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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시험 봐서 베이징 시민 뽑자" 中 네티즌 와글와글

[월드리포트] "시험 봐서 베이징 시민 뽑자" 中 네티즌 와글와글
"시험을 치러 합격자에게만 베이징 호구(호적 또는 주민등록)를 주자".

중국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 건축학과 교수이자 도시계획전문가인 원구오웨이의 제안입니다. 이런 제안이 나오자 중국 인터넷이 뜨겁습니다. "베이징 시민증이 무슨 자격증이냐 시험을 보게?" "교수들부터 시험치게 하자"는 항의성 반응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갑론을박 논쟁이 치열하고 찬반투표도 진행중입니다.

시험을 봐서 통과한 사람에게만 베이징 시민권을 주자......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요?

윤영현 월드리포트
베이징 시민, 우리로 치면 서울시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민이 되고 싶다면 간단하게 서울로 이사 가면 끝입니다. 서울에 집을 마련할 수 있냐(구입이든 전·월세든)는 경제적인 문제는 논외로 치고 누구든 서울로 이사 가서 동사무소에 진입신고만 하면 서울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성별, 나이, 직업, 학력 등등에 아무런 제약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이징의 경우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외지인이 베이징으로 이사 가더라도 베이징 호구(호적 또는 주민등록)를 가진 '베이징 시민'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관할 파출소에 전입 신고를 하는데 신고한다고 그냥 베이징 시민이 되는게 아닌겁니다. 거주지만 베이징으로 옮겨졌을뿐 호구는 출신 지역 성이나 도시 그대로 유지됩니다. 즉 베이징 호구 대신 임시거류허가증을 발급 받고, 행정상으로 베이징 시민이 아니라 여전히 해당 출신 지역 외지인일 뿐입니다.

윤영현 월드리포트
외지인이 출신지 호구를 바꿔 베이징 시민이 되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합니다. 직장에 따라 친족 관계에 따라 좀 복잡합니다만 가장 간단하고 합법적인 취득 방법은 베이징 호구를 제공하는 베이징 소재 중앙 부처나 시 정부 기관, 기업 등에 취직하는 겁니다. 취업자들에게 베이징 호구를 주는 이런 '좋은' 직장들은 당연히 선호도가 무척 높기 때문에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중국 전역에서 몰려들기 때문에 기본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지난해 베이징 소재 기관과 기업들이 제공했던 호구는 5천개가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개인 사업자의 경우 3년 연속 납세금이 80만 위안(1억4천4백만원)이상이어야 됩니다. 세금을 이렇게 많이 내려면 사업 규모도 커야하고 사업도 잘되지 않으면 어렵겠죠. 또 부부의 경우 한쪽만 베이징 호구를 갖고 있으면 배우자는 만 45세가 되야 베이징 호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베이징 시민이 되는 데 여러 장애물을 두는 이유는 베이징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나 광저우 등 다른 대도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지인들에게 마찬가지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1950년대 말 도입된 중국의 호구제는 거주지 이전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도시 인구의 급속한 팽창을 통제하는 장치로 활용되오고 있습니다.

그럼 베이징에 살면서 베이징 호구가 꼭 있어야 하냐는 의문이 들겁니다. 없으면 안되냐고요?
물론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교육과 의료, 보건, 부동산 취득 등에서 외지인들은 베이징 시민에 비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베이징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베이징 시에서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 사회보장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차별을 받는 겁니다. 자녀가 태어날 경우 출생 신고도 부모의 호구가 있는 출신 지역에 가서 해야하니 고향이 윈난성이나 광둥성처럼 베이징에서 먼 지역인 경우 비용과 시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윤영현 월드리포트

외지인들은 또 돈이 있어도 베이징의 주택을 구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앞서 월드리포트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데요.  베이징 등지에 주택과 상가 등 44채를 보유했던 산시성 출신의 '팡지에' (일명 부동산 복부인)가 베이징 호구를 4개나 불법적으로 돈을 주고 구입한 이유입니다.

