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부분은 요새 TV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줄어서 어느 회사나 그리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윤 사장은 그러나 프리미엄 시장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삼성은 특히 지금 HD TV보다 화질이 네 배 뛰어난 UHD TV를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전세계 시장이 120만 대 밖에 안 됐지만, 내년엔 다섯 배 가까운 560만대, 3년 뒤인 2016년엔 무려 천 7백만 대가 팔릴 것이라면서 삼성이 대형, 초고화질로 이 UHD 시장을 주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왜 웃었느냐, 윤 사장은 1년 전만 해도 UHD에 대해서 정반대의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UHD는 시기상조’라는 것이죠. 작년 가을 독일 가전박람회에서 윤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UHD는 소비자가 돈을 더 주고 산 만큼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전용 컨텐츠가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UHD TV를 내놓으면 기존 컨텐츠를 업스케일 해야 하는데 여러 부작용이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으로 5-10년은 걸릴 겁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UHD TV는 지금 HD TV보다 화면만 네 배 선명하지 쓸 일이 없다. 화면만 선명하면 뭐 하냐 드라마고 영화고 다 HD 화질 뿐인데, 비싼 돈 주고 그 TV 산 소비자들이 실망할 것이고 결국 안 팔릴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런데 그랬던 윤 사장이 1년 만에 ‘UHD는 우리의 주력상품’이라고 말을 싹 바꾼 셈이죠.
아마 윤 사장은 당시에는 UHD TV 시장이 이렇게 빨리 열릴 거라곤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초부터 중국산 저가 UHD TV가 쏟아져 나오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습니다. 가격이 우리나라 제품의 3분의 1 수준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다보니 올해 전세계 UHD TV 시장의 70%가 중국산입니다. 물론 아직 한국산과 견줄 품질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시장은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 사장도 바로 생각을 바꾼 것이겠죠.
제가 웃은 건 윤 사장이 단순히 말을 바꿨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람인지라 누구나 생각을 잘못할 수도 있죠. 실제로 그런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런 것들입니다.
- “배우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해리 워너, 워너브라더스 사장, 1927년)
- “세계에 컴퓨터는 다섯 대 정도면 족하다.” (토마스 왓슨, IBM 회장, 1943년)
오래된 예지만 들어 본 이유는, 잘못 생각한 것을 과감하게 뒤집어서 성공한 사례로 입증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해리 워너는 저 말을 한 바로 그 해에 첫 유성영화 ‘재즈싱어’를 내놓아 성공시켰고, 토마스 왓슨의 IBM도 이후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판단을 잘못 했다는 걸 깨달았다면, 조금 창피하더라도 바로 말과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는 것도 경영자의 능력입니다.
이 부분 때문에 윤부근 사장의 말에 웃게 됐습니다. 예전엔 ‘윤불끈’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성격이 불같은 윤 사장이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존심도 버릴 수 있는 것이 경영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IT 세계는 변화가 아주 심한 시장입니다. 소니가 평판 TV를 우습게 봤다가 한순간에 휩쓸려 간 것이 좋은 예죠. 경쟁에서 뒤처지고 사라지는 것이 창피한 것이지, 실수를 빨리 만회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나름 좋은 교훈을 얻는 애널리스트 데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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