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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코노미 승객을 더 우겨넣으며 그들이 잃어가는 것들

WSJ "믿을 수 없도록 좁은 항공기 좌석"의 파장

[월드리포트] 이코노미 승객을 더 우겨넣으며 그들이 잃어가는 것들
항공사 승무원들은 항상 멋지다.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 멋진 제복을 차려입은 그들의 이미지는 '무한 친절과 서비스'였다. 친절한 스튜어디스에게 이것 달라, 저것 해달라하며 비행을 즐기고 시간이 아까워 잠도 안자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비행 중 승객이 지켜야할 것들은 더 엄격해졌고, 손님이라도 안되는 건 안된다. 한동안 독점이었던 항공사도 계속 생겨났다. 해외여행은 늘어났다. 있는 사람만 비행기 타던 시절과 확연히 다르다. 성수기에는 좌석을 잡을 수가 없지만 비성수기에는 빈자리가 많고, 저렴한 이코노미석엔 사람이 몰리고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은 빌 때가 많다보니 항공사들은 승객을 어떻게 잘 채워넣어야 수익이 날지 머리를 잘 굴려야한다. 같은 표값을 받고 사람 더 태우는 것 만큼의 묘수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월드리포트 좌석-5
10년 전엔 18.5인치…지금은 17인치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4일(미국시간) 재미있는 도표와 함께 기획기사를 냈다. 형식은 기획기사인데 내용은 고발기사였다. 댓글에 댓글이 꼬리를 물었고 큰 파장이 일어났다. 실제 측정결과, 자리가 가장 넓은 곳은 미국의 극장이었다. 25인치(63센티미터)였다. 다음은 미국 철도인 '앰트랙'열차 좌석이 20.5인치 (52센티미터), 메이저리그 야구장 좌석이 19인처(48센티미터)다. 놀랍게도 보잉 777의 이코노미석은 17인치, 43센티미터였다. 야구장보다 좁았고 1등석보다는 10센티미터가 좁았다. 신문은 "믿어지지 않는다(incredible)"는 제목을 달았다.

제트여객기를 이용한 여행이 자리잡던 50여년 전, 미국 항공사들의 좌석은 본래 17인치였다. 이 수치는 과학적으로 정해졌다. 당시 평균체형을 가진 미 공군 조종사의 엉덩이 폭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항공기 성능개량으로 국제선 비행이 급격히 확산되던 1970년대, 항공사들은 오랜 시간의 비행일 수록 승객이 더 힘들 것이고 인류의 체형도 변하고 있다며 이 폭을 더 늘렸다. 18인치(약 45.5 센치미터)였다. 이것은 10년 뒤 다시 18.5인치(약 47센치미터)로 늘었다. 당시 신형 항공기종인 보잉 777과 에어버스380 수퍼점보의 등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항공사들은 그 폭을 다시 17인치로 줄이기 시작했다.

더 끼워넣은 추가열, 가공할 10열 좌석

비행기 기종마다 폭이 다르니 의자열 배치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고객들을 혼동시키기엔 현재의 비행기에 좌석이 늘어나고 있음은 너무 확연해보인다.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비행기 내부는 보통 양쪽 창가에 2열, 가운데 3열, 이렇게 7열 형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창가 쪽에 각 3열이 됐다. 이 때만해도 9열이다. 그런데 또 중간 좌석에 1열이 추가된 항공기가 등장했다. 이것이 10열 항공기이다.

항공사들은 좌석 17인치는 유지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줄어든 좌석 폭 3~4센치의 느낌은 장기 비행에선 엄청난 것이다. 사람이 많아졌으니 팔과 팔이, 몸과 몸이 자주 접촉하게 된다. 수면제를 먹고 잠에 빠지지 않는 한 만만치않은 스트레스이다. 무엇보다 승객 어깨 사이의 공간, 팔을 걸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졌고, 결정적으로 통로가 좁아졌다. 통로에 짐과 몸이 끼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쥐어짜내기식' 배열은 항공사들에게 현금을 쥐어짜줬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존 오스트로워 기자는 묘사했다. 그는 의미있는 통계를 보잉사로부터 받아냈다.

좌석배열 변경은 근 20년 동안 서서히 이뤄졌는데, 최근 3년 동안은 더 뚜렷하게 늘었다. 2010년 각 항공사에 납품된 보잉 여객기 74대 가운데 10열 좌석형은 15%였다. 지난해에는 납품 비행기 83대 가운데 69%가 10열 좌석형이었다. 그들이 좌석열을 바꿔가고 있음은 분명했다. "항공기 제작사는 구매자인 항공사의 요구에 맞춰 비행기를 제작해 납품하는 것 뿐입니다"라고 마이크 베어 보잉사 수석부사장은 말했다.

일등석의 화려한 라운지와 이코노미석 간의 함수

같은 항공기에도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은 가격이 매우 비싸다. 일등석은 이코노미석보다 3배에서 5배 이상, 비즈니스석은 2배 이상 비싸다. 항공사들에게 이 자리를 전부 채우는 것 만큼 좋은 전략은 없다. 이른바 우수고객(High paying flier) 유치를 위해 항공사들은 우등석을 더 안락하게 넓히고 있다. 와인과 스카치를 즐길 수 있는 호텔 바 형 라운지 시설, 내 방처럼 푹 쉴 수 있는 '케빈'이 등장했다.

비싼 고객 유치에 주력하는 공간활용으로 정작 우등석의 자리 수는 줄었다. 하지만 전체 승객 수가 줄어들게 놔둘 수는 없었고 이코노미석을 늘리는 방법이 등장했다. 단순히 줄어든 자리를 메우는 식이 아니라 더 공격적이었다. 여유있는 공간의 여객기 2층은 더 촘촘해진 1층을 의미했다. 항공사 컨설턴트인 폴 스타번즈는 "항공사들은 비싼 좌석의 안락함과 매력도를 높여 부유층 고객을 한명이라도 더 유치하고 이 비용은 일반석의 증석으로 상쇄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 이런 방법은 전체 항공운임을 경쟁사들 수준으로 적절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보잉사 측은 앞으로 신형항공기가 나오면 공간이 조금 넓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 나오는 보잉 777X의 경우, 현 기종보다 실내 폭이 4인치 더 넓다는 설명이다. 10열 좌석의 경우 0.5인치 정도 넓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비행기는 2020년에 나온다.

이제는 몸집이 한결 커진 미국과 유럽 승객들도 은근슬쩍 한 줄 더 늘어난 비행기 좌석열의 실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항공사들은 이 불만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준비 중이다. 에미레이트 항공사의 임원은 비행기 안의 푸짐한 음식, 부지런히 제공되는 스낵류, 그리고 전자게임, 영화 등의 오락시설은 비좁은 좌석에서 승객들의 시선을 돌리는 전략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런 음식과 TV는 승객들을 최면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격앙돼있다. 이번 기사의 파장으로 항공사들은 무엇을 잃고 있을까? 한국말로 하면 바로 '인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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