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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고차 팔듯 인공위성 내다판 KT…뒤늦게 해명 '급급'

[취재파일] 중고차 팔듯 인공위성 내다판 KT…뒤늦게 해명 '급급'
보통 통신업체에서 하는 기자 간담회는 적어도 하루 전에는 공지가 됩니다. 하지만 지난 4일 KT가 개최했던 무궁화 위성 매각 관련 기자 회견은 불과 몇 시간 전에 기자단에 연락이 왔습니다. 자료조차 현장에서 배포한다는 말에 어떤 내용을 가지고 해명을 할지 궁금했습니다. 지난 2일, KT가 무궁화 위성을 홍콩에 매각했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기사를 쓰면서, 여러 차례 해명을 요구했지만, KT로부터 보도 내용에 대한 입장을 전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 SBS 8뉴스 < KT, 외국 업체에 위성 매각하고 주파수 허위신청>

KT의 긴급 기자 간담회 "위성 매각 문제없다"

기자 회견을 하면서 나눠준 자료를 살펴보니, 7가지 항목에 걸쳐 매각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걸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위성은 민영 회사인 KT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팔 수 있는 건 당연하고, 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위성 헐값 매각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주파수까지 팔았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정작 KT가 하고 싶은 말은 보도 자료의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허위 사실을 악의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경 대응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무엇이 악의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건지 알 길은 없었지만, 오보를 내는 언론사들은 소송을 각오하라는 협박처럼 들리는 말이었습니다.

문제없다던 KT, 정부 청문회에서는 "선처 호소"

그리고 사흘 뒤 미래부 차관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결산 국회에 나와서 한 말은 KT의 기자 회견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습니다. KT는 결백을 호소했던 기자회견 다음날 미래부의 무궁화 위성에 대한 비공개 청문회에 나갔는데, 조사 책임자인 미래부 차관이 국회에 와서 답변하는 걸 들어보니, 기자 간담회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규제기관에는 결백을 호소하기 보다는 자백에 가까운 읍소를 했던 겁니다. 국회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 유승희 민주당 의원
"더 큰 문제는 인공위성이 전략 물자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 법적 제재 조치를 받는 건데, 완전히 편법도 아니고 법을 넘어서서 몰래 팔아넘기지 않았습니까? (중략) 정부는 지난 6개월 동안 인공위성 불법 매각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 윤종록 미래부 2차관
"우선은 위성 매각에 대해서 신고 인가 요청이나 신고 설비 협의를 하지 않아서 인지하기가 어렵다고 말씀드리되, 인지한 이후 법적 검토를 해왔고요. (중략) 청문회에서 한 디테일한 얘기를 말할 수는 없지만, KT에서는 선처를 바란다. 잘했다기 보다는 그런 측면의 얘기를 했던 부분들을 말했습니다."

KT가 과연 주파수를 거짓으로 할당 받았는지도 사건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미래부는 무궁화 3호 위성이 할당 받은 주파수에 대해서도 취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유승희 민주당 의원
"KT가 이미 홍콩에 매각한 무궁화 3호 위성에 사용하겠다고 거짓으로 주파수를 할당받은 건에 대해서 미래부가 청문회를 진행했는데, 앞으로 그러면 어떤 제재 조치를 취할 계획이십니까?"

@ 윤종록 미래부 2차관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할당 취소까지 포함한 행정처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유승희 민주당 의원
"기본적으로 주파수 할당을 취소해야하는거 아니에요?"

@ 윤종록 미래부 2차관
"당연히 취소를 해야겠죠."

무궁화3호 위성 ‘궤도 적법성’ 논란까지 불거져

게다가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무궁화 3호 위성이 들어가 있는 동경 116도 궤도의 적법성 문제가 제기된 겁니다. 우리나라는 ITU에서 우주 궤도를 할당 받는데, 무궁화 위성은 불법으로 매각됐기 때문에 홍콩업체가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인 궤도를 정당하게 사용할 권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미래부는 우주 궤도에 대해서도 "부당하게 KT가 할당 받은 게 확인되면 이를 취소하고, 취소된 것을 다른 기관이나 이용자들에게 할당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T '무궁화 위성 몰래 매각' 짚어야 할 두 가지

무궁화 위성 사건을 보면서 통신사가 인공위성을 개인들끼리 중고차 사고 팔듯이 정부에 아무런 허가 절차 없이 일을 저질렀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미래부는 통신사의 밥줄인 통신비를 심사할 때도 시장 지배적 통신 사업자에 대해서는 인가를 내주고, 나머지 통신사들도 신고를 받는, 비유하자면 간섭하기 좋아하는 시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통신사들은 항상 규제 기관을 의식하기 마련이고, 계약을 진행할 때도 정부 규제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KT가 용감하게도(?) 정부 허가를 뛰어넘어 몰래 매각을 진행했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결국 이 부분은 검찰 수사로 규명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규제 기관인 미래부가 과연 그동안 제대로 된 주파수 정책을 해왔냐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할 거 같습니다. 계약 상대방인 홍콩 위성업체인 ABS는 무궁화 위성 계약 상황을 홈페이지에 친절하게 올려놓고 사세가 번창하는 것을 전 세계에 홍보를 해놨습니다. 위성을 운용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닐 거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업계 파악만 하고 있어도 무궁화 위성 주인이 홍콩 회사로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국민의 재산인 주파수를 할당하는 일이라면 적어도 주파수를 사용하는 위성을 누가 사용하는지는 규제 기관이 직접 확인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신사들이 하는 말이라면 그냥 '네, 네' 하고 액면 그대로 믿고, 제대로 확인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볼 부분인 거 같습니다. 정부가 국회 공개석상에서 주파수 할당 취소를 확언했다는 것은 그동안 통신사에 내내 속았다는 걸 자인하는 것 같아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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