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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시장 후보 출마할 거냐?" 김황식 전 총리에게 물었더니

[취재파일] "서울시장 후보 출마할 거냐?" 김황식 전 총리에게 물었더니
아침 7시 반에 열리는 국회의원들의 공부모임은 사실 기자들이 자주 찾는 행사는 아닙니다. 기사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다, 당정협의같이 당장 중요한 현안 발표가 쏟아지는 다른 중요 행사들과 시간대가 대개 겹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제 열렸던 국가모델연구모임에는 아침 일찍부터 기자들이 꽤나 몰렸습니다. 지금 여권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명인 김황식 전 총리가 강연자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김황식 전 총리, 꼰대식 강연할 줄 알았는데…

김 전 총리의 발언 주제는 '독일의 힘, 독일의 정치'였습니다. 원고도 없었고, 자료를 배포하지도 않았습니다. 강연 취지는 총리에서 물러나고 6개월 동안 연수를 가 있던 독일 체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대법관 출신에 총리를 거쳤던 인물이었던 만큼 이른바 '꼰대'식의 추상적인 정치학 강의를 듣게 될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강의 내용은 기대보다 구체적이었습니다.
김수형 취재파일 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진 '무릎 꿇기'

독일의 과거사 사죄 문제가 나올 때 모두들 한번쯤 본 기억이 있는 사진은 크니팔(Knie Fall 무릎 꿇기)입니다. 독일 빌리 브란트 수상이 지난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제대로 된 사죄 없이 과거사를 왜곡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당시 폴란드 언론들은 이 사진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폴란드까지 와서 폴란드인 묘소가 아니라 유대인 묘소에서 나치의 만행에 사죄했기 때문입니다. 김 전 총리는 빌리브란트 총리는 전 세계를 향해서 전쟁 범죄를 사죄한, 고도의 계산된 정치 행위를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사죄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정치가의 지혜와 용기 덕분에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크니팔(Knie Fall)이 마우어 팔(Mauer Fall 베를린 장벽 붕괴)로 연결됐다는 겁니다.

독일 정치에서는 낯설지 않은 '적과의 동침'

독일의 대연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일당의 과반수를 허용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적과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 간에도 대연정이 지금까지 3번나왔는데, 성공적인 정책 융합이 일어났다고 평가했습니다. 마침 메르켈 총리가 좌우를 아우르는 대연정에 성공하면서 3선 연임에 사실상 성공했다는 뉴스가 전해져 더 실감나게 전달됐습니다. 독일에서는 대연정을 하면서 정당들이 내세웠던 공약이 일부 수정될 수밖에 없는데, 국민들이 양해를 하기 때문에 갈등 요소를 봉합하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극한 대립으로 죽기 살기식 정쟁이 벌어지는 우리나라 상황과 사뭇 대조되는 것만은 분명해보였습니다.

뜻밖의 돌직구 비판 "국회 해산시키고 국민 판단 받아야"

독일 정치에 대한 언급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 대한 평가도 거침없었습니다. 우리 정치 상황에 대한 충고를 해달라는 의원의 질문에 "우리 헌법에 국회 해산제도가 왜 없는지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예상보다 높은 수위에 좌중이 술렁였습니다. 발언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강연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김황식 전 총리
"국회 해산 제도가 있다면 딱 국회 해산 시키고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뜻이 적어도 그렇다는 것을 안다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빨리 국민들의 절망감을 해소하는데, 적극적으로 노력 해달라는 겁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그래요, 국회 해산제도가 없지만, 다음 헌법 만들 때는 넣어야겠다. 다시 심판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야 국회의원 총사퇴하고 다시 심판받으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국회의원 공부모임에 나와서 의원들에게 사퇴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돌직구를 던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전 정권의 총리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건 극히 이례적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5년 대통령 단임제의 역사적인 의미가 상실됐기 때문에 권한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헌법이 바뀌어야한다는 겁니다. 의원 내각제라든지 여러 가지가 논의 가능하다며 권한을 분배해서 조화를 이뤄나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발언도 이어갔습니다.  

"서울시장 나갈 거냐" 질문에 "나 좀 살려줘~"

김 총리가 퇴직 총리로서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오히려 현실 정치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기자들의 관심사는 차기 서울시장 출마로 옮겨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벌어졌습니다. 조찬 공무모임에서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습니다. 서울시장에 출마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습니다. 김 총리의 첫 답변은 "나 좀 살려줘~"였습니다. 길을 내주지 않으니 답을 하지 않으면 지나가지도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김 전 총리가 추가로 답변을 내놨습니다. "공직 생활의 경험을 살려 국가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겠지만 선출직을 통해서 할 것인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은 앞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

총리를 역임한 인물답게 고도의 정치적으로 계산된 발언을 내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출직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앞으로는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공직 생활의 경험을 살려 국가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는 말 자체는 또 다른 공직을 맡을 마음이 있다는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러브콜' 이어지겠지만

하지만 정치적인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장 선거 당시의 다양한 변수에 따라 출마가 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본다면 새누리당은 김황식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든다면 환영할 만한 일일 겁니다. 다른 정치인들과 겨루는 과정에서 누가 되든 여권 후보가 더욱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도 새누리당의 러브콜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 정권에서 잉태된 정치적 대립…후보 된다면 답 준비해야

김 전 총리의 말대로 현재 정치 상황은 국회 해산을 고려해볼정도로 심각해보입니다. 우리 여야 정치인들에게 독일식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는 게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강경파들의 목소리만 들리고, 다른 목소리는 아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만 현재의 정치적인 대립은 상당 부분 이전 정권부터 잉태된 것입니다. 특히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이나 4대강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여권에서조차 줄기차게 전 정권에서 벌어졌던 일이라고 선을 그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뛰어든다면 이전 정부의 국무총리로서 첨예한 정치적인 쟁점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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