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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잠자는 집시=수습기자?

내가 사랑하는 그림-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취재파일] 잠자는 집시=수습기자?
기자에게는 수습 기간의 경험과 기억이 기자 생활 전반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기자 생활의 맛을 보는 ‘첫 경험’이니 얼마나 강렬하고 짜릿하겠는가. 수습 시절 건졌던 단독은 -비록 내 이름으로 기사는 쓸 수 없을지언정- 그 어떤 단독보다 소중하고, 수습 시절 만난 취재원도 -어려운 시기를 함께했기 때문인지- 그 어느 때 만나는 취재원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 된다. 기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수습 시절의 무용담과 실수담은 -마치 구전 동화처럼- 동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는 한다.

나는 2005년 11월 수습 생활을 ‘황우석’으로 시작했다. 2006년 4월 수습 딱지를 떼기까지 여섯 달을 ‘황우석’과 함께 했다. 이른바 ‘황우석의 진실’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 수습으로 투입됐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라는 전문 분야였기에 사건의 흐름을 계속 알고 있어야만 했고, 주요 취재원들과도 안면을 트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제 갓 수습이 된 자가 무얼 얼마나 알았겠는가. 당시 진상 조사가 이뤄지고 있던 서울대 수의대에 딱 붙어서 누가 오고 가는지, 무슨 일정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전문용어들이 난무해서 사건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도 힘들었고, 거기에다 밤낮없이 수습의 기본인 자기 라인의 사건·사고까지 동시에 챙기려니 가끔은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취재 흉내’만 내고 있기도 했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1진에게 깨지고, 스스로에게 답답해하고, 속상한 일이 한두 가지였겠는가.

하지만, 당시 나에게 가장 서러운 건 ‘춥고 졸린 것’이었다. 겨울이면 가뜩이나 더 추운 관악산 자락, 거기에 개교 이래 가장 큰 사건을 겪은 수의대 건물은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외부인의 출입을 일절 금지했다. 수습의 필수품, 내복과 롱 패딩, 핫 팩으로 무장해도 살을 에는 추위는 견딜 수가 없었다. 라인을 떠날 수 없는 수습 신분인지라 잠이 몰려와도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대학 건물 안은 아예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쪽잠이라도 자기 위해 장소 물색에 나섰다. 그렇게 찾은 최적의 장소는 다름 아닌 수의대 부설 동물병원이었다. 나름 병원이어서 24시간 열려 있었고, 또 따뜻했다. 의자 구석에 앉아 패딩 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눌러쓰고 한 시간 남짓 자는 시간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가끔 자다 눈을 뜨면 붕대를 칭칭 감고 링거를 맞고 있는 개가 옆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아픈 개가 봐도 처량한 신세였던 게 분명했지만, 그 잠이 나에게는 꿀맛과도 같았다.

앙리 루소Henri Roussau의 <잠자는 집시>를 볼 때면 수습 시절 동물병원에서 잠자던 내 모습이 그림 속 집시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맨발로 온종일 돌아다니다가 이불 한 겹 덮지 못하고 사막 위에 쓰러지듯 잠이 든 집시 여인, 온몸에는 피로가 묻어 있지만 잠든 얼굴만은 참 평온하다. 분신과 같이 들고 다니던 만돌린과 물병은 그래도 가지런히 옆에 두었다. 수습 시절 나도 혹여나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눈을 붙이고는 했다. 사실 집시나 나나 마음 놓고 잘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집시 여인 옆을 지나가는 사막의 사자, 위험이 옆에 도사리고 있는데도 여인은 입까지 헤 벌리고 잠에 깊이 빠져 있다. 나라고 발 뻗고 잠을 잘만한 상황이었겠는가.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24시간 상시 대기 인력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림 속 이미지 하나하나 나의 일상과 연결이 되면서 마치 기자 생활을 아는 작가가 그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한 그림이다.

사실 이 그림을 그린 앙리 루소는 기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다. 세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마흔 아홉 살에야 전업 화가가 된 늦깎이 작가다. 그래서 당대 루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소박하고, 원시적이라는 평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해 비례, 구도, 원근법을 무시한 그의 그림은 어린애 같고, 서투르다는 무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은 루소의 그림은 신선했고, 환상적인 느낌마저 들게 했으며, 결국 후대에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현대미술을 이끈 주요한 한 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그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루소의 그림 인생은 기자가 되는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기자질’이나 ‘그림질’이나 머리가 좋고 교육을 잘 받는 것보다,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는지가 성패를 가르는 게 아닌가 싶다.

<잠자는 집시>에 루소는 이런 부제를 붙였다.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은 망설인다.’ 그림도, 작가의 인생도, 기자 생활과 꽤 닮아 있지만, 이 부제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사건과 사고, 제보는 지쳐 잠든 기자를 그냥 덮친다. 실제로 넋을 놓고 있다가 ‘물을 먹는 건’ 한순간이다. 어쩌면 맹수 옆에서도 세상모르게 잘 수 있는 집시가 내 신세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방송기자연합회 협회지 '방송기자' 11월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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