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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복입고 갓 쓴 예수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취재파일] 한복입고 갓 쓴 예수
운보 김기창 작가를 아십니까? 지금은 생소한 이름이 되었지만, 1989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로 꼽혔던 미술인입니다. ‘바보 산수’ 작가라고 하면 조금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보 산수’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은 대표적인 한국화가로, 우리 전통회화의 현대화를 이끈 작가입니다.

조선시대 마지막 궁중화가였던 이당 김은호를 사사한 운보 선생은 지극히 전통적인 한국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전통 채색화부터 시작해, 이후 입체파적이고 추상적인 그림에, 변형된 민화풍의 그림까지,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습니다.

이런 운보 선생의 작품 세계에서 ‘화룡점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성화’입니다. 성화는 지극히 종교적인, 그것도 서양에서 건너온 종교에서 비롯된 것인데, 어떻게 한국화가가 그릴 수 있었을까 싶지만, 작가의 작품 활동에서뿐 아니라 우리 회화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작품이 바로 운보의 ‘성화’입니다. 자신이 신자이기도 했던 운보는 다양한 주제 가운데에서도 ‘예수의 생애’ 30점 연작을 그렸는데요, 그 속에 등장한 예수는 물론이고 배경까지 ‘조선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지극히 ‘한국적인 성화’를 남겼습니다.

예수 생애의 첫 장면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알리는 장면입니다. 물레를 돌리다 말고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처녀가 바로 마리아입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염집 규수의 모습입니다. 곱게 땋은 머리를 댕기로 묶고, 물레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처녀’임을 나타냅니다. 보통 서양 성화에서는 ‘처녀’ 상징물로 물병이나 백합꽃이 등장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도 하얀 옷에 날개가 달린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옛날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선녀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적인 모티브로 변형된 것이죠.

사실 ‘성스러운 그림’을 우리 풍속화처럼 그린 건 운보가 처음은 아닙니다.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불리는 기산 김준근이 그린 1892년 종교소설 ‘천로역정’의 삽화가 있습니다. 종교적인 내용을 당대 조선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한국적인 모습으로 삽화를 그린 것입니다. 실제로 운보도 기산 삽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진짜 회화로서 한국적인 성화가 나타난 건 운보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란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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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성화 속 아기 예수는 말구유가 아닌 외양간에서 태어납니다. 외양간에는 짚풀이 무성하고, 뒤쪽에는 조랑말, 모이를 먹고 있는 닭도 보입니다. 서양 성화 속 베일을 쓰고 있는 마리아는 여기에서는 쓰개치마를 쓰고 있고, 출산을 돕는 양치기는 동네 아낙들로 대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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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이 옛 중신들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에서 바치는 선물도 고려 청자 같은 한국적인 소품입니다.

권란 취재파일

헤롯왕이 예수 탄생 소식을 듣고 2살 아래의 아이들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는 병사들은 로마 병사가 아니라, 조선 관헌의 군졸들입니다. 말을 탄 지휘자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군졸들은 잔인하게 아이들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입니다. 사실 운보는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7살 때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었습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절규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림을 그린 것이 참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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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입니다. 요단강은 시냇물로, 요단강 주변의 에셀나무는 갈대밭으로 그려졌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가죽옷 대신 한복을 입었습니다. 보통 세례 장면에는 비둘기 모습의 성령이 나타나는데, 운보의 그림에서는 찬란한 빛만 나타납니다. 천사들은 ‘수태고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선녀로 바뀌었습니다. 예수의 머리 뒤에 비치는 후광은 금박으로도 그릴 수 있었을텐데, 그냥 노란색 물감으로 그렸습니다. 예수의 생애 연작을 그렸던 시기가 한국전쟁 때였으니만큼, 재료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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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사탄은 바로 도깨비의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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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예수의 모습인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입니다. 당시 일부에서는 “예수는 서민 출신인데, 선비는 양반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운보는 예수를 ‘정신적 지도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한결같은 지조와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고결한 마음씨를 지닌 선비 말입니다.

권란 취재파일

예수의 생애 그림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 ‘최후의 만찬’입니다. 식탁 위에는 포도주와 빵 대신, 한국적인 음식이 놓였습니다. 예수와 12제자는 모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양반의 모습입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배신할 것이다” 식사 중에 나온 예수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고 있습니다. 모두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젓고 있는데, 단 한 사람만 수심에 가득 찬 표정입니다. 화면 가장 왼쪽에 있는 인물, 바로 예수를 배신한 유다입니다.

운보는 모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신자로, 신앙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의 생애’ 연작을 그리기 전, 숨을 거둔 예수의 시신을 안고 지하 동굴 계단을 올라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일어나보니 얼굴은 진짜 눈물범벅이었고요. 그렇다고 이 연작을 무조건 ‘종교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예수의 생애’ 연작이 그려진 시기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3년입니다. 처가가 있던 군산에 피난을 가서 그린 작품이지요. 시기가 시기인데다, 주제도 주제인지라, 그림 속에는 단순히 신앙심만 담기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예수가 추구했던 세상과 인류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함께 기원했던 애국심도 함께 녹아들었습니다.

사실 운보는 친일파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일제 강점기, 친일매체들에 일본의 군국주의에 동조하고 선전하는 삽화 등을 그려온 전력이 있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지나친 종교적 색채, 친일 행적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운보의 ‘예수의 생애’ 연작은 한국 회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서양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옮겨놓은 예술적인 성찰은 대단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 운보 김기창 탄생 백주년 기념전 ‘예수와 귀먹은 양’
/ 서울미술관, 2014년 1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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