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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뿌리깊은 '양보씨름'…결국은 승부조작 파문까지

양보씨름 불감증이 화 키워

[취재파일] 뿌리깊은 '양보씨름'…결국은 승부조작 파문까지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씨름이 요즈음 승부조작 파문으로 시끄럽습니다. 1980년대의 화려했던 영광은 온데 간데 없고 가뜩이나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씨름은 지금 승부조작으로 선수 2명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기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써온 씨름계는 망연자실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씨름계의 오랜 병폐가 결국 화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1980년대부터 만연했던 '양보씨름'입니다.

양보씨름이란 같은 소속팀 선수끼리 격돌했을 때 좀 더 경쟁력 있고 우승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진출시키기 위해 사전에 감독의 지시 하에 승부를 담합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고의 져주기', '승부 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팀 성적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아무 죄의식 없이 선수에게 져주라고 지시했고, 철저한 '을'인 선수는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해왔습니다. 그야말로 불감증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플레이어들도 양보씨름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84년 천하장사에 오르며 모래판의 돌풍을 일으킨 백두급의 장지영 선수 기억하시나요? 장지영은 1989년 대회에서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강호동과 격돌했습니다. 두 선수는 모두 일양약품팀 소속이었는데, 당시 김학용 감독은 우승 가능성이 더 높은 강호동을 결승에 올리기 위해 장지영에게 져주라는 지시를 했고, 장지영은 노골적으로 모래판에 나뒹굴었습니다. 이 때 큰 상처와 충격을 받은 장지영은 결국 그 해 쓸쓸히 모래판을 떠났습니다.

'양보 씨름'을 비판하는 과거 기사입니다.

1986년 2월 18일 동아일보
씨름 취재파일
프로씨름 고질병 '져주기 담합' 재발 우려

1990년 11월 30일 경향신문
씨름 취재파일
져주기 씨름 '불우이웃돕기' 하듯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씨름에서의 져주기 관행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고 모두가 문제점을 인지했지만 개선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받고 승부를 조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대한씨름협회는 박승한 회장이 직접 승부조작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관련자들에게 영구제명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경기감독위원회의 활동과 교육을 강화해 제도적 보완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재 씨름협회 집행부와 각 구단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 수가 과거부터 이어져온 '양보씨름'의 관행에 젖어왔던 인사들입니다. 이들이 불감증에서 깨어나 진정 위기 의식을 느끼고 환골탈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민속씨름이 벼랑 끝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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