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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좌관들 접대했소"…국감장서 로비 자백 나온 사연은?

[취재파일] "보좌관들 접대했소"…국감장서 로비 자백 나온 사연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로비를 했다는 자백을 듣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언론 등에서 로비 의혹을 제기해도 대개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부인하기 마련이고, 자백을 하는 경우는 수사 기관에 구속이 되는 극단적인 처지가 되기 전에는 거의 찾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그 듣기 어려운 로비 자백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인 국정감사장에서 나왔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골프장 인근 접대비 내역은 무슨 의미?

 어려운 자백을 한 인물은 건설근로자 공제회의 정 모 감사였습니다. 건설근로자 공제회의 방만한 경영 실태를 문제 제기한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정 감사를 증인석에 세웠습니다. 이 의원은 전 이사장과 감사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들이대며 접대를 한 거 아니냐는 의혹을 추궁했습니다.

이 의원은 정 감사 등이 경기도 안성의 한 골프장 근처에서 집중적으로 사용한 영수증 내역을 화면에 띄워놓고 추궁했습니다. 이미 건설근로자 공제회는 경기도 안성의 VVIP 회원권을 구매했기 때문에 회사 회원권으로 공짜 골프를 치고는 골프장 근처에서 접대를 한 증거라는 거였습니다. 국감장에서 이 의원과 정 감사의 발언 내용을 옮겨 봅니다.
김수형 취재파일


@ 이종훈 의원(새)
"더 어이없는 것은 저게 다 골프장에 관한 것이고요. 저 중에서 색칠해 있는 것은 다 주중입니다. 업무일이에요."

@ 정 모 감사
"그 시간대에 활용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골프를 칠 줄 모릅니다..(중략) 카드는 제가 그 모임의 주체기 때문에 골프를 칠 줄 몰라서 그 인근에 있는 식당에 가서 식사대접하고 다시 올라왔습니다."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한 순간에 이 의원의 질의 시간이 끝나버렸습니다. 마침 위원장 석에 앉아 있던 홍영표 의원이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 홍영표 의원(민)
"공제회의 업무추진 카드를 친구나 친지한테 빌려준 겁니까?"

@ 정 모 감사
"빌려준 게 아니고 제가 그 모임의 주체기 때문에 저는 골프를 칠 줄 모릅니다."

@ 홍영표 의원(민)
"모임을 얘기해보세요 어떤 모임이에요?"

@ 정 모 감사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국회에 20여년을 근무를 했습니다. 보좌관들입니다. 현직 보좌관도 있고 전직 보좌관도 더러 있습니다."

 정 감사는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술술 이어갔습니다. 자신이 여야 보좌관 출신들의 모임인 국회 입법 정책 연구회였습니다. 사단법인으로 동록된 단체인데 자신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순간 좌중이 술렁였습니다.

증인 선서를 한 국정감사장에서 전직 보좌관으로서 다른 보좌관들을 접대했다고 발언한 것은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질의를 이어가야했던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너무 떳떳하게 말해서 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거 같습니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위원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일단 명단부터 제출하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정 감사는 아뿔싸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는 명단을 제출했지만, 현직 보좌관들의 이름은 모두 빠졌고, 모두 전직 보좌관들 이름만 있었습니다. 정 감사는 "아까 말할 때 어휘 선택이 사려 깊지 못했다" 말했고, 업무추진비의 부적절한 사용에 대해서는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이 던진 말을 주워 담았습니다.

"비리 백화점" 건설근로자 공제회에서는 무슨 일이?

 건설근로자 공제회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이종훈 의원은 이 단체를 '비리 백화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건설근로자 공제회는 이른바 막노동을 해서 하루하루 힘들게 사시는 건설근로자 분들이 일당을 받을 때 매일 4천2백 원 씩 적립한 기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이걸 250일 넘게 적립하면 1백만 원 넘게 찾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퇴직금 등이 전혀 없는 건설근로자들이 요긴하게 찾아갈 수 있는 돈입니다. 적립금액은 얼마 안 되지만, 전국에 건설근로자들이 380만 명이나 되기 때문에 전체 기금은 2조원이 넘습니다. 한마디로 금융계의 큰 손인 겁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올해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게 됐는데, 묻지 마 경영 실태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습니다.

건드리는 투자마다 '마이너스의 손'

 이 의원이 이 단체에서 벌어진 10건의 대형 금융사고를 살펴보니 손실액이 무려 810억 원이 넘었습니다. 리조트에 투자했다가 돈을 까먹었는가 하면, 골프장에 투자해 돈을 회수를 못했고 이 과정에서 전 이사장이 브로커와 결탁해 돈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징역 3역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두바이와 카자흐스탄, 인도 등에도 투자했지만, 수십억 원씩 돈을 날렸습니다. 이 의원이 확인한 손실 금액 810억 원은 무려 3만8천명의 건설근로자에게 퇴직금으로 2백여만 원씩을 챙겨줄 수 있는 금액입니다. 

김수형 취재파일
외부 견제 없이 단 3명이 2조원의 돈을 굴리는 조직 구조

 이런 묻지 마 투자가 가능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직도를 보면 자산운용본부에는 단 6명이 소속돼 있었습니다. 본부장이 1명에 자산운용팀이 3명(원래는 4명인데 한명이 해외 원정 도박 의혹으로 징계를 받고 전출됐습니다.), 투자 개발팀이 2명, 리스크 관리팀이 1명으로 모두 6명입니다.

이 가운데 돈을 굴리는 건 자산운용팀인데 3명이 무려 2조원이 넘는 돈을 맡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리스크관리팀은 잘못된 의사 결정을 견제해야하지만, 책임팀장도 없이 혼자서 본부장에게 업무 지시를 받고 있는 구조였습니다. 묻지 마 투자를 해도 사내에 견제할 세력이 없었던 겁니다.

 이곳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요? 이사장의 연봉은 업무추진비를 빼고도 2억2천만 원이 넘었고, 감사 이사 모두 2억 원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와 국토해양부 출신 관료들의 재취업 센터로 전락해 고용노동부에서 6명, 국토해양부에서 4명이 특별 채용돼서 간부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받는 돈은 모두 일용직 건설근로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겁니다.  

국감에서 약속대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로 이어져야

 국감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감사원 감사 청구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다는 겁니다. 일부 의원들은 감사원이 아니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단체가 부실과 무능을 감추기 위해 규제 기관에 청탁하고 로비를 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회가 계획한대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를 통해 건설근로자 공제회의 경영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 점검을 하는 건 필요해 보입니다. 정상적인 기능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사회적인 약자들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을 묵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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