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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에 활활 탄 침대 매트리스…KC는 '심리적' 안전 마크?

[취재파일] 불에 활활 탄 침대 매트리스…KC는 '심리적' 안전 마크?
활활 타오르던 가스 버너 불이 금세 꺼졌습니다. 건설기술연구원 박사는 기가 차다는 눈치였습니다. 침대 매트리스 연소 실험을 해오면서 국내외에서 매트리스 16개를 태워봤는데, 이렇게 안 타는 매트리스는 처음 봤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매트리스 표면은 녹아들어가기만 했을 뿐 강한 화염을 잘 견뎌냈습니다. 불은 번지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꺼졌습니다. 매트리스 표면이 녹으면서 구멍이 생겼지만 이 정도면 최고의 방염 처리라고 박사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정말 이상하다면서, 매트리스 방향을 바꿔 연소 실험을 한 번 더 해봤을 정도입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 신기하다고 하시기에, 타다 만 매트리스는 연구원에 기증하고 돌아왔습니다.

원래 이 방염 매트리스는 연소 실험을 해볼 계획이 없었습니다. 건설기술연구원이 준비한 매트리스 하나만 태워볼 예정이었는데,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 모두가 활활 잘 탄다고 보도하기에는 뭔가 미심쩍었던 겁니다. 연구원도 저도 몰랐던 방염 매트리스 제품이 어딘가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매트리스 생산량이 많은 대기업 2곳을 확인한 결과, 한 곳은 내부 방염 매트리스가 아예 없었고, 다른 한 곳은 매트리스 안에 열선을 장착한 제품이 방염 처리가 돼 있다고 답해왔습니다. 어쨌든 국내에 판매 중인 모든 매트리스가 속까지 활활 잘 타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내부 방염 매트리스를 찾다가, 한 중소기업 제품을 알게 됐습니다. 업체는 인터넷에, 자사 제품을 불에 태워 방염 실험을 해본 동영상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국내 매트리스가 전부 잘 탄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가면 이런 업체가 예상 밖의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연소 실험 이틀 전 업체에 전화를 걸어, 매트리스를 태워보고 싶은데 하나 보내줄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습니다. 업체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건설기술연구원 박사가 놀라서 한 번 더 태워봤던 매트리스는 그렇게 택배로 도착했습니다.

해당 업체는 원래 매트리스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매트리스의 방염 소재를 만들어주는 회사라고 사장님은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매트리스 업체에서 비용 문제 등으로 직접 생산을 꺼리니까 소량만 제작한 거라고 했습니다. 원단은 방염 처리한 폴리에스터를 사용합니다. 폴리에스터 자체는 다른 매트리스에도 많이 쓰는데, 실을 처음 뽑을 때부터 방염 처리해서 그 실로 매트리스 내-외부를 만듭니다. 이렇게 매트리스를 만들면 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독 가스도 거의 안 납니다. 불이 났다 하면 대형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선박이나 기숙사, 요양원 등에 적절한 제품입니다. 다만 사람이 잤을 때 얼마나 편안한지는 제가 써보지 않아서, 또 다른 기관의 평가 데이터가 없어서 알려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방염 매트리스가 아니면, 침대 매트리스는 어쩌면 여러분 주변의 가장 위험한 물건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는데 초등학생 2명이 숨진 것도 매트리스 때문입니다. 매트리스는 너무 빨리, 그것도 유독가스를 펑펑 내뿜으면서 타들어갔습니다. 가족은 꽃샘추위를 피하려고 전기장판을 켰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전기장판은 불을 시작했을 뿐이고, 불을 키운 것은 매트리스입니다. 그건 방안의 커다란 불쏘시개입니다. 매트리스 안에는 불을 키우기에 충분한 공기가 들어 있고, 불에 잘 타는 재질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화재 현장에서는 다른 가구와 침대 틀은 형태가 남았지만 매트리스는 모두 타버리고 앙상한 스프링만 보입니다.

박사가 놀랐던 방염 매트리스에 앞서 일반 매트리스도 태워봤습니다. 아파트 화재를 염두에 둔 실험입니다. 매트리스 위에 과열된 전기장판을 깔았다고 가정해, 매트리스 위와 옆에 불을 붙였습니다. 정부가 인증한 KC 마크를 부착한 제품, 즉 가연성 시험을 통과한 매트리스입니다. 그래도 불에 어느 정도 버티겠거니 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발화 1분 뒤부터 2차 화재로 번질 수 있는 불길이 침대에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1분이면 정말 순식간입니다. 자다가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눈을 떠보면 그 상태일 수 있습니다. 3분 뒤엔 집안을 가득 채울 만큼의 유독가스가 치솟았고, 화염이 폭발적으로 치솟는 이른바 플래시 오버(flash over) 현상은 4분 만에 나타났습니다.

내가 누워 있는 매트리스에 KC 마크가 붙어 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연성 시험의 기준 자체에 한계가 있습니다. 담뱃불 시험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시험 방식은 KS 기준의 ‘가구-천을 씌운 가구의 가연성 평가 방법’에 따라 진행하는데, 발화원으로 타들어가는 담배만 나와 있습니다. 매트리스 표면이 10cm 이상만 타지 않으면 됩니다. 평가 방법 서문에는 더 큰 ‘가스 불꽃’을 이용하는 가연성 시험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돼 있지만, 기술표준원에 문의한 결과 아직 계획뿐입니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현재 더 큰 불꽃으로 가연성 시험을 하는 자세한 방법은 외부 용역을 통해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전까진 담뱃불 시험만 하니까, 제조업체 입장에선 내부까지 방염 처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불꽃 침대 캡쳐_5
앞서 순식간에 타버린 매트리스도 담뱃불 시험은 가뿐하게 통과했습니다. 매트리스 표면이 5cm 남짓 그을렸습니다. 그래서 KC 마크가 붙어 있는 것이고요. 결국 KC 마크는 화재와 관련해서는 소비자에게 심리적인 안심, 혹은 사실과 다른 안심만 시켜주는 셈입니다. 전혀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한 척 하는 마크입니다. 담뱃불 시험은 특히, 매트리스 위에 이불이나 전기장판을 깔고 지내는 우리 현실과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담뱃불은 매트리스 위의 무언가에 옮겨 붙게 마련이지, 그것이 매트리스 표면에 닿아 큰 불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미국은 2006년 담뱃불 시험을 보완하기 위해 매트리스에 좀 더 큰 불을 붙여보는 시험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기준은 발열량입니다. 순간 최대 발열량이 200kW를 넘으면 안 됩니다. 우리도 건설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발열량 단위의 새로운 가연성 시험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태워본 매트리스는 순간 최대 발열량이 3,000kW에 달해 미국 기준의 15배나 됐습니다. 일부 업체는 미국 수출용 매트리스는 기준에 따라 방염 처리하는 반면, 내수용 매트리스는 방염 처리하지 않아 그만큼 비용을 절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 났다 하면 매트리스가 불쏘시개가 되지 않도록, 가연성 시험 기준을 서둘러 고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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