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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죽음의 도시' 필리핀 타클로반을 가다 ①

[취재파일] '죽음의 도시' 필리핀 타클로반을 가다 ①
2013년 11월 11일(월)
-출장 1일차. 서울은 초겨울 쌀쌀한 날씨. 필리핀 세부는 맑음.

‘서울에서 필리핀으로’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회사 번호다. 필리핀에 태풍이 덮쳤는데 피해가 크다고 한다. 북부 타클로반 지역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일주일 출장을 떠날 준비를 하라는 지시다. 부랴부랴 짐을 싸는데 어머니께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신다. ‘안전한 출장’이라고 말씀드린 뒤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세부공항에 내린 뒤 피해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한다. 일주일 뒤에 오겠다며 집을 나서 목동으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이미 비행기 티켓이 마련돼 있었다. 필요한 경비를 지급받고 선배들이 이미 준비해둔 연락처를 받아 적었다. 비행기는 저녁 7시 40분에 출발. 비상식량을 사고 짧은 회의를 마치자 어느덧 출발 시간이다. 부장을 비롯한 국제부 선배들께 인사를 한 뒤 공항으로 향했다.
타클로반 르포 1~
▲ SBS 타클로반 취재팀의 맏형 격인 영상취재팀 황인석 기자.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에 이어 최근에는 히말라야까지 어쩌다보니 험한 곳만 취재다니고 있다. 베테랑 촬영기자답게 위성장비 운용은 기본. 황인석 기자 insuk@sbs.co.kr

타클로반 취재팀은 나를 포함해 3명이다. 지난 2012년 아프가니스탄과 2011년 리비아 현지 취재를 했던 영상취재팀의 베테랑 기자 황인석 선배가 촬영을 맡았다. 동기인 김승태 기자는 촬영과 영상 송출을 맡아 합류했다. 보통 취재팀은 취재기자 1명과 영상취재 기자 1명으로 구성되는데 타클로반은 현재 태풍 피해로 전기와 통신이 두절된 상태라 특별히 영상취재 기자 2명이 취재팀에 합류했다.
타클로반 르포 1~
▲ SBS 타클로판 취재팀의 또 다른 주요 전력 김승태 기자. 지난해 입사한 영상취재기자로 황인석 선배를 도와 촬영과 송출을 맡았다. 김승태 기자 paganismdance@sbs.co.kr 

 4시간을 비행해 세부 공항에 내리니 미리 연락이 닿았던 토마스김 목사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세부 공항 여기저기에는 여러 외신기자들이 분주하게 취재를 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를 이동해 우리가 레이테섬에 들어가기 전 베이스 캠프로 삼을 세부미션랜드에 도착했다.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준비해주신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어떻게 타클로반에 들어갈지 계획을 세웠다. 필리핀 북부인 레이테섬에서 북쪽 끝에 위치한 타클로반은 현재 전기와 통신이 모두 끊겨 공항이 폐쇄됐고 배편도 닿지 않는 상태다. 1시간 동안 회의 끝에 우리는 레이테섬의 서남부에 위치한 올목 항으로 배를 타고 들어간 뒤 현지에서 차를 빌려 타클로반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올목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배편은 내일 아침 10시 세부항에서 출발한다. 장비를 점검하고 지도를 확인한 뒤 잠을 청했다. 우리는 과연 계획한대로 무사히 타클로반에 도착할 수 있을까. 설렘과 걱정이 뒤범벅된 마음에 뒤늦게야 잠이 들었다.
타클로반 르포 1~
▲ 세부 공항에서 혼자 리포트를 읽으며 촬영까지 하고 있는 외신 기자. 다리를 벌린 이유는 카메라에 얼굴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다. 필리핀 재난 현장에는 이렇게 촬영에 인터뷰에 송출까지 혼자 다 하는 방송기자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내리자마자 이 모습을 봤더니 우리 팀 모두 자신도 모르게 기합이 들어갔다.


