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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장성택, 비참한 최후…왜?

'2인자' 장성택, 비참한 최후…왜?
북한 3대 세습 체제에서 40여 년간 '2인자'로 군림했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북한은 이달 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장성택과 그 세력을 유일지배 체제에 도전한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낙인찍어 그를 모든 직책에서 해임하고 출당했습니다.

단순한 실각을 넘어서 '혁명의 적'으로 규정하고 영원히 제거한 셈입니다.

이른바 '백두혈통'으로 일컫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가문에 입성해 그 가문의 유일지배 체제 구축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장성택은 결국 그 가문에 의해 배신자로 북한사에 남게 됐습니다.

장성택은 1972년 김일성종합대학 시절부터 연애해온 김일성 주석의 장녀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결혼, 최고지도자의 가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도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위협이 되는 정적들에 대한 숙청작업을 이끌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친인척 중에서 정적들은 '곁가지'로 낙인됐고 이들에 대한 감시는 장성택이 뭍 밑에서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이 자주 열곤 했던 비밀파티를 흉내 내 별도의 측근파티를 열면서 김 위원장의 견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김정일은 장성택을 평양과 인접해 있는 평안남도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에 내려보내 2년간 '혁명화'란 이름으로 노동을 시켰습니다.

2004년 두번째로 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김정일 다음가는 실세로 자리를 굳히면서 그의 주변에 간부들이 모여들자 장성택의 복잡한 사생활을 이유로 김정일 위원장은 다시 칼을 꺼내들어 장성택이 관할하던 행정부를 해체하고 그를 실각시켰습니다.

장성택은 자택에 칩거하면서 매일 자아비판서를 써내야 했습니다.

재기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장성택은 그러나 2006년 12월 말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으로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당에 복귀했습니다.

지난 2007년 김정일 위원장에 의해 당 행정부가 다시 만들어지고 장성택을 부장으로 전격 임명, 2인자의 지위를 다시 차지하게 됐습니다.

그는 특히 군 고위간부들과 함께 김정은 후계체제를 견인하면서 와병 중의 김정일 위원장과 어린 후계자 김정은 제1위원장을 대신해 주요 인사와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 출범과 함께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던 장성택의 권력은 내부의 권력 암투와 김정은 위원장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삐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의 성공을 기점으로 최룡해 등 군부 사이에 불거진 권력 암투, 조직지도부와 행정부간 갈등 등 도처에서 2인자 장성택의 권력에 도전하는 환경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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