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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목숨 건 단식 22일…불법체류자들의 절규

[월드리포트] 목숨 건 단식 22일…불법체류자들의 절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가져온 돈은 다 떨어졌지...시간은 시간대로 흘렀지..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불법체류자로 미국 LA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정 모씨. 그는 정착 초기 미국에서 겪었던 생활고와 시련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휴대폰 너머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힘겨운 순간을 회상할 때는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시련은 미국 땅을 밟은 지 3년만에 찾아왔습니다.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무모하게 감행한 미국 이민”이었습니다. ‘6개월짜리 방문 비자를 들고 오면 곧 학생비자로 바꿀 수 있다’는 변호사 말만 믿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돈을 받고 나자 차일피일 시간만 끌었습니다. 법률 지식도 없고, 속 시원히 털어놓을 만한 지인도 없었기에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벌써 변호사 비용은 3만달러 정도 들어갔지만 운전면허증도, 직업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밑천은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학제로는 고3인 두 자녀 문제가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부모를 따라왔다가 졸지에 ‘불법체류자’ 딱지가 붙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신분 합법화가 절박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를 했지만 역시 참담하게 끝났습니다. 이번엔 취업비자를 얻기 위해 중소업체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취업이지 생전 처음 해보는 막노동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저임금에 새벽에야 일이 끝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어디 한 곳 하소연할 데가 없었고, 그럴 여념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합법 신분을 얻겠다는 희망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번엔 비자 스폰서를 서주기로 한 그 업체가 문제였습니다. 업체의 납세 실적이 저조해 비자 스폰서를 해줄 자격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2년을 보냈습니다. 한인 타운내 상점 점원으로 취업한 아내와 못 먹고 못 입으면서 모은 2만달러가 또 날라갔습니다.

 정씨 가족은 여전히 불법체류자입니다. 다행히 불법체류자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캘리포니아 법 때문에 두 자녀 모두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강제 구금과 추방을 걱정해야 하는 불법체류자 신세입니다. 미국에서 정씨와 같은 신분으로 생활하는 한인은 25만명에 이릅니다. 재미 동포 5명 가운데 1명이 불법체류자인 셈입니다. 간간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해외도피자, 국내에서 사기 행각을 벌인 뒤 미국으로 도피해 호의호식하는 경우는 희귀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아이들 교육을 위해” 혹은 “공부하러 왔다가 눌러 앉은 경우”라고 합니다.
이민법_500

 SBS 8시 뉴스에서도 보도했습니다만,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는 한인 인권단체인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윤대중 사무국장(43)과 전 서비스종업원 노조 간부였던 엘리시오 메디나(67) 등 3명이 22일 동안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미 하원이 이민개혁법안을 연내에 처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22일간의 단식은 건강은 물론 목숨까지 위협할 만한 시간입니다. 그 동안의 단식으로 몸무게가 6킬로그램 이상 빠졌다고 합니다. 이들 3명은 오늘까지 단식을 마친 뒤 다음 주자 3명에게 단식 바통을 넘겨줬습니다. 이들의 단식 기간 동안 각종 시민 인권단체 구성원들이 텐트를 방문해 짧게는 하루, 길게는 1주일씩 동조하는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한 불법 이민자 가족들도 자신의 집에서 단식에 동참하는 릴레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상 전화나 유튜브를 통해 서로 소식을 나누고 격려하면서 말이죠. 그만큼 불법체류자들에게 있어 신분 합법화 문제가 절박한 사안인 것입니다.

오바마 연설 막은
 사실 미국에서 불법체류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주류 언론들도 특별한 현안이 없는 한 보도로 잘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주목할 만한 사건이 지난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났습니다. 차이나타운을 방문해 이민개혁 법안 처리를 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한 한인 대학생이 가로막은 사건이죠. 11살 때 어머니 누나와 함께 미국에 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된 24살 홍주영씨가 오바마의 연설 도중 “추수감사절에 수많은 이민자 가족들이 신분문제로 떨어져 지내야 한다” “국외 추방을 막기 위한 행령명령을 발동해 달라”고 절규한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라고 화답하면서 홍씨를 끌어내려는 경호원들을 제지했고요. 이 장면이 CNN을 비롯한 주류 언론에 고스란히 방송되면서 모처럼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 사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 DC로 돌아온 뒤 지난달 29일 윤대중 사무국장 등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텐트를 직접 찾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오매불망하는 이민개혁법안은 지난 6월 미 상원을 통과한 이후 지금까지 하원에 계류 중입니다. 공화당 지도부가 법안 상정을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민개혁법안이란 게 간단히 말해 불법체류자들에게 단계적으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내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국경을 무단으로 넘은 것인지, 합법 신분으로 들어왔다가 체류기간이 넘은 것인지, 불법 체류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 동안 세금은 냈는지, 자녀는 있는지 등등 불법체류자가 된 사연이 복잡한 만큼 법안 하나하나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달려 있습니다. 특히 공업지역이냐, 농업지역이냐, 서비스 업종이 많은 지역이냐에 따라 많은 주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보수지역 이해를 대변해온 공화당 지도부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한인 불법이민자는 25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미 전역에서는 무려 1천 1백만명이 넘는 불법체류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주로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미국 내 공장이나 식당, 농업지대에서 온갖 천대 속에 허드렛일을 하며 미국 경제에 기여를 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운전면허증도, 사회보장번호도 받을 수 없었기에 노동 관련법의 보호는 물론 사회보장 연금이나 자녀들의 학자금 보조도 받을 수 없었고 심지어 은행계좌도 열 수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여러분이 정크 푸드라고 말하는 맥도널드 햄버거조차 사먹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그건 사치였습니다”라는 절규가 터져 나왔겠습니까? 그래서 불법체류자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의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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