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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종청사, '불륜청사' 오명 벗으려면…

땜질식 처방 대신 과감한 근무여건 개선 필요

[취재파일] 세종청사, '불륜청사' 오명 벗으려면…
 '핑크빛 염문' '불륜설 솔 솔'...자극적이고 눈길 가게 하는 제목의 얘기들이 세종청사에 돌고 있다. 밥자리, 술자리 마다 말이 나오고 업데이트 된 정보를 구한다. "기재부 모 과장이라더라..." "알고 보니 공정위더라" 식의 풍문이 부풀려지고 있다.

결혼한 뒤 가족을 서울에 두고 세종청사로 내려온 남성 공무원이 같은 부처 여성 직원과 눈이 맞았다는 것이다. 휴일이면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세종시에 계속 머무는 남편을 의심한 부인이 해당 부처 감사관실에 민원을 제기했고, 그래서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몇 달 전에는 기혼의 기재부 여직원이 같은 사무실 남성 공무원과의 불륜을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남편과 떨어져 혼자 세종청사에 근무하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청사이전 초기 '공무원 2명의 꽃뱀 피해설'로 시작된 세종청사 주변 불륜 얘기들은 이렇게 계속 꼬리를 물고 있다. 이쯤이면 '불륜청사'란 오명이 나올 만하다.

 허허벌판에 청사 건물만 덩그러니 세우고 5천여 공무원들을 이주시킨 지 1년이 다되고 있다. 그사이 공무원들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하루에 평균 4시간을 길에서 버리는 출. 퇴근 전쟁은 지금까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리무진급 고급버스도 아니다보니 허리과 목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출,퇴근이 피곤하다보니 업무 효율은 기대하기 어렵다.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한 과장은 "집에 가면 짜증만 나고 청사에 오면 잠 만 온다"고 하소연이다. 이런 공무원들이 1천200여 명이다. '1천 명 단체지각'이란 해외 토픽감 사건도 벌어졌다. 고속도로가 막힐 때다. 이들은 그나마 마음은 편한 편이다. 한 사람 희생으로 가족들의 생활 터전은 지켰으니 말이다. 큰 결심을 하고 가족들과 세종시 주변으로 이사를 온 공무원들도 많다.

지난해 옮긴 세종청사 공무원들 중 57%다. 운 좋게 아파트를 분양 받았거나 전세나 월세를 구한 사람도 있다.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시간 여유가 좀 있다는 점을  빼고는 이들의 처지도 그리 나은 것은 아니다. 쇼핑, 문화, 의료시설 없는 벽지에서 반 년 이상을 지냈다. 그나마 생기기 시작한 편의점이나 마트의 물가는 전국 최고다. 스마트 교육을 표방했던 교육마저 교실 대란으로 초등학생들이 고등학교로 다니는 형편이다. 수도권의 예전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떼쓰는 자녀들 때문에 속 끓이는 공무원들이 허다하다.

자녀들만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국장급 간부 공무원의 부인이 세종시에서는 못살겠다며 메모만 남기고 서울로 돌아간 경우도 생겼다. 특히 고위공무원 일수록 회의나 국회 일정 때문에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괜히 이사 왔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금강변이나 완성되지 않은 주변 산책로를 걷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우울증 치료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타협책도 있다.

평일에는 혼자 세종시 주변에 거주지를 구해놓고 생활하다 휴일에만 가족들에게 가는 것이다. 거주지는 대개 조치원,오송,대전의 원룸이 인기다. 아파트에서 2-3명이 공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혼자 머무는 시간을 운동이나 취미생활로 알차게 보내는 공무원들이 많다. 그래서 밤마다 세종청사 체육관은 만원이다.

독서나 공부를 좋아해서 일찍 귀가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사무실 직원들이나 지인들을 만나 교제를 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어느 경우든 혼자 거주지로 돌아갈 때는 외로울 것이다. 미혼의 공무원들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휴일이 아니고는 교제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귀던 이성과 이별하는 일은 다반사다. 총리실의 한 과장은 "복도에서 찾으면 미혼 공무원들이 너도 나도 달려와 하소연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국무조정실이 세종청사 미혼 공무원들을 위해 짝짓기 행사까지 주선하고 있을까.

 공무원들의 근무 여건을 책임지는 안전행정부나 세종시 건설을 맡고 있는 행복도시건설청은 자주 생활여건 개선을 강조한다. 부족한 주차장, 식당, 편의시설을 보강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나아진 건 공무원들의 적응력뿐이다. 개선했다는 내용은 거의가 뒷북 조치다. 불편이 극에 달했을 때 취해지는 땜빵 조치가 대부분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 하나만 들어보겠다.

개방형 개념으로 만들었던 청사에 담장을 만들면서 쪽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외부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거리나, 다른 건물로 이동할 때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불편을 덜어준다며 담장에 여러 개의 쪽문을 만들었다. 이 쪽문을 놓고 공무원들은 "굴욕감을 느꼈다"고 하소연이다. 감옥 영화에나 자주 나오는 회전문인데다 너무 좁아서 남성 공무원 대부분은 머리를 수그리고 조심해야 들어갈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씩 출입증을 대야 회전이 되는 문이라 출·퇴근 시간이면 수십 명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

 물론 이런 세종청사 생활의 어려움이 공무원들의 불륜과 일탈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공직자로 지탄받을 일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정부는 감사를 통해 처벌을 할 것이다. 공직기강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그들과 세종청사 생활을 공유한 기자 입장에서는 마음 한 편이 싸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처벌과 기강 강조도 중요하지만, 유목민 같은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조치가 병행돼야한다는 생각이 간절한 것이다. 무슨 획기적인 조치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개념은 참여정부때 만들어졌고, 설계와 공사는 MB정부가 했으니 뭔가 어긋났다"는 한 고위공무원의 하소연이 지금 일어나는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지금 있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이다. 매번 지탄만 받는 탁상행정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다. 애초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고치는 용기도 필요하다. 설계가 잘못됐다면 백년대계를 고려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한다. 좁은 도로, 부족한 주차장, 상가 부족, 불편한 청사 구조 등은 공무원 대부분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들이다.

이전 과정에서 공무원 본인이나 가족들이 겪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관리할 수 있는 치료센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무원 5천600여 명이 추가로 세종시로 옮기는 2단계 이전이 한 달 앞으로 다가 왔다. 지난해 이전한 공무원들은 "매는 일찍 맞는 게 제일"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그만큼 1년이 그들에게 힘들었고 나아지지 않는 생활여건을 보면서 새로 오는 동료들이 안됐다는 심정이다. 주거 불안, 편의 시설 부족, 주차 대란 등 1단계 이전 때의 문제는 되풀이 될 것은 뻔 한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겪는 사람 입장에서 그런 차이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면 안전행정부까지 세종시에 내려와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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