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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낮은 산도 조심하셔야죠

등산객의 ‘마음가짐’과 공무원의 ‘마음가짐’

[취재파일] 낮은 산도 조심하셔야죠
요즘 단풍산행이 절정입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벗 삼아 선선한 바람과 함께 산을 걷노라면 그야말로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등산로 취재 때문에 힘든 산행을 하니 처음엔 썩 내키진 않았지만, 막상 올라가보니 다시 내려오는 게 아쉬울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오른 산은 관악산이었습니다. 정상 632미터.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닙니다. 제가 관악산을 처음 오른 게 1998년이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절벽 같은 바윗길에 암벽을 타야하는 아슬아슬한 코스, 더군다나 당시엔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는지 의도치 않게 샛길로 빠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친구들과 함께 올랐다 3시간 가까이 산을 헤맨 적도 있었고요. 제게 관악산은 ‘만만히 봤다 큰 코 다친 산’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관악산을 종종 올랐는데, 등산로를 완벽히 숙지하고, 가능한 위험 구간을 피해 다녔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다시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관악산 첫 산행 당시 한참 고생했던 구간을 다시 가보기로 했습니다. 15년 전에 비해 산도 좀 탈줄 알게 됐고, 체력도 좋아졌을 테니 뭐 별거 있겠냐 싶었죠. 하지만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사고가 많이 날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6백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 도심에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올 수 있는 산, 하지만 무방비로 갔다간 사고 나기 십상이었습니다.

일단 사고 현황부터 취재해 봤습니다. 서울의 산 가운데 관악산은 2번째로 사고가 잦았습니다. 최근 5년 간 북한산에선 1,422명이 죽거나 다쳤는데, 관악산은 931명 이었습니다. 북한산보다 낮은 수치긴 하지만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북한산은 서울시 면적의 13%에 달하는 넓은 산이고, 암벽이 많아 험준한 산으로 통합니다. 방문객수도 한 해 천만 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관악산은 서울시 면적의 3% 정도로 규모도 작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걸까요. 여러 산을 경험한 제 생각에는 일단 등산객의 마음가짐이 큰 원인 같습니다. 북한산이나 지리산, 설악산 등 큰 규모의 산을 오를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게 됩니다. 하지만 관악산은 다릅니다. 두세 시간이면 쉽게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산,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없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구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당황하게 됩니다.

뉴스를 통해 소개해드린 위험 구간은 사당에서 관악산 정상인 연주암에 올라가는 구간입니다. 경사가 너무 가파라서 암벽에 가까운 구간인데 등산객들에게 악명 높습니다. 서울대에서 올라와 연주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구간은 절벽과 같은 낭떠러지가 있는 바윗길입니다. 발을 헛디디면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관악산은 객관적으로 험준한 산에 속한다. 겉보기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암벽도 많고 낭떠러지 투성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관악산에서 만난 한 전문 산악인의 말입니다.

그런데 마냥 등산객들의 마음가짐 때문일까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을 타다보면 등산로 정비가 꽤 잘 돼있습니다. 입구에는 등산로를 난이도별로 분류해 초보자들이 오르지 말아야 할 곳을 소개하고 있고, 사고 다발 구간은 아예 통제를 시킵니다. 하지만 관악산은 그런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관악산의 관리 주체는 서울 관악구를 비롯해 금천구와 경기도 안양과 과천, 이렇게 4곳입니다. 따로 관리하다보니 안전시설이나 대책도 제각각입니다. 사당 쪽 등산로에서 정상으로 가는 아슬아슬한 구간은 줄 하나가 전부입니다. 서울대 쪽 등산로에서 연주암으로 가는 절벽 바윗길 구간은 사실 그 밑에 우회 등산로가 있지만 표지판조차 없습니다. 반면, 과천쪽 등산로는 거의 정상 부근부터 밑까지 거의 계단으로 돼 있습니다.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구간인데도 그렇습니다. 각 지자체별로 예산이 다르니 안전시설도 제각각인 셈입니다. 정말 위험한 구간에 설치돼야 할 계단이 있을 곳에는 없고, 없을 곳에는 있는 게 관악산의 현주소입니다.

물론 관악산을 지금의 국립공원처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4개 지자체는 관악산의 경관을 위한다면서 노점상 철거를 위해 서로 힘을 모은 적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노점상 보다 더 중요한 안전 문제에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지난 5년 간 1,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니 그냥 넘길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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