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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치소와 교정협회의 수상한 '공생'

내가 받으면 '지원금', 네가 받으면 '뇌물'?

[취재파일] 구치소와 교정협회의 수상한 '공생'
법무부 소속 교정본부는 전국 41개 구치소와 4개 교정청을 갖고 있는 정부 기관입니다. 죄를 지어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을 강제 수용해 관리하는 곳이지요. 재소자들을 외부와 엄격히 차단하는 '보안 조직'이라 그곳은 언론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철옹성'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감시 받지 않은 국가 조직은 '단언컨대' 깨끗함을 잃게 마련입니다. 가까운 예가 한국수력원자력이었지요. '댓글 사건'으로 시끄러운 국가정보원도 매 한가지고요. 그러고 보니 구치소와 한수원, 국정원은 모두 '보안 조직'이라는 교집합을 갖고 있군요.

'철옹성' 교정본부가 전직 교도관들이 주축이 돼 만든 교정협회에 독점 납품권을 주고 있다, 여기에 특별한 계약에 따라 교정협회 생산 라인에 재소자를 지원함으로써 인건비를 대폭 줄여준다, 그런 교정협회로부터 수십 년 동안 매달 수천만 원씩 현금을 받고 있다, 두 조직 사이의 업무 연관성을 볼 때 그 돈은 대가성 있는 '뇌물'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 돈이 직원들 복지비로 쓰이기는 커녕 각 구치소장과 교정청장의 업무추진비로 쓰이고 있다...이 정도가 제 기사의 핵심입니다.

[단독] 구치소 독점 납품 대가?…수상한 현금 (클릭)

공무원이 민간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현금을 받아 써오고 있다니, 그런데 이게 수십 년 동안 언론에 한 번도 노출이 안 됐다니 기가 막혔습니다. 교정본부장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는 "그동안의 관행이었다"면서도 "나라에서 받는 업무추진비가 부족하다 보니 그 돈으로 직원들 경조사 등을 챙겨 왔다"고 털어놨습니다. 물론 '교정청장에 재직할 때까지의 얘기'로 한정했지만요. 그러나 그조차 그 돈을 받을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교정협회도 찾아갔습니다. 교정협회의 변은 이렇습니다. "정관에 따라 교도관들의 처우 개선과 복지를 위해 지급하는 돈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는 돈이다. 기관장이 그 돈으로 직원들 생일 파티도 해주고, 경조사도 챙기고 있으니 사용 목적에 맞다고 본다."

제 사고가 문제일까요? 제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교정본부와 교정협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법률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물론 소수 의견 중엔 교정협회의 설립 목적과 취지 등에 대해 좀더 살펴봐야 그 돈이 뇌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만, 대다수는 '대가성이 상당한 뇌물'이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놨습니다. 그 중 모 판사가 던져준 예가 와닿아 소개합니다. "사법시험을 합격해 검찰과 법원에 있었던 사람들이 퇴직했다고 치자. 그들이 '박봉(?)'의 검사와 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재단법인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들이 검찰, 법원과 밀접한 공생 관계를 이루며 수익을 낸다고 치자. 그 수익금 중 일부를 매달 각 검찰청과 법원에 보낸다고 치자. 이걸 국민이 이해할 수 있을까?"
교정본부_500

교정본부와 교정협회 간의 수상한 돈 거래에 대해 감사원이 살펴본 적이 있더군요. 2007년 감사 결과가 홈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교정협회의 복지 지원금이 재소자들에게 조금 돌아가고 교정직원에게 너무 많이 사용된다'는 내용입니다. 감사원도 이미 교정본부가 교정협회로부터 복지 지원금 명목으로 계속 현금을 받아온 사실을 파악했다는 것이지요. 감사원이 이때 이 돈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아직까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교정본부가 업무 상 긴밀히 연관이 있는 민간 단체로부터 주기적으로 현금을 받아왔고, 그 돈이 각 기관장들의 '쌈짓돈'으로 쓰였다는 보도에 대해 법무부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합니다. 얼마 전 황교안 법무장관이 '삼성의 떡값을 받았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당장 정정보도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법무부가 말입니다. "돈이 들어오는 건 맞는데 교정본부에 확인해 보니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잘 쓰고 있다고 하더라"가 법무부의 공식적인 최종 답변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업무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공무원에게 '뒷돈'을 주지 말고, 앞으로는 재단법인을 만들어 공무원의 복지와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지원금을 줄 수 있다는 정관을 만든 뒤 그 법인 명의로 당당하게 '앞돈'을 통장에 넣어주면 수사 기관이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겠구나...물론 말이 안 되는 소리겠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대한민국 법무부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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