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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표절? 클리셰? 가요계 들썩

[취재파일] 표절? 클리셰? 가요계 들썩
 오랜만에 나온 가수 아이유의 '분홍신'에 표절 의혹이 제기될 때만 해도, '요즘 네티즌들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나온 프라이머리의 '아이갓씨(I got C)'에 바로 표절 논란이 일자, 무서운 수준을 넘어서 대단하단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작곡가들이 이런 네티즌들의 능력을 모를리 없을텐데요, 정말 표절을 한 걸까요?

- 표절? 클리셰?
 분홍신에서 표절 논란이 일고 있는건 도입부 리듬과 두번째 소절 멜로디 부분입니다. 독일 혼성그룹 넥타(Nekta)가 2009년에 발표한 '히어스 어스(Here's Us)'란 곡과 유사하다는 겁니다. 박자도, 리듬도, 악기 구성도 비슷합니다. 온라인에는 네티즌들이 만들어 놓은 비교 영상도 많습니다.

 하지만 국내 다수의 작곡가들은 앞다퉈 '클리셰'라고 말합니다. 클리셰의 사전적인 의미는 '진부한 표현'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표현법'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홍신은 '스윙 재즈'라는 장르인데, 이 장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반적인, 자주 사용되는 리듬'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중 가요에서는 스윙 재즈곡이 많지 않지만, 외국에서 유행하는 혹은 유행했던 스윙 재즈 곡들에는 이와 비슷한 리듬이 자주 사용됐다고 합니다. 

 아이갓씨의 경우를 볼까요. 네덜란드 출신 가수 카로 에메랄드(Caro Emerald)의 '리퀴드 런치(Liquid Lunch)'와 멜로디가 비슷하다며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윙에 레트로 힙합, 역시 익숙지 않은 음악입니다. 댄스곡에 강렬한 비트가 들어가듯이, 발라드에 기타나 피아노, 현악기가 사용되듯이, 특정 장르의 음악을 표현하는데는 일정한 방식이 있습니다. 이런 장르의 특징적인 리듬과 멜로디 라인 때문에 두 곡이 비슷하게 들리는 것이라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표절은 누가 결정하는 거죠?
 우선 이런 결론은 네티즌도, 작곡가도, 원작자도 아닌 '법원'이 낼 수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의혹 제기와 별도로 원작자가 소송을 제기해야만 표절인지 아닌지 결론이 날 수 있습니다.

 90년대까지는 '8마디 이상의 음악적 패턴이 비슷할 경우 표절'이라는 심의제도가 있었지만,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이 제도는 없어졌습니다. 양적 판단보다는 질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비슷하게 들린다'는 차원 보다, 구체적으로 멜로디, 리듬, 화음이라는 3요소를 비교 분석해야 합니다. 또 개별적인 음표의 유사성 보다 이 음표들이 어떻게 결합돼 연속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에 앞서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 요소겠지요.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문가는 물론 일반 청중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표절로 판명이 날 경우 창작자는 원작자에게 적게는 1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저작권료를 지급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표절이란 결론이 나기까지 그 과정은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올해 초 박진영 씨가 작곡한 '섬데이'란 곡은 김신일 씨의 곡 '내 남자에게'와 비슷하다며 표절 의혹이 제기돼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항소심에서 5천 7백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에 불복해 대법원의 판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야 표절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논란'만으로 사라지는 곡들...
 이런 전문가들의 설명에도 논란이 잠잠해지지 않는건, 여전히 네티즌들의 귀에 이들 노래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표절이라고 속시원하게 말하는 사람도 없으니 더 답답할 노릇이죠.  

 하지만 최근 표절 논란이 계속될 때마다, 그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노래가 사라지는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작곡가 입장에선 논란만으로도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외국 노래를 듣기 쉽고, 또 다양한 음악을 찾는 팬들이 국내에도 많아지면서 창작자에 대한 고민, 무게감이 그만큼 더해졌을 겁니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다 보니 여러번 들었던 멜로디가 우연히 잔상으로 남았거나, 앞서 설명한 클리셰일 수도 있습니다. 표절 의혹만 제기되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저평가 되거나 아예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아예 창작 의지가 꺾이는 작곡가들도 많다고 합니다. 좀 안타까운 일이죠.

 프라이머리의 '아이갓씨'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도 여전히 온라인 음원차트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곡에는 논란이 된 부분도 있지만, 그와 별개로 재밌는 가사, 랩 등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매력 때문 아닐까요. 만약 의도적으로 베낀 것이라면 비난받고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녀사냥은 불필요한 소모전일 수 있습니다. 프라이머리나 카로 에메랄드는 각자의 입장을 밝혔고요. 누군가 박명수씨의 후렴구 "싫음 말어잇"이 이 논란에 대한 답이라고 하는 분도 있더군요. 표절인지 아닌지는 그들에게 맡겨두는게 어떨까요, 그들이 원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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