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분 간 애원하고 사정하고…비행기 지연에 공항까지 차질 ■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24개월 이하 유아에겐 비행기 요금을 받지 않습니다. 공짜로 탑승합니다. 만약 빈 자리가 많으면 요량 껏 옆 자리에 앉혀도 무관합니다. 그런데 자리가 없으면 엄마가 안고 타거나 따로 아기 바구니를 받아서 그 곳에 앉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승객에겐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여름 휴가철이라 비행기에 자리가 없었답니다. 당시 24개월이었던 해당 아기는 당연히 아이 엄마가 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의 자리에 앉혀놓고 비켜주지를 않은 겁니다. 그 승객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비행기 표 끊을 때 항공사 직원이 옆자리에 아기 앉혀도 된다고 했다. 이 자리는 내가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비켜줄 수 없다. 자리 주인 문제는 항공사가 알아서 해라!'
기내 승무원이 세 명이나 달라붙어 무릎을 꿇고 사정을 했다고 합니다. 승무원 사무장까지 나와서 사정을 했고, 그래도 안 비켜 주자 급기야 항공권 끊어주는 직원까지 비행기로 올라왔답니다. 게이트 근무자들도 다 비행기로 들어오고요. 그렇게 잔뜩 몰려들어 무려 47분 간 설득을 했습니다. 자리 좀 비켜 달라고요. 이 와중에 자리의 원래 주인은 계속 서 있었답니다. 참 대단한게, 그 47분 동안 이 승객은 계속 '난 자리를 보장 받았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만 반복하며 결국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이러는 사이 비행기 출발도 47분이 지연이 됐습니다. 다른 승객들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고, 일이 점점 커졌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리 찾으려고 복도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던 자리 원래 주인이 그 눈총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괜히 자기 때문에 비행기 못 뜨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비행기에서 내려버리자니 겨우 받은 휴가를 망칠까봐 그러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자기 자리를 포기했고, 다른 비즈니스석에 앉아있던 다른 일행과 멀리 떨어져 혼자 이코노미석에 앉아 가면서 일이 일단락 됐다고 합니다.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무엇보다 항공사가 어떻게 사정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못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알고보니 규정이 없답니다. 승객이 남의 자리를 무단 점유하고 안 비켜줘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는 거죠, 비는 것 말고는. 다만 끝까지 타협점이 찾아지지 않을 경우 공항 경찰대가 출동해 연행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 승객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그 비행기에 타고있던 모든 승객과 모든 수하물을 다 내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다 검색하고 다시 수속을 밟아서 탑승을 해야하니, 이 지경까지 오면 한 시간 넘게 출발이 지연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공항 경찰대까지 출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 경우에는 자리의 원래 주인이 자기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공항 경찰대가 출동했을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치가 쉬었으니 보상해라'…영어로 항의법까지 공유 ■
사실 이번 경우는 굉장히 드문 사례입니다.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승객이 솔직히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이 사건을 보도한 이유는, 이런 밉상 짓이 일종의 '노하우'로 공유가 된다는 겁니다. 인터넷이, SNS가, 모바일이 발달을 하면서 이런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가 늘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 둘 모이다 보면 그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그래서 이런 동호회를 모니터링까지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을 공유해 밉상 짓을 할 지 모르니까 대비 한다는 거죠.
이번 취재를 하다보니, 특히 여행사가 이런 '노하우 공유 동호회' 때문에 전전긍긍이었습니다. 국내 여행사 여러 곳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밉상 고객은 대부분 '항의', 그러니까 '컴플레인'을 잘 하는 사람들인데, 괜히 그런 고객 얘기 잘못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모른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다 동남아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관계자와 어렵게 연락이 됐습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해외에서 밉상 짓 하는 사례를 물어보자 첫 마디가 '죽겠습니다' 였습니다.
제가 들은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하자면 뭐 이런 것들입니다.
1. '무료 서비스는 내 것!'
동남아 발리 해변가 멋지죠. 언젠가부터 한국인 관광객이 발리 참 많이 갑니다. 발리 해변가에 위치한 몇몇 호텔들은 바닷가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가제보)를 운영한다고 합니다. 이게 원래는 무료였답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국 여행 관련 카페에 '나도 정자(가제보)를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다' 식으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군요. 아침 6시 해변 문 열때 가서 짐을 올려두고 자리를 맡은 뒤, 해변가 문 닫는 시간까지 쭈욱 쓰면 된다는 내용으로요. 그랬더니 너도 나도 아침에 나가서 자리를 맡았기 시작 했답니다. 쓰든 안쓰든 말이죠. 어떻게 됐겠습니까. 다른 나라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텔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아니, 도대체 저 정자(가제보)는 사람도 없는데 왜 계속 자리가 차 있느냐고요. 호텔 측이 조사에 나섰고 대부분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리를 맡아놓고 비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겠됐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턴 이 정자(가제보)가 유료로 전환이 됐다고 합니다.
