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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보졸레누보에 빠진 일본…"일본 없으면 못 살아"

[월드리포트] 보졸레누보에 빠진 일본…"일본 없으면 못 살아"
   <보졸레누보가 왔다!> 올해도 변함없이 11월 세번째 목요일 자정을 기해 보졸레누보가 시장에 나왔습니다. 보졸레누보는 가을에 수확한 포도를 4~6주 정도 숙성시킨 뒤 바로 마시는 와인입니다. 6개월 이상 숙성시키는 일반 와인과 달리 숙성 과정이 짧기 때문에 깊은 맛과 향은 없습니다. 오래 보관한다고 해서 맛이 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김치로 따지면 ‘겉절이’ 같아서 빨리 마셔야 합니다.

   올해 보졸레누보는 예년보다 품질이 좋다고 합니다. 지난 겨울과 봄에 습기가 많았지만, 여름에는 더웠고 가을에는 ‘인디언 서머’가 찾아와 수확이 평소보다 늦었습니다. 날씨가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와인 맛과 향이 좋다고 합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보졸레누보가 올해 유럽 와인의 품질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보졸레누보는 지역 전통에서 시작됐습니다. 보졸레 지방의 와인 재배농가와 상인, 주민들이 모여 한 해 축하 잔치를 벌일 때 등장한 와인이었던 겁니다. 지역 축제는 이제 세계적인 이벤트로 변모했습니다. 지난해에는 120개 나라가 보졸레누보 관련 행사를 했다고 프랑스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행사로 발전한 배경에는 교통수단의 발달이란 측면이 작용했습니다. 몇 주 이내에 마셔야 하는 특징 때문에 배달도 신속히 이뤄져야 상품성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의 영향도 컸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1985년부터 매년 11월 세번째 목요일 자정을 보졸레누보 판매 개시일로 규정했습니다. 축제와 판매 등에 통일성을 기한 겁니다. 상점이든 식당이든 목요일부터 판매한다는 규정을 지켜야 합니다. 특정한 날짜가 정해지면서 이 날 보졸레누보를 못 마시면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보졸레누보가 왔다!>는 짧고 명쾌한 슬로건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프랑스 언론은 평가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르네 팔레가 만든 구호인데, 이 구호 하나로 전세계 어디에서도 세번째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효과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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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이미지가 포장된 보졸레누보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가 어디일까요? 바로 일본입니다. 프랑스 언론은 일본의 보졸레누보 사랑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보졸레누보를 맛보는 걸 넘어서 보졸레누보로 목욕까지 한다며 사진과 함께 기사를 실었습니다. 도쿄 근처 하코네에 가면 대형 목욕탕에서 와인 목욕을 할 수 있는데 일본사람들은 와인이 피부에 좋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와인욕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와인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보졸레누보를 가장 많이 수입합니다. 지난해에도 무려 880만병을 수입했습니다. 2위인 미국의 220만병 보다 4배를 더 사갔습니다. 프랑스 와인 협회 관계자는 “보졸레누보는 일본 덕분에 살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보졸레누보에 열광하는 이유로는 시차 때문에 프랑스 자정보다 8시간 일찍 와인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전세계에서 보졸레누보를 가장 먼저 맛 보는 나라라는 영광(?)을 즐긴다는 겁니다. 종교 의식을 치르듯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이 근저에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일본과 시차가 같은 우리나라도 한때 보졸레누보를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약판매를 하기도 했고, 물량이 부족해 한 병에 10만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기가 시들해져 수입량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와인 시장에서 칠레, 미국 등 저렴하고 맛 있는 신대륙 와인이 들어왔고, 행사용 와인에 큰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이웃한 두 나라지만 보졸레누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서로 다른 취향에 정답을 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가격의 적정성, 품질 등만 따지면 우리 소비자들의 변화가 더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 지만, 소비 성향은 합리성이란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보졸레누보에 열광하는 일본인, 이는 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그들만의 문화 현상으로 해석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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