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그 해에는 내게도 유독 잊을 수 없는 하루가 있다. 1998년 2월 17일, 19살 소녀였던 나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 스타트라인에 섰다.
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친구이자 라이벌인 원혜경, 김윤미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을 집에서 TV로 지켜보며 나도 꼭 저 자리에 서고 말리라 다짐하며 참아온 4년. 매일 매일 죽을 것처럼 훈련했고 하루에도 수십 번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자고 꾀는 내 안의 악마와 싸워가며 버텨낸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개인전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계주 경기에만 나서게 된 나는 이 경기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될 참이었다.

이제 와서 털어놓는 얘기지만 당시에는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전화통화는 일체 금지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있던 날, 두려웠던 나는 혼자 몰래 숙소를 빠져 나와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넘어지거나 실수하면 어떡해. 무서워”하며 펑펑 울었다. “괜찮을 거야, 잘 할 수 있어”라며 나를 달래시던 엄마도 전화를 끊고는 바로 팔공산 절에 들어가 경기 시작 전까지 절만 하셨다는 얘기를 나중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꾹 참아가며 스타트라인에 섰다. 1번 주자였던 나는 그때의 떨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얼음판에 꽂은 왼쪽 스케이트 날이 덜덜 떨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캐나다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출발하게 된 우리나라는 8바퀴가 돼서야 중국을 바짝 뒤쫓기 시작했지만 쉽사리 치고 나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돌고 돌아 어느덧 내 마지막 순서가 돌아왔다. 순위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바깥쪽으로 크게 돌아 스피드를 낸 나는 두 바퀴를 남겨두고 마지막 주자를 미는 순간 안쪽으로 파고들며 중국의 왕춘루보다 먼저 김윤미를 밀어냈다. 우리나라가 중국을 앞지른 순간이었다. 김윤미는 그대로 끝까지 1위 자리를 지키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금메달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