2. '수영장 장사'
이런 사례도 있답니다. 싱가폴에 고급 호텔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수영장이 아주 근사하다네요. 그런데 숙박비가 비싸다네요. 수영장은 당연히 호텔 투숙객만 사용할 수 있죠. 그런데 이 호텔에 투숙하는 몇몇 한국인 관광객이 자기가 받은 수영장 카드키를 다른 호텔에 묵는 외부 관광객에게 돈 받고 빌려준다는 겁니다. 이런 정보가 또 '숙박 안하고 싼 값에 수영장 이용하는 법'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돌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수영장 열쇠를 놓고 장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네요. 지금 이 문제는 현지에서도 시한폭탄이랍니다. 호텔측이 정식으로 조사에 나서면 정말로 한국인 투숙은 받지 않는다고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행사 측은 그저 전전긍긍이었습니다.
3. '컴플레인 하는 법 공유합니다!'
그런가하면, '호텔에 컴플레인 하는 법'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호텔에 투숙했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로 항의를 해야죠. 그러면 호텔 측은 미안해서 방을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이걸 정보라고 또 인터넷 카페 같은 곳에 공유를 합니다. 그러면서 영어로 컴플레인 하는 법, 컴플레인 문서 작성하는 법 등을 공유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방 한번 업그레이드 받아보겠다고 어이없는 컴플레인을 마구 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제가 들은 황당한 컴플레인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침대가 하나 짜리 방(더불)인줄 알고 묵었는데, 알고보니 침대가 두개로 떨어져 있더라(트윈). 이것 때문에 관계가 서먹해 졌으니 보상해라."
"한국에서 김치를 가져왔는데, 호텔 냉장고가 약해서 다 쉬었다. 보상해라."
이게 호텔측이나 여행사측에 항의할 내용은 아니죠. 시민 의식이 성숙할 수록 이런 사람들이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갈수록 늘고 있다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한국인 출입 금지'…방 있는데도 예약 안 받아 ■
이런게 쌓이다 보니, 일부 호텔에선 '한국 고객은 악질이다'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답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인 거부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일부 고급 풀빌라에서는 방이 있으면서도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방 다 찼다며 예약을 거부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외국 호텔들이 행사 내용을 한국 여행사에만 숨긴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 케익을 선물한다거나, 신혼여행 온 고객에게 축하 선물을 준다거나 하는 프로모션을 진행을 해도 한국 여행사엔 이런 사실을 숨긴다는 거죠.
급기야 한국인 손님을 아예 받지 않겠다는 업소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우리 업소는 한국인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한국 말 할 줄 아는 직원이 없으므로 한국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등의 팻말을 내걸고 한국 손님을 거부하는 업소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십수년 전,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많은 논란이 일었었죠. 악의적인 비난이라는 논란도 있었고, 그럼에도 반성할 점은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당시 논의 됐던 일들이 21세기인 오늘날 또 이렇게 논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결국 피해는 선량한 고객이 ■
일부 '밉상 고객'의 피해는 결국 부메랑처럼 선량한 소비자에게 돌아옵니다. 앞서 언급한것 처럼, 예약을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프로모션 혜택을 못 받기도 합니다. 밉상 고객들에게 부당하게 지급 된 서비스는 결국 '비용'이 되는데, 그러면 이게 원가에 포함이 돼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그 가격 인상은 역시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지요.
인천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의 이영애 교수는 이런 행태를 우려하며 '체리피커'를 언급했습니다. 맛있는 체리만 골라서 따먹는 행동을 말하는 건데, 이게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도가 지나칠 경우 미처 체리를 따 먹지 못한 다른 소비자들에겐 피해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속 돌아가다 보면 결국은 '밉상 짓'하는 본인 스스로에게도 피해가 돼 돌아갈 겁니다.
■ '스마트컨슈머'와 '블랙컨슈머' 사이 ■
제가 이번 취재를 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째, 이번 보도로 인해 소비자 권리가 침해받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요즘 악성 소비자, 이른바 '블랙컨슈머'에 대한 기사가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피해자는 기업이고 가해자는 소비자이죠. 하지만 여전히 기업은 강자이고 소비자는 약자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처럼 대부분의 업종을 서너개의 대기업이 좌지우지하는 시장 상황이라면 더 합니다. 자칫, 듣기도 민망한 밉상 악성 소비자 사례가 자꾸 보도가 되면서 기업 권익은 강화하고 소비자 권익은 무시하는 여론이 형성되지나 않을까 많이 걱정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긴 시간 할애해 보도를 한 것은 앞서서도 언급했듯 결국 악성 고객의 행패는 선량한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악성 소비자를 방지하면서도, 소비자의 권익은 보호하는 것, 그렇게 가야 할 겁니다.
둘 째, 일부의 잘못으로 다수가 피해를 입는 겁니다. 몇몇 여행 정보 공유 사이트가 있습니다. 이런 사이트엔 대부분 건전한 자료가 올라옵니다. 진짜 노하우와 팁이죠. 물론 아주 작은 군소 동호회의 경우 종종 이른바 '진상짓 노하우'만을 악의적으로 공유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대형 커뮤니티에선 늘상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보도로 인해서 특정 사이트나 특정 카페가 모든 밉상 짓의 근원인 것 처럼 비춰지는 것이 걱정 됐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소수가 카페 전체를, 더 나아가 한국인 전체의 이미지를 해치는 것,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