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등 유흥주점이 일반음식점 매출인 양 손님 신용카드를 허위 결제하는 건 고전적인 탈세 수법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이걸 전문적으로 대신해주는 전문 업자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딱 한 달, 가짜 분식집을 차려놓고 룸살롱 여러 곳에 출장 결제를 해주다 사라지는 겁니다. 경찰은 이 억대 '탈세 도우미' 2명을 쫓고 있습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가짜 분식집을 차려 놓고 일반음식점 매출인 양 룸살롱 손님의 카드를 대신 긁어준 혐의로 48살 김 모 씨를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경찰은 잠적한 김 씨의 계좌 압수수색하고, 체포영장을 신청해 검거에 나설 계획입니다.
사라진 분식집 사장님은 '탈세 도우미'
김 씨는 지난 6월 5일부터 한 달간 서울 논현동에 분식을 파는 일반음식점을 차린 것처럼 가짜 사업자 등록을 하고, 룸살롱 6곳의 매출 2억 9천만 원어치를 대신 결제해 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이 분식집을 찾았습니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연립주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씨가 장사했다는 곳은 지하 1층입니다. 장사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웃들은 그를 사채업자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계약금만 걸어놓고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 날 사라졌다"고 합니다.
김 씨는 그러나, 유흥업소의 탈세를 돕는 일에는 주도면밀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경찰 조사결과 그는 카드 단말기를 제작해 판매하는 업자로부터 10여 대의 기계를 샀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지는 않았고, 물건도 지정한 장소로 배송받았습니다.
김 씨가 구매한 건 자신의 가짜 분식집 영수증이 발행되는 단말기였습니다. 유선 방식의 단말기는 아예 고객 편의를 위해, 자신과 거래하는 룸살롱 사무실에 뒀습니다. 이런 단말기는 전화선만 있으면, 어디서든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무선 단말기로 출장 결제도 했습니다. 룸살롱에서 부르면 달려가 결제를 해 주는 겁니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쓰는 단말기로 탈세를 도운 겁니다.
세금 = 수수료 = 탈세액
이런 유령 업자는 탈세를 도와준 대가로 수수료를 챙깁니다. 룸살롱 등 유흥주점으로 신고된 업종은 매출의 30%를 세금으로 냅니다. 하지만, 김 씨 같은 유령 업자와 짜고 매출을 빼돌리면 일반음식점과 똑같이 부가가치세 10%만 내면 그만입니다. 룸살롱 업주들은 경찰 조사에서 대개 매출의 10%를 가짜 분식집에 줬다고 진술했습니다. 분식점 세금에 수수료를 줘도, 매출의 10%를 탈세할 수 있는 겁니다.
서울 강남세무서는 지난 6월부터 석 달간 강남과 분당 유흥가 룸살롱 12곳이 가짜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한 업자 2명에게 10억 9천만 원 상당의 허위 결제를 한 사실을 확인하고, 서울 지역 경찰서 2곳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모 룸살롱 대표 등 유흥주점 업주 12명이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고객.. 밤마다 법인카드 유치전
이런 탈세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라 자발적인 신고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공공연히 성매매로 직결해도 알기 어렵습니다. 적발된 룸살롱 대부분은 성매매를 알선하는 업소입니다. 건물 지하는 룸살롱, 지상은 성매매용 모텔입니다. 또는 바로 옆 호텔로 손님과 접대 여성을 보내기도 합니다. 술값은 물론 성매매에 쓴 돈도 신용카드로 결제합니다. 손님에겐 안심하라고 설득합니다.
작년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룸살롱 매출은 크게 줄고 있습니다. 지난해 부가세액이 566억 원으로 2008년 752억 원과 비교하면, 4년 새 24.7% 감소한 겁니다. 신고인원도 1만 7천여 명에서 1만 5천여 명으로 8.4% 줄었습니다.
룸살롱 입장에선 자구책이 필요합니다. 가짜 영수증은 고객 마음을 안심시킬 영업 수단이기도 합니다.
가장 매력적인 건 법인카드입니다. 적발된 룸살롱에선 직원들이 일반음식점으로 찍힌 허위 영수증까지 샘플로 보여주며, 법인카드 고객을 안심시켰습니다. 삼성동의 한 룸살롱 직원은 손님에게 "법인카드 결제는 정말 문제없습니다. 저희 손님도 거의 비즈니스 목적인데요. 법인카드라서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6월 현재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법인카드 숫자는 675만여 개입니다. 1억 1천만 장이 넘는 전체 신용카드의 6% 수준입니다.
하지만, 작년 한국은행의 신용카드 결제 규모를 보면 유흥주점이 법인카드에 눈독 들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법인카드 결제액은 124조 4천억이 넘었는데, 전체 카드 결제 액수 478조 5천억여 원의 26%나 되기 때문입니다.
관공서와 기업 가운데, 법인카드를 유흥비 결제에 쓰지 못하도록 이른바 '클린 카드'를 도입한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업종을 바꿔서 결제하면 스스로 발견해 제재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권한을 가진 세무 당국과 수사기관의 공조가 답입니다.
'지하경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오래된 방식으로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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