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참 따뜻한 간호사였는데…" 안타까운 열차사고

뉴욕 열차탈선 사고로 숨진 한국인 故 안기숙씨

[월드리포트] "참 따뜻한 간호사였는데…" 안타까운 열차사고
 추수감사절 연휴의 온기가 남아있던 지난 일요일(미국시간), 휴식 중에 들려온 긴급뉴스는 대형 열차탈선 사고였다. 사고가 발생한 '메트로 노스'노선은 평소 뉴욕 맨해튼과 뉴욕 북쪽 브롱크스 등 근교를 오가는 통근자들로 항상 많이 붐빈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승객은 평소의 절반 정도였다.  한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열차였지만 기자들은 잠시 잊고 있었다.

 사고 정황이 드러나고 부상자 구조가 끝나갈 무렵, 뉴욕 한국총영사관에 전화가 걸려왔다. "사망자 4명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며 신원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설마했던 영사관 직원들은 현장으로 향했고 35살 한국인 안기숙씨의 희생을 확인해야했다.

박진호 월드


    아주 유능하고 헌신적인 간호사

 안씨는 2008년 미국으로 왔으며 간호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국생활, 특히 바쁜 뉴욕의 일상은 고단했지만 그녀는 성실하고 마음 넉넉했다. 무엇보다 간호사 업무에 자부심을 갖고 뉴욕 퀸즈의 집에서 먼 열차통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동병원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는데 2010년부터는 뉴욕 북쪽 근교의 아동재활기관인 '선샤인'센터에서 일해왔다. 그녀는 사고 당일 새벽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마도 피곤한 몸이었을 것이다.

 병원 동료들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는데.."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매일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외국인임에도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이 재활센터의 관리자인 모시엘로씨는 SBS 뉴욕지국와의 전화통화에서 "안 간호사는 특히 많이 아픈 어린환자들에게 헌신적이었다"고 말했다. 병이 위중해 집에서 다니며 치료받지 못하고 입원해있는 어린 아기들에게 특히 정성을 쏟았다는 것이다. 사고 소식 이후 많은 추모 메시지가 올라 온 그녀의 페이스 북에는 여전히 자신이 쾌유를 기원한 아이들의 사연이 올라와있다. 일이었지만 보람이었고 숙명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뉴욕 열차탈선 한국

    소박한 희망과 꿈...안타까운 사고
 
  뉴욕의 많은 한국인 젊은이들이 그렇듯 그녀는 이른바 '그린카드'를 기다려왔다고 한다. 그린카드는 미국 영주권을 의미하는 말이다. 영주권은 고국을 떠나 어렵게 직장과 삶의 의미를 찾은 이들에게 '보다 안정된 삶'을 상징한다. 미국에선 능력과 지식을 갖춰도 불안한 신분 때문에 취업과정에 어려움을 겪거나 직장을 잡아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미주의 한인신문에는 그녀와 함께 거주했던 룸메이트의 조심스런 인터뷰가 나왔다. "언니는 영주권 신청을 마치고 발급을 기다려왔어요. 직장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혹시 주소가 바뀌거나하면 차질이 있을까봐 집을 옮기지 않고 우리랑 살았어요." 이국 땅에서 시련을 겪는 뉴욕의 한국인 학생과 젊은이들을 보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안타까움이 마음 속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소박한 꿈을 키워왔던 모양이다. 밤샘 근무와 고된 업무를 숙명으로 여기면서 '그린카드'를 받고 더 나은 삶과 미래를 펼치는 자기만의 작은 소망을 키워왔던 모양이다.

"너무 아파서 집으로 가지 못하는 중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주로 맡아 왔어요." 모시엘로씨는 우리에게 말했다. 그녀는 숙련된 의학적 지식과 경험으로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녀의 오랜 노력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안 간호사는 춥고 어두운 미 동부의 새벽에 집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잠시 눈을 붙여 고단한 몸을 달랬을 수도 있고 자신이 맡은 어린 환자의 얼굴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을 수도 있고, 책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녀가 열심히 걸어왔던 길은 아마도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내가 가 본 사고현장은 차가운 곳이었고 안개가 끼어있었다.

  뉴욕 총영사관의 영사들은 경황없이 미국에 오게 될 고인의 가족들을 최대한 도울 방침이다. 뉴욕한인간호사협회도 도움을 약속했다. 겨울이 깊어가는 뉴욕 거리와 한인타운에는 이국 땅에서 꿈을 키워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유독 강하고 밝은 얼굴로 걷고 있다. 그녀를 만난 적도 없는 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착하고 유능한 젊은이들이 인생의 무대로 미국을 택한 이유가 혹시 한국의 잘못은 아닐까?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무엇인가에 가로막혔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들에게 진작에 맨해튼의 한인식당에서 따뜻한 밥과 뜨끈한 김치찌개 한 그릇을 사줘야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야 했었다. 이렇게 안타깝고 황망하게 떠나보내기 전에 말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