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한국 조폭사(史)의 판도를 바꿔놨습니다. 광주 출신의 조양은, 즉 호남 세력이 서울 주먹계를 장악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본격적인 조폭 무장이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잔혹성’의 서막입니다. ‘주먹’을 사용하면 ‘건달’, ‘칼’을 들면 ‘양아치’로 생각했던 깡패들의 낭만은 종식됐습니다.
하지만 조양은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계속되고 있는 유신 정국 속에 조직에 대한 일제 단속이 시작됐습니다. 조양은은 5년 뒤인 1980년 범죄단체결성 혐의로 구속됐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가 거두로 부상한지 불과 5년 만입니다.
1995년, 만기 출소한 뒤 그는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습니다. 이번엔 범죄가 아니라 ‘개과천선’이었습니다. 옥중에서 여성을 만나 결혼도 하고, 교회를 다니며 간증을 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쳤습니다. 자신을 주제로 만든 영화 ‘보스’에 출연해 주연까지 도맡아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히로뽕 밀반입 시도 등의 혐의가 적발돼 징역 2년을 선고받습니다.
![조양은 캡쳐_500](http://img.sbs.co.kr/newimg/news/20131126/200705461_1280.jpg)
조직폭력의 역사는 우리시대 일그러진 근대화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조폭은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언론에서조차 미화됐습니다. 폭력에 관용적인 마초이즘, 수단과 방법보다는 ‘성공’에 가치를 두는 결과주의 덕이겠죠. 그들은 더 큰 이권을 향해 기생했고, 이를 위해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었습니다. 이들 주먹보다 더 센 권력들은 어땠나요. 권력은 조폭을 즐겨 사용하며 아성을 지켜왔습니다. 외적으로 ‘간첩’과 ‘북한’이란 키워드로 유신과 군부 체계를 공고히 했다면, 내적으로는 ‘범죄’와 ‘조폭’을 내세워 치안 정국을 정당화해왔습니다. 그 평가는 역사의 몫이겠죠. 다만, 조폭의 흑역사는 조폭에 가담했던 어깨 혹은 주먹들의 치졸한 기생 방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 근대화와 권위주의의 뒤안길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상과 몰락, 그리고 이어진 개과천선과 재 몰락, 그 쳇바퀴를 하염없이 돌고 있는 조양은의 삶에서도 시대의 씁쓸한 표정이 느껴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먹과 칼 하나로 너무 쉽게 살아온 그들의 개과천선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일컫는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삶, 이들에겐 그 진입장벽이 하염없이 높아 보이는 모양입니다. 길들여진 방식을 벗어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혹은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장벽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주요 피의자가 잡혔을 때 기자들이 경찰에 '전과'부터 물어보는 건, 이 때문 아닐는지요.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 혹은 여건이 돼 있는지 저부터 반성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