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했던 미국의 국가 부도 위기가 ‘가까스로’라는 수식어가 붙기는 했지만 해피 엔딩으로 내렸습니다. 20여일을 끌어오던 예산, 부채한도 협상이 일단 끝이 난 것입니다. 시한이 불과 2시간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의회 표결이 끝났으니 그야말로 극적이었습니다. 마무리도 극적이었지만 그 전개과정도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막장 드라마’ 였습니다. 미국 정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큼 협상과 대화, 신뢰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신뢰와 대화가 있어야 할 곳에 극단적인 자기 주장과 당파적 이기주의만 판을 쳤습니다.. 미국인들은 상원 하원 막론하고 의원 전원을 갈아치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 역사상 이런 정치의 위기가 또 있었을까요? 이번 막장드라마의 뿌리는 지난 연말 재정절벽 협상으로 거슬러 갑니다. 대선 이후 재정 절벽 위기까지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 정치권은 ‘부자증세’ 공방만 거듭하며 시간을 허비합니다. 협상은 시한을 살짝 넘겨 1월 1일에야 허겁지겁 끝이 났습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무늬만 타협이었을 뿐 내용은 당장의 위기를 뒤로 미뤄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일단 시간을 벌어놓고 2월 15일에서 3월1일 사이에 올 것으로 보이는 연방 정부 채무 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총기 규제 논란 등으로 시간만 끌다가 결국 5월1일 연방정부 지출 감소, 즉 시퀘스터가 발동됐습니다. 미 재무부는 결국 특별 조치를 통해 일단 돈을 끌어다가 급한 불을 꺼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합니다. 이 시한이 이번에 문제가 된 10월 17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오바마케어’ 실행예산이 포함된 새로운 회계연도 예산안 통과 문제가 겹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바마케어’ 즉 건강보험 개혁 관련 예산을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대치상황으로 빠져들면서 결국 10월 1일부터 집행해야 하는 예산안 통과 시한을 넘기게 됩니다. 연방 정부가 일시 업무정지에 들어가면서 공무원 수십만 명이 일시 해고되고 미 전역의 국립공원이 문을 닫았습니다. 워싱턴 정치에 대한 원성이 높아만 갔지만 정치는 사라지고 정쟁만 판을 쳤습니다.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가 불안했지만 워싱턴 정가는 이런 목소리에는 마치 귀를 막은 듯 했습니다. 백악관과 민주당, 공화당, 상원, 하원으로 나눠져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만 열중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의 기본 덕목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요즘 미국 정치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가 막장이라는 것입니다. 사태는 국가 부도 위기가 두 시간 앞으로 다가오고서야 가까스로 수습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합의도 역시 문제 해결을 내년 초로 미뤄놓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일단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벌써 내년 1월 15일에 닥칠지 모르는 다음 정부 폐쇄를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번 합의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위기의 시한폭탄에 스위치를 올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월드리포트] '막장드라마' 같았던 미 예산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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