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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용카드 넉 장 만들면 신용등급 하락…왜?

[취재파일] 신용카드 넉 장 만들면 신용등급 하락…왜?
직장인이라면 신용카드 1~2장 정도는 사용하실 겁니다. 또 카드에 따라서 할인 혜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여러 장 만들어 쓰는 분도 있습니다.  회사원 송모 씨도 지금껏 혜택이 서로 다른 신용카드 석 장을 주로 쓰다 최근 백화점 카드 1장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5% 현장 할인에, 포인트 적립이 많고 3개월 무이자 할부 등 각종 혜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용카드를 넉 장째 만들어 쓰면 개인 신용등급 점수가 깎인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민간 신용평가사들이 넉 장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2003년 카드 대란부터 지금까지 과거 경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넉 장을 만들어 쓰면 연체율이 올라간다는 통계학적인 근거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넉 장 이상이면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등으로 빚 돌려막기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신용평가사들은 말합니다.  틀린 얘기는 아닐겁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의 점수 산출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통계이다 보니 잣대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데,  연봉 1억 원인 사람과 3천만 원인 사람이 넉 장째 카드를 만들면 분명 연체율 확률이 다를텐데도 동일하게 점수 하락요인이 발생합니다.  카드를 발급받는 사람들의 과거 거래 실적과 자산, 가장 최근의 연봉 수준이 고려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전용카드는 다른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현명한 소비자라면 자주 애용하는 곳의 카드를 만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제가 아는 후배는 백화점 마다 카드 1장씩 발급받아 추가 할인이나 세일 행사 때에만 사용하지만 연체는 단 한번도 안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이나 갤러리아백화점 등 일부 백화점 전용카드의 경우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자체가 불가능하고 백화점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도 일반 신용카드처럼 돌려막기가 우려된다고 점수를 깎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위의 송 씨도 10년 넘게 연체 사실이 없고 카드론, 현금서비스를 받지 않았는데도 단지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백화점 전용카드를 만들어 20만 원 가량을 결제했다 다음 달 신용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졌습니다.  

신용카드사들도 할 말은 있을 겁니다.  평가사들은 카드를 단순히 넉 장 이상 만들었다고 점수를 당장 깎는 게 아니라 결제가 이뤄지는 시점으로부터 결제정보가 신용평가사들에게 전달되는 한 달 후에야 등급 하락요인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또 해당 카드를 석 달 이상 안 쓰면 넉 달 째부터는 떨어진 점수가 원상 복귀 되고, 카드를 많이 만들어 쓰더라도 연체 없이 이용하면 장기적으로 등급이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카드사의 말이 옳다 하더라도 넉 장째 카드를 만들어 쓰면 점수가 깎인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용평가사의 이런 산정 방식이 소비자에게 어떤 불이익을 안겨줄까요?

당장 은행 등 금융권 대출 금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넉 장 째 카드를 만든 송씨도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진 뒤 마이너스 대출 금리가 0.3%p이상 올랐습니다. 은행이 민간 신용평가사의 등급 정보를 대출 금리 산정에 반영해 금리를 올린 겁니다. 은행들은 민간 신용평가사의 개인 신용등급 정보를 발빠르게 반영해 등급이 떨어지면 다음 대출 만기가 되는 시점에서 대출 이자에 반영하게 됩니다.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 부담이 늘어 서민들의 고통은 커지게 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신용평가사들은 점수를 산정하는 모델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신용평가사들도 제대로 된 정확한 개인 금융 정보, 예컨대 자산이나 소득 등을  파악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카드 사용 장수만으로 점수를 산정하는 한계를 인정합니다.  특히 국내 최대 신용평가사의 경우 2011년에 만들어진 평가 모델을 사용하고 있어 현실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은 개인 신용평가 모델은 민간의 영역이라며 감독당국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당장 대출금리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평가모델이 정확한지에 대한 검증 책임은 감독 당국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잘못된 평가 모델로 수많은 소비자들이 금융권 대출 때 불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 신용평가사에 대한 정기 감사는 1년에 1번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국내 최대 신용평가사에 매달 들어오는 신용등급 관련 문의나 민원이 8만 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1년이면 백만 건에 육박합니다.  그만큼 신용등급에 대한 관심과 불만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세밀하고 정교한 신용등급 평가 모델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신용평가 회사는 미래의 예측 영역인 신용평가 모델에 문제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감독당국은 민간 신용평가사가 제대로 된 평가 모델을 갖고 있는지 실태 점검이 시급합니다.  개인의 신용등급은 더이상 단순 정보가 아닌 개인의 금융거래와 경제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바로미터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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