객석 3천석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사상 첫 대규모 공연이었습니다. 단원은 220명, 지난 2010년 구로구 초등학교 3학년 30명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가 도봉, 노원, 종로 등 6개 자치구에서 꾸준히 단원을 모집하면서 규모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서울시향 출신 선생님들에게 일주일에 3번씩 악기를 배우고 합주 연습을 거듭하면서 실내, 실외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지역 연주회 무대에 나섰습니다. 바이올린, 첼로만 배우던 학생들은 플룻, 트럼펫 등 관악기도 배우면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키웠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한 학생은 별다른 사교육 없이 예원학교에 합격할 정도로 학생들은 성장했습니다.

 공연 전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관객 앞에 선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었습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다가 선생님의 불호령에 금새 조용해지는 초등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마음 한켠이 무거운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2010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한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는 애초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을 선발해 6학년까지 가르치는 4년 과정으로 프로그램이 계획됐습니다. 올해 만 4년이 됐는데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고, 이 오케스트라를 앞으로 확대 운영할 수 있을지, 악기를 가르쳐온 학생들을 계속해서 끌어안고 진행할 수 있을지 조차도 불투명해졌습니다. 애초에 악기를 배울 형편이 아니었던 이 학생들이 이 교육 프로그램을 떠나 자발적으로 악기를 계속 배울 수 있을지, 오케스트라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답을 해줄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2010년부터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 30명에게는 사실상 '졸업 연주회'였던 겁니다.

 호세 아브레우 박사는 음악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소득층, 결손 가정...아이들은 이런 말의 의미도 잘 모릅니다. 다만 스스로 악기를 배운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학생들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이웃 앞에서 연주를 통해 행복과 위로를 전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음악을 배우면서 훌륭한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 시작된 교육이 상급 학교로 연계되지 못하는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꿈의 오케스트라'는 전국 30개 기관이 운영하는 지역 유소년 오케스트라에서 3년간 무료로 학생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까지 1천 6백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은 늘었지만, 각각의 교육 프로그램이 상급학교로 연계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음악 교육의 특성상 주변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줘야 하지만, 3,4년은 너무 짧다는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교육, 지역 사회 전반적인 지원, 상급 과정으로의 연계...오케스트라의 출발은 좋았지만 앞으로 해나가야 할 숙제도 그만큼 많이 쌓였습니다. 11명의 단원으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이런 과도기를 거치며 현재 40만명의 단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교육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엘 시스테마의 목표는 1백만명, 앞으로 60만명에게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도 희망적입니다.  

  각 지역별로 공연을 선보인 학생들은 마지막 4곡을 남겨두고 전원 무대에 올랐습니다. 위풍당당 행진곡을 시작으로 220명의 하모니가 시작됐습니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 앙증맞은 나비 넥타이가 단원들의 지난 4년을 담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음악 계속 배우고 싶어요" 학생들의 악기 소리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갓 피어난 꿈도 보다 진지하게 발전할 수 있을까요. 이제 어른들의 고민과 노력이 시작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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