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고등학교를 취재할 때마다, 가장 시끄러운 곳은 고3 교실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소음이 심했습니다. 보통 오전에만 시끄럽다가 오후엔 우르르 하굣길에 나서는데, 올해는 오후 4시까지 학교가 시끄러웠습니다.
고3 교실엔 학생 절반은 돗자리까지 깔고서 잠을 청하고, 나머지는 보드게임이나 미니 당구, 스마트폰 게임을 합니다. 심지어 포커나 화투를 치는 학생도 있었는데요. 한 학부모는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이른바 섰다 도박까지 배워서 돈을 따거나 잃기도 한다는 얘길 했습니다.
큰 사고만 없다면 그동안 소홀했던 우정도 다지고,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무조건 비판할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모습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 고3 학생은 "운전면허도 따고 싶었는데 물 건너갔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가르치는 수업도 없는데 왜 4교시에 보내주질 않는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늘어놨습니다.
수능을 치른 뒤에 수업이 예전 같지 못한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고3 교실이 이렇게나 무질서해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태'는 교육부의 원론적인 지시에서 시작됐습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수능 직후, "수업 일수를 못 채운 학교는 7교시까지 수업을 해서라도 시간을 채우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경기도교육청 등 일부 지역 장학사들이 강도 높은 현장 지도를 벌이면서, 고3도 매일 7교시, 오후 4시까지 학교 수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마라톤을 마친 선수처럼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수십 킬로미터를 뛴 선수에게 운동장 한 바퀴 더 뛰라고 하면 제대로 뛸까요. 동기부여도 없고 지쳐 있는데 말이죠. 올초부터 6주 가까운 공백기를 어떻게 보낼지,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정상 수업은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탁상행정이 만든 거대한 난장판
근본 원인은 이런 방침이 일선 학교엔 수능 전에 미리 전달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1994년 수능이 도입된 후로 20년 가까이, 고3 담임교사들은 수능이 끝난 학생에게 별다른 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작년까지도 같은 시기 수업일수를 채우라는 교육부의 지침이 전달됐지만, 그야말로 원칙적인 지시였을 뿐입니다.
교육부 담당 공무원은 "매년 수능 뒤에 내리는 공문 밖에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특별히 관행을 타파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지시를 받은 경기도교육청은, 올해부턴 수업 파행 관행을 없애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선 학교마다 수차례 공문을 내려보내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교는 견학, 강연회 또는 체험 학습을 어떤 형태든 학교 수업시간을 채우라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매년 반복하는 지시를 내린 교육부나, 그걸 성실히 이행한 일선 교육청 모두 잘못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이미 대대적인 관행 철폐로 받아들여진 뒤였습니다. 일부 고3 담임 선생님들은 "그런 관행을 바꿀 거였다면 미리 지시했어야 한다" 말했습니다. 견학이나 강사 초청 같은 나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7교시까지 모두 이렇게 못 하니까 상당 시간 억지 자습을 시킨다고 항변했습니다. 매일 등산을 하고, 지역 공공기관을 견학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학부모 반발에 못 이긴 일부 학교는 다시 예전처럼 교육청 모르게 단축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 지도 강도는 높고, 프로그램은 없으니 '도로 단축수업'을 선택한 겁니다.
결국, 교육부와 교육청, 일선 학교 사이에 사전 지시와 소통이 부족했습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매년 내려오는 지시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교육 당국은 '우린 지시했으니 그만'이라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수업을 하려고 하니 제대로 될리가 없었던 겁니다. 대국민 홍보도 문제였습니다. 한 교육청의 담당 장학사는 "관행을 바꾸기 전에 일선 학교나 학부모를 상대로 교육부가 홍보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렇게 비판받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방학이 2주 정도 남았습니다. 난장판이었던 고3 교실의 모습은 교육 관료들에겐 숙제거리를 남겼습니다. 내년 수능도 11월 초에 치러질 가능성이 큰 마당에, 6주의 시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학생들은 12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달리다 지쳐 찾은 휴식에 대책이 있을 리 없습니다. 휴식도 교육이기에, 연구관과 장학관, 장학사, 학교장, 선생님들이 궁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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