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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팔자 기구한 생선, 도루묵 이야기

도루묵 풍어에도 어민은 근심

[취재파일] 팔자 기구한 생선, 도루묵 이야기
도루묵의 기구한 팔자는 오래 전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됐다. 고려의 왕이 동쪽으로 피란했을 때 동해안에서 잡히는 목어(木魚)라는 물고기를 먹은 적이 있는데 맛이 좋아서 이름을 은어(銀魚)라고 고쳐 부르게 했다. 시간이 흘러 난이 끝난 뒤 환궁한 왕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도루묵을 먹었다. 그런데 그 때는 왕이 다시 산해진미에 길들여진 뒤라 피란 중에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왕은 다시 이름을 목어(木魚)로 바꾸라고 하였고 잠깐 은어(銀魚)로 불렸던 이 생선은 도로 목(환목, 還木), 즉 도루묵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시절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쓴 음식평론서 도문대작(屠門大嚼)과 조선 정조 때 대사간을 지낸 이의봉이 쓴 고금석림(古今釋林)에 이 같은 도루묵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의 총애를 얻어 은어(銀魚)를 사성(賜姓)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성(賜姓)을 박탈당하고 내쳐졌던 기구한 운명. 그 오명(汚名)의 굴레는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속속들이, 모두”라는 뜻인 “말짱”은 그 뒤에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서술어가 꼭 따라온다. 그래서 ”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은 도루묵의 기구한 팔자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도루묵 이름에 얽힌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고려와 조선조를 통틀어 동해안으로 피란한 왕이 없거니와 도루묵은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계속 은어(銀魚)라는 이름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며 조정과 각 지방 감영에 진상된 걸 보면 환목어(還木魚) 이야기는 오히려 허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소신 없고 변덕스런 왕의 말 한 마디에 도루묵의 지위가 극과 극을 오간 것처럼 어명 한 마디에 유배와 재중용을 거듭하며 부침을 겪었던 신하들이 적지 않았던 걸 보면 그 이야기는 단순히 물고기 도루묵이 아니라 절대 권력자 아래를 섬겨야 했던 그 시대 선비들 자신의 이야기는 아닐까?

진위 여부야 어찌됐든 “말짱 도루묵”으로 낙인찍힌 비운의 도루묵 팔자에 다시 서광이 비춘 건 현대시대로 넘어온 뒤이다. 1960 ~ 1970년대 도루묵은 맛은 물론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서 대일 수출품목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외화를 벌어들이는 충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단순히 인력과 풍력에 의지하던 어선들이 엔진이란 내연기관의 힘을 빌면서 도루묵 어획량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1971년 도루묵의 어획량은 연간 2만 5천 톤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과도한 조업은 자원 급감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 도루묵 어획량은 30년 전의 1/10인 2~3천 톤 수준까지 떨어졌다. 남획과 환경오염에 따른 산란장 훼손, 치어에 대한 무분별한 포획이 부른 참사였다. 동해안에서 역시 남획과 환경 변화로 사라진 명태를 대신해 도루묵은 그나마 어민들의 겨울철 주요 소득원이었는데 그런 도루묵의 감소는 어민들에게 커다란 근심이 되었다.

수산당국은 훼손된 산란장을 다시 조성하고 그물과 통발, 모래밭에 붙여놓은 도루묵 알을 수거해 인공부화 시킨 뒤 치어 방류량을 늘려갔다. 몇 년간 지속된 노력으로 도루묵은 다행히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어획량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도루묵은 여전히 어민들 근심의 대상이다. 도루묵 자원이 급감할 때 소비마저 크게 줄었는데 자원이 다시 회복되는 지금 한 번 위축됐던 소비는 전혀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가 적어서 어가(魚價)는 낮고, 수입을 늘리려면 어획량을 늘려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어민들끼리 어획 경쟁이 붙으면 어가는 폭락하고 그나마 늘고 있던 도루묵도 다시 급감할 것이다. 자원 회복 노력이 말 그대로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소비가 적당히 늘어서 적절한 어가가 유지된다면 금상첨화다. 어민들 생계 걱정도 덜고 자원도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오묘한 조화. 물론 어민들 스스로의 몫이 크지만 조금 힘을 보태주는 건 어떨까? 팔자 기구한 도루묵도 돕는 셈 치고 말이다. 입안 가득 탱글탱글한 알이 톡톡 터지는 식감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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