2013년 11월 12일(화)
-출장 2일차. 세부는 흐리고 때때로 비. 레이테섬 올목은 흐림 

 ‘필리핀 레이테섬 도착…폐허가 된 올목’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제 표를 끊어둔 쾌속선을 타러 세부항으로 향했다. 비오는 세부 시내를 이동하는데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어젯밤 우리보다 1시간 늦게 세부에 도착한 외교부 신속대응팀과 주 필리핀 대사관 직원들이 미국 수송기를 타고 타클로반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소식이다. 외교부 직원들과 통화한 결과 탑승 공간이 부족해 한 회사당 한 명만 탈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팀원만 세 명에 카메라와 송출 장비까지 하면 짐이 열 개였다. 미군 수송기를 타고 타클로반에 도착하더라도 그 뒤 이동수단도 문제였다. 타클로반에 일찍 들어가도 발이 묶인다면 소용이 없을 터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항구로 향했다.
타클로반 르포 1~
▲ 세부항은 레이테섬, 그 중에서도 타클로반 지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타클로반 등 레이테섬 대부분 지역의 통신이 끊긴 가운데 가족들의 생사를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 배도 예상보다 출발이 지연돼 이 날 타클로반에 들어가는 것은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세부항은 연락이 끊긴 가족을 찾아 레이테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한꺼번에 몰린 인파로 배편도 늦어져 우리는 예상시간보다 1시간 반 이상 늦은 오후 3시 반에야 레이테섬 올목항에 도착했다. 게다가 올목항에는 우리 예상과 달리 외신 취재진을 태워가려는 현지인들의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황인석 선배와 김승태 기자가 짐을 내리는 사이 나는 혼자 올목 시내로 향했다. 현지인들이 신기한 듯 쳐다봤다.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차를 빌릴 수 있는지 묻자 한 무리의 남성들이 다가왔다. 그 중 한 명이 적극적으로 자신으로 고용하라고 했다. 요구한 가격은 하루에 무려 1만 페소. 우리 돈으로 24만 원이 넘는 액수다. 대학까지 졸업한 주 필리핀 한국대사관의 현지인 직원 한 달 월급이 2만 페소라 하니 어마어마한 금액을 부른 거다.

우선 차를 보여달라고 했다. 도요타 4인용 승합차였는데 거의 새 차였다. 나와 그 현지인은 흥정에 들어갔다. 밀고 당기며 만만치 않은 흥정을 벌이고 있는 내게 한 필리핀인 부부가 다가왔다. 배를 타고 오는 중에 친해진 필리핀 부부였다. 이 부부의 도움으로 둘째 날부터는 5천 페소에 차를 빌리는데 합의했다. 올목에 살고 있는 현지인 운전기사 르난테 곤자가가 우리 팀에 합류한 순간이다. 곤자가의 신분증과 면허증을 사진으로 찍은 뒤 우리 외교부에 전달했다고 말해줬다. 혹시 모를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행히 그는 외신 취재팀을 태우고 취재를 다닌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신원이 분명한 사람이라며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제 팀원은 4명이 됐다. 우리의 레이테섬 취재는 이렇게 시작됐다.
타클로반 르포 1~
▲ 우리 팀원으로 1주일 간 동행한 현지인 운전기사이자 가이드인 르난테 곤자가 씨의 신분증. '당신의 정보를 우리 대사관에 보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고 한 뒤 사진을 찍었다. 이 조치는 혹시라도 모를 불미스런 사고를 미리 막는 것과 동시에 이 현지인 운전기사에게 자신이 우리 팀에 한 명의 팀원으로 합류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행동으로 우리는 의도한 것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 사실 운전기사의 정보를 대사관에 보내겠다는 말은 허풍이었다. 대사관 직원들도 바빴고 우리는 더 바빴기 때문이다.

배가 늦게 도착해 우리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다. 레이테섬 올목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반이었으니 타클로반까지 4시간 걸려 이동했다가는 오늘 8시 뉴스에 맞춰 리포트를 송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지인 운전기사도 8시 전에 도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특히 타클로반으로 들어가는 길에 차량을 노린 강도가 많은 상황이라 해가 질 때 이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의견이었다. 회사에 전화해 상의를 했다. 타클로반 진입은 내일 시도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아쉬웠지만 그렇게 우리는 올목에서 필리핀 출장 첫 번째 리포트 준비를 시작했다.

