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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요술방망이'?

[취재파일]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요술방망이'?
취재 과정에서 접한 한 대형마트 근로 계약서의 하루 평균 근로 시간은 다양했습니다. 7.5 시간 4.2 시간 6.4 시간.. 이른바 '쩜오 계약'이라고 불리던 30분 단위 계약이 변형에 기형을 낳아 이제는 20분 40분 단위 계약서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런 계약을 맺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회사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섭니다. 4시간 20분 동안 일을 한만큼 급여를 지급하면서 일은 훨씬 더 많이 시키는 겁니다.

물론 근로자가 일을 마쳤다고 해서 바로 딱 퇴근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저렇게 분단위로 계약을 맺을 이유도 없는 거겠지요. 또 저런 시간 단위 계약이 회사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해당 대형마트의 근로자들은 회사가 공짜로 일을 시키기 위해서 분 단위의 계약을 강요하고 고용이 불안한 근로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이런 편법은 시간제 근로의 어두운 단면이자 우리 노동시장이 아직 시간제 근로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미비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용률 70%는 이번 정부의 중점 추진 사항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꺼낸 필승 카드가 바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입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로 고용률 70%를 달성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제시하며 마치 시간선택제 근로라는 ‘요술방망이’ 를 두드리기만 하면 고용률 70%는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시간선택제 근무는 일자리를 늘리고 경력 단절 여성이나 재취업자들에게 문을 넓힌 다는 기본 취지는 매우 훌륭합니다. 노동시장이 경직된 우리 사회에서 혁신적인 돌파구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정부는 2017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 93만개를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공공부문과 민간기업의 참여를 통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강조합니다. 과연 요술방망이는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요?

시간제일자리 캡쳐_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유럽처럼 약 25시간 전후에 반듯한 정규직과 동일한 시간제 정년 일자리가 아니라 15시간 전후의 초단기 파트타임 일자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누면서 근로자들의 과로를 해소하는데 목표를 둔 것이 유럽식 시간제 일자리의 핵심이었다면 우리는 신규 일자리 창출이라기보다 기존의 일자리를 나누고, 양적 확대에만 치중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관련 제도나 지침, 정부의 정책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또 다른 비정규직으로 고착화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 대기업 시간선택제 채용 박람회에 참여했던 한 기업은 우선 2년 계약 후 연장 방식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채용했습니다. 현재는 상시 지속 11개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법에 따라서 2년 후에 정규직 전환되는 직접 고용 전환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때문에 2년 후에 자칫 대부분의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들이 계약 만료로 직장을 떠날 우려가 있습니다. 제도적 보호 장치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시간제 일자리는 2배가량 늘어서 약 180만명 정도 됩니다. 문제는 대부분이 서비스, 숙박업, 저숙련, 단순 노무직에 한정돼 있다는 점입니다. 내년부터 정부나 민간 부분에서 창출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역시 일부 업무를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 단순 일자리기 때문에 자칫 저임금 일자리로 고착될 우려가 있습니다. 어제 박람회에서도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런 불만이 터져나온 것도 막상 와보니 일할 만한 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간판은 화려한 대기업이었지만 막상 모집 직종은 사무지원, 상담지원, 생산지원 등 애매한 분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공무원과 교사, 공공기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도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습니다. 공무원 연금 가입문제와 겸직 허용 범위 확대에 대해서 정부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시간선택제 근무를 하는 공무원이 퇴근 이후 업무 연관성이 있는 다른 직장에 다닐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시간선택제 교사는 도입 전부터 진통이 심합니다. 정부는 당장 올해 안에 관련 법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시간선택제 교사를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의 반발이 거셉니다. 오랜만에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교육 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를 외쳤습니다. 이유는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되고 학교 행정에 혼란이 올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학생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또 하나 문제는 청년층까지 시간선택제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애써 이 점을 부인하며 시간선택제의 80%를 경력단절 여성이나 직장을 떠났던 사람들을 채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선택제의 확대는 정규직 감소라는 풍선효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결국 심각한 취업난 속에 20대 청년들이 전일제 대신 시간선택제 근로로 사회의 첫 발을 내딛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몇 년 째 63% 수준에서 답보 상태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34개국 가운데 27위인 시간제 근로자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가 ‘요술방망이’ 가 될지 반짝 정책에 그친 채 또다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적 둔기가 될지,  정책 초기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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