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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결국 이집트의 'MB'에 등 돌린 미국

위태로운 미국의 중동 동맹 달래기

[월드리포트] 결국 이집트의 'MB'에 등 돌린 미국
최근 몇 년 동안 이집트 언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어약자가 MB입니다. 한국분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만 이집트에선 지난 여름 쿠데타로 축출된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배경인 이슬람 정치세력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를 지칭하는 약어입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테러집단으로 분류됐던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전국에 걸친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무바라크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시민혁명 이후 치러진 민주 선거에서 무르시를 내세워 정권을 차지합니다. 이슬람 율법 도입과 적대적 이스라엘 정책 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선거로 이집트에 들어선 무르시 정부를 인정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이집트의 국부라 할 수 있는 나세르가 비동맹주의를 택하고 소련과 밀월관계를 구출한 이후 중동, 특히 이스라엘의 안전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던 미국은 나세르의 후계자인 사다트 대통령을 끌어들여 이스라엘과의 중동평화협정을 맺게 하는 엄청난 외교적 성과를 거둔 이후 일거에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동맹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해마다 20억 달러에 달하는 무상 군사원조를 제공하며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안전판을 공고히 하는 정책을 펼쳐 왔습니다.

이집트의 '리턴 투 러시아'

하지만 시민혁명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 곳곳의 친미 독재자들이 연쇄 붕괴하면서 미국의 입장에선 새로 들어설 이들 나라들과의 관계 설정은 발등의 불인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9.11 테러 이후 부시의 일방주의 노선에 대한 반발로 광범위한 반미정서가 확산된 와중이어서 오바마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인 개입 노선을 포기하는 대신 이슬람 세력을 정치적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차원에서 미국은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무르시 정권과의 관계 강화를 시도했던 것이죠.

하지만 지난 여름 반정부시위 사태와 군사쿠데타 이후 미국은 혼돈에 빠져 버렸습니다. 8월 14일 카이로 라바광장 학살 사태 이후 군사원조를 중단하고 미국 정치권 내부에선 이집트 군부를 쿠데타 세력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 와중에 이집트 군부는 미국이 도와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도와줄 나라들은 많다면서 걸프국가들로부터 120억불이 넘는 지원을 얻어내고 중동평화협정 이후 소원해진 구 소련, 러시아와는 20억불 상당의 무기거래까지 추진하면서 미국의 속을 태웁니다. 

흔들리는 미국의 동맹들..이상한 합종연횡

전통적인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눈엣가시 같은 이슬람 시아파 정권인 아사드가 버티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한 미국의 무력개입 포기, 제재 완화와 협상을 통한 이란 핵 문제 해결에 강력한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이스라엘도 미국의 이란 핵협상 노선에 강력히 반발하며 사우디와 함께 무력공격 계획을 논의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들이 등을 돌리고 미국은 엉뚱하게도 불구대천의 원수 같은 이란과 핵 협상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이상한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선 어느 한 곳이라도 미국의 우산 아래 잡아 두지 않으면 가뜩이나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미국의 대 중동 영향력이 급속히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만 합니다.

"혁명을 훔쳤다"..MB에 등돌린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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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은 이집트 군부를 향해 구애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군부에 조속한 민정이양을 촉구하고 군사원조를 중단했던 태도를 180도 바꿔 2년 전 무바라크를 축출한 시민혁명의 성과를 "무슬림 형제단이 가로챘다"는 직설적 표현으로 쿠데타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것이라는 이집트 군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중동 곳곳의 우방들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 이스라엘 정책의 안전판인 이집트와의 협력관계를 안정화하지 않을 수 없는 미국의 고육책인 셈입니다.

문제는 이런 미국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얼마나 효과를 볼 것이냐는 점입니다. 우선 무바라크 축출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우유부단함에 강력한 불만을 터뜨렸던 이집트 사회의 반미감정은 누가 집권하느냐에 상관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또 지난 여름 쿠데타 이후 다시 한번 갈팡질팡한 입장을 오가면서 미국의 이집트 정책에 대한 신뢰는 한층 약해져 있습니다. 결국 케리 국무장관의 고심어린 구애를 이집트인들은 그저 말장난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훨씬 커 보입니다.

냉전시절 소련이냐, 미국이냐 하는 제한적 선택지를 강요받았던 때와는 달리 이집트의 입장에선 미국이 아니라도 선택지가 널려 있습니다. 잊혀진 옛 친구 러시아는 물론 중국, 또 걸프의 석유부국들은 이집트 군부의 든든한 뒷배경이 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파격적인 외교수사의 이면

국민의 지지는 별개로 하고 헌정 질서가 중단된 가운데 쿠데타로 붕괴한, 그것도 자신들이 합법적으로 인정했던 독립국가의 지난 정권을 “민주주의를 훔쳤다”, “혁명을 훔쳤다”는 직설적 언어로 비난하는 일은 외교적으로 예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엄청난 파격이라 할 수 있는 케리의 위태로운 구애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중동에서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진 미국의 외교정책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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