 태풍 하이옌이 남긴 상처는 올목 시내 여기저기에도 깊게 남아 있었다. 대형 호텔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와 벽돌로 지은 저층 가옥들은 모두 바람에 무너진 상태였다. 주민들은 무너진 집 옆에서 밥을 해먹고 아기를 어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물과 식량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리에는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주저앉아 있거나 멍하니 길거리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무너진 잔해를 치우거나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도시였다.
타클로반 르포 1~
▲ 올목 곳곳에서는 많은 외신 기자들이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우울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물이라도 달라고 쳐다보는 주민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스탠딩을 잡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올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취재를 마친 우리 취재팀은 가져간 위성 송출 장비를 쓰기 위해 전기가 있는 곳을 물색했다. 전기가 없어도 송출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올목의 몇몇 건물은 전기가 복구돼 있었기 때문에 행동에 변수가 많은 타클로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정적으로 장비를 운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리는 현지인들의 안내로 올목 외곽에 위치한 한 공장 건물을 알게 됐다. 내부에 대규모의 인터넷 서버장치와 대형 발전기까지 갖춘 업체였다. 휴대전화 충전을 해달라며 문 앞에 길게 늘어선 현지인들을 헤치고 건물 정문으로 다가갔다. 한국에서 타클로반의 비극을 취재하러 온 취재팀이니 전기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보도로 더 많은 지원과 도움이 이어질 수 있다며 설득을 시도했다. 문을 지키던 직원이 사장에게 물어봐야한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5분 뒤 문을 열렸고 우리는 안에 들어가 사장과 직원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리포트 송출에 들어갔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이 업체가 전기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이용이 가능했는데, 무려 초당 1메가바이트의 전송 속도가 나오는 것이었다. 쾌재를 부르며 리포트를 송출했다. 사장은 우리에게 물까지 내주며 송출이 끝날 때까지 독려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날 8시 뉴스 준비를 마쳤다. 어제 한 발 먼저 타클로반에 다녀간 SBS 모닝와이드 팀이 제공한 영상과 함께 타클로반과 레이테섬의 피해상황을 보도하는 뉴스를 만들어 방송했다.
타클로반 르포 1~
▲ 8시 뉴스용 리포트 송출을 마친 뒤 타클로반으로 넘어가자는 우리를 강하게 만류하는 현지인 운전기사 르난테 곤자가. 외지인으로서는 현지인이 저렇게 강하게 주장하는데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긴 시간 토론을 벌인 끝에 우리는 안전을 선택했다. 강도나 폭도들도 조용할 시간인 새벽 3시에 우회길을 이용해 타클로반으로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뉴스를 마친 뒤 다시 타클로반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지인 운전기사는 끝끝내 오늘 밤 출발을 만류했다. 현지어로 여러 군데 전화를 하더니 타클로반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 강도가 출몰하고 있고 치안이 매우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운전기사는 “당신들이 정말 원하면 타클로반으로 가겠다.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안전은 책임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달리는 차 앞에 나무를 쓰러트린 뒤 앞 뒤로 포위해 차량 째 강탈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우리는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어차피 내일 8시 뉴스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 목표라면 아침까지만 타클로반에 도착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에 전화해 데스크와 상의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전기가 들어오는 올목의 한 호텔 로비 탁자에 짐을 풀었다. 호텔을 비롯한 올목의 모든 숙소는 집을 잃은 현지인들이 이미 묵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클로반 르포 1~
▲ 우리가 하룻밤 로비 탁자를 점령한 올목 퐁고스 호텔의 모습. 날이 밝는 대로 타클로반에 들어가려는 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새벽 3시에 출발하기로 한 우리도 이 곳에 짐을 풀고 아침 리포트 준비를 마친 뒤 쪽잠을 청했다.

 호텔 로비에서 아침 리포트를 준비했다. 처음으로 위성장비를 이용해 리포트를 송출했는데 전송 속도는 초당 150킬로바이트가 나왔다. 낮에 리포트를 송출했던 그 공장의 인터넷이 얼마나 빠른지 새삼 실감했다. 호텔은 타클로반에 들어가려는 외신 기자들과 휴대전화 충전을 하기 위해 모인 현지인들로 밤 늦게까지 북적였다. 이미 문 닫은 호텔 주방에 부탁해 튀긴 닭과 현지식 볶음 국수로 저녁을 해결했다. 운전기사에게 새벽 3시에 다시 호텔로 데리러 오라고 한 뒤 첫 날의 일당인 1만 페소를 지급했다. 운전기사와 흥정할 때 우리와 합류한 필리핀인 부부도 호텔 로비에서 밤을 샜다. 타클로반에 사는 가족들에게 가길 원하는 이 부부를 우리가 가는 길에 태워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침 리포트를 마치니 어느새 새벽 1시다. 장비를 정리한 뒤 각자 의자에 기대 잠을 청했다. 언제 눈을 붙였는지 모르게 새벽 3시는 금방 다가왔다. 타클로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과연 우리는 무사히 타클로반에 진입할 수 있을까.
타클로반 르포 1~
▲ 올목 퐁고스 호텔 로비에서 자고 있는 나와 김승태 기자를 황인석 선배가 촬영했다. 이렇게 1시간 정도 눈을 붙이니 현지인 운전기사가 와서 잠을 깨웠다. 강도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조금의 설레임을 가진 채 우리는 새벽 3시 타클로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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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필리핀 현지 르포 첫째날 / SBS 8시 뉴스 '곳곳에 시신 방치…페허가 된 필리핀 타클로반'
11월 13일 필리핀 현지 르포 둘째날 / SBS 모닝와이드 '폐허가 된 타클로반…치안 무너져 약탈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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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도시' 필리핀 타클로반을 가다(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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