교육면에서도 외지인은 차별 대우를 받습니다. 자녀들이 베이징 호구자의 자녀들과 같은 학교에 다닐 수는있지만 입학금을 따로 내야 하고 등록금도 더 비쌉니다.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농민공(농촌 출신 노동자)들에게 베이징의 공립 학교는 그래서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베이징 호구는 특히 명문대 진학의 '열쇠' 로도 여겨집니다. 베이징에는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이 있습니다. 이런 대학에 입학하는데 베이징 호구가 있으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대학들이 입학 정원에서 각 성이나 시 단위로 입학 인원을 미리 정해 놓는데 인구 2천만 명의 베이징과 1억 명에 달하는 쓰촨 등 다른 성에 배정된 입학 인원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2천만 명 가운데 선발되는 것과 1억 명 가운데 뽑히는 것 중 어느 쪽 경쟁이 더 수월하겠습니까. 사정이 이렇다보니 베이징 소재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의 베이징대와 칭화대 커트라인이 다른 성 출신에 비해 심하게는 20% 가까이 낮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중국에서 자녀의 호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호구 가운데 선택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 호구를 갖고 있는 여성은 그래서 외지인들에게는 신붓감으로 인기짱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조건이면 베이징 여성이 다른 지역 출신보다 훨씬 선호된다는 겁니다. 얼마전 중국 CCTV에서 방영됐던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세요>라는 드라마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베이징 호구가 없다는 이유로 남자 친구의 부모로부터 결혼 불가 통보를 받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는군요.
윤영현 월드리포트

이렇게 베이징 호구는 중국인들에게는 단순한 신분 증명이 아닌 갖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자 특혜의 상징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불공평'과 '차별'의 대명사인거죠. 외지인들에 비해 무려 80여가지의 각종 복리 혜택 등을 누릴 수 있는데요. 최근에는 한 고 3수험생이 베이징 호구를 72만 위안(약 1억 3천만원) 가량을 들여 '싸게(?) 장만'했다(당연히 불법 취득이겠죠)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베이징 호구가 갖는 이런 의미를 생각하면서 다시 글의 서두로 돌아가면, 논란이 되고 있는 원 교수의 발언은 중국에서 지금 한창 진행중인 '도시화' 방안에 대한 특별 탐방 프로그램에서 나왔습니다.

원 교수는 " 베이징은 중국 인민 모두의 것이다. 하지만 중국 인민 모두가 베이징에 거주할 수는 없다.
그러니 베이징 호구를 취득하기를 원하는 외지인들에게는 시험을 봐서 뽑자"고 제안했습니다. 시험 항목으로는 "문화적 소양 시험이라든지, 법률 지식이라든지, 직업 능력 등등"을 예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소양이 없는 사람들은 베이징에서 내보내 건전한 도시 문화를 회복하자. 다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내쫓기 보다는 임시 거주지 마련 등 미리 대책을 세워놓고 문제를 풀어가자"고 밝혔습니다.

중국인들이 너도나도 '베이징 호구'를 원하니, 나름 시험이라는 객관적 장치를 만들어 시민들의 문화적 소양도 높이고 호구와 관련한 불법, 탈법 등 각종 잡음도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원 교수의 이런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호구제에 불만이 많던 중국인들의 감정을 폭발시켰습니다.
"똑똑한 사람만 시민이냐. 교수들부터 시험봐서 내쫓자"는 반응에서부터 " 간단히 기존 베이징 호구자를 포함해 이참에 모든 중국인이 시험 본 뒤 호구를 다시 나누자. 떨어진 사람은 바로 반납!"이란 조롱과 비난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윤영현 월드리포트

한편에서는 원 교수의 발언을 좀 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견지에서 바라보자며 "베이징은 땅은 좁은데 사람은 많다. 이미 수용한계에 도달한 만큼 무제한 인구 유입이 되면 안된다. 합리적인 개선책을 찾아보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해말 현재 베이징의 상주인구는 2천만 명을 돌파해 2천 18만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베이징 호구자는 1277만명 가량입니다.

중국 매체인 남방일보는 원 교수의 제안 이후 진행중인 인터넷 찬반 투표 결과를 전하기도 했는데요, '시험을 치러 시민을 뽑자'는 제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7072표로 70.7%, 찬성한다는 의견이 2529표로 25.5%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험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의외로' 꽤 높게 나온 것 같은데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런 시험 논란과는 별개로 중국 정부는 올해 초 '호구제' 개선책을 마련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사회보장혜택과 공공서비스 제공에 차별을 두지 않는 '전국 거주증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마련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차별과 불공평이 해소되는 합리적인 개선 방안이 서둘러